처음에 사랑 할 때 / 그 이는 씩씩한 남자였죠 / 밤하늘에 별도 달도 따주마 / 미더운 약속을 하더니 / 이제는 달라졌어 / 그 이는 나보고 다 해달래 / 애기가 되어버린 내 사랑 당신 / 정말 미워 죽겠네 / 남자는 여자를 정말로 귀찮게 하네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인 문주란 씨의 노래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하네」예요. 가사 내용을 보면 여인은 남편이 결혼 전과 너무 다른 모습을 보여 몹시 실망하고 있어요. '씩씩한 남자'인줄 알았는데 '애기'처럼 행동하니 실망스럽기도 할 거예요.

 

그런데 남자는 왜 씩씩했다가 애기가 된 걸까요? 그건 씩씩함 속에 감춰졌던 애기스러움이 드러났기 때문일 거예요. 이걸 그럴듯한 용어로 표현하면 양속에 감춰졌던 음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어요. 양과 음이 균형을 이루면 씩씩함과 애기스러움이 조화를 이뤄 설령 애기스러움이 드러난다 해도 실망스런 수준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둘의 조화가 깨지면 어느 일방적인 면만이 강하게 드러나 실망스런 수준이 되겠죠. 저 노래 속의 남자는 음양의 균형이 깨진 상태라 여인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사진은 후덕재물(厚德載物)이라고 읽어요. 『주역』 곤괘()를 풀이한 해석서 중의 하나인 상전(象傳)에 나오는 내용으로, '후덕함으로 만물을 수용한다'란 뜻이에요. 흔히 건괘() 상전에 나오는 자강불식(自彊不息, 스스로 힘써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쉬지 않음)과 짝을 지어 많이 사용하죠. 자강불식과 후덕재물을 짝지우는 것은 양자가 균형을 맞출 때 온전한 가치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실제 자강불식은 진(進, 나감)의 성격이 강하고, 후덕재물은 퇴(退, 물러남)의 성격이 강하기에 양자는 조화가 필요해요. 일과 휴식의 관계로 환치하면 이를 쉽게 알 수 있죠. 일이 자강불식이라면 휴식은 후덕재물이라고 할 수 있죠. 양자가 균형을 이뤄야 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겠죠?

 

사진의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돌 석)(높을 고)의 합자예요높이가 높은 돌은 두께도 두껍다는 의미예요. 두터울 후.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重厚(중후), 厚顔無恥(후안무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걸을 척)(덕 덕)의 합자예요. 본래 으로 표기했는데, 후에 행동의 의미인 이 추가됐어요. (곧을 직)(마음 심)의 합자예요. 정직한 마음이란 의미예요. 까지 추가하여 풀이하면 정직한 마음이 행동으로 발현된 것이란 의미예요. 덕 덕.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道德(도덕), 德望(덕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싣다란 의미예요. (수레 거)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실을 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積載(적재), 連載(연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소 우)(말 물)의 합자예요. 만물이란 의미예요. 만물 중에서 가장 쉽게 눈에 잘 띄는 것이 소인지라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해요. 만물 물.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生物(생물), 現物(현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저 노래의 한심스러우면서도 왠지 측은해 보이는 남자를 구제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음양 균형론으로 말하면 아무래도 여인이 좀 더 수용적인 태도를 지녀야 할 것 같아요. 여인에게 너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구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 남자는 어디에서도 음의 충족을 얻지 못해 더 퇴행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과도한 씩씩함[광포]을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지 않을까요? (여기서는 남자를 놓고 음양 균형론을 말했는데 이는 여성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남자가 좀 더 수용적인 태도를 지녀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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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이병욱 2018-12-28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도 찔레꽃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찔레꽃 2018-12-29 07: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도 새해 더욱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노인네가 주책이지.”


전 부럽던데요.”


 지난 해 유독 눈이 많이 내린 날 지인 한 분이 적설을 헤집고 새벽 등산한 사진을 페이스 북에 올렸어요. 지인은 60이 된 분이었어요. 그 사진을 함께 본 이웃 분이 혀를 차며 걱정하더군요. 저는 걱정도 됐지만 그의 노익장(老益壯)이 부러웠어요. 그만 훨씬 못한 나이인데도 적설을 핑계로 하루 종일 문 밖을 나가지 않았거든요.


 노익장, 늙을수록 더 씩씩 하다란 이 말은 사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에요. 젊을수록 씩씩하지, 늙을수록 씩씩해지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웃 분도 지인의 새벽 등산을 흉봤을 거예요. 무리수를 두는 행동이라고 본 것이겠죠. 그러나 세상사가 항상 이치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듯, 늙을수록 더 씩씩해지는 특별한 이들도 있죠. 제 지인도 그런 경우일 거예요.

 

 늙을수록 더 씩씩해진다는 뜻의 노익장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후한의 장수였던 마원(馬援, BC 14 ~ AD 49)이에요. 재미있는 것은 그가 나이든 후에 타인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 일찍이 젊은 날 부터 그 말을 마치 자성예언(自成豫言)처럼 했다는 거예요. 조실부모하고 자수성가했던 그는 입버릇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장부가 뜻을 세웠으면 힘들수록 더 분발해야 하고, 나이 들수록 더욱 더 씩씩해야 한다(丈夫爲志 窮當益堅 老當益壯).” 후일 그는 자신의 말처럼 노장군이 되어서도 변경을 개척하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고 많은 성과를 거뒀죠.


 그런데 흔히 나이 들어서 씩씩하고 혈색 좋으면 이렇게 묻곤 하죠. “아니, 뭘 드셨기에 이렇게.” 마원도 뭔가 특별한 것을 먹었을 것 같죠? 맞아요. 특별한 것을 먹었어요. 바로 율무[薏苡仁]였어요. 지금의 티베트와 월남 북부 지역을 정벌할 때 이 특별한 것으로 부하들의 건강을 돌봤고 자신의 건강도 챙겼어요. 귀환할 적에 이를 잔뜩 실어왔는데 사람들로부터 귀한 재물을 실어왔다고 오해를 받아 곤욕을 치루기도 했죠


아니, 기껏 율무를 먹었을 뿐이란 말이야!” 이런 말이 들리는 듯 하네요. 기록에 전하는, 마원이 먹은 특별한 음식은 이것 뿐예요. “, 그럼 나도 오늘부터 율무를.” 이런 말도 들리는 듯 하네요. 하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율무는 체질적으로 태음인에게 맞는 음식이지, 모든 이에게 맞는 음식은 아니라고 나오더군요. 이로 미뤄보면 마원은 태음인 체질이었던 것 같고, 그에게 율무를 지급받았던 병사들 중에서 효과를 본 병사는 태음인이었을 가능성이 커요. 다른 체질의 병사들은 그리 큰 효과는 보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저 배고픔을 면하는 양식 정도였겠죠.


 그런데 정말 마원은 건강을 위해 율무 이외의 다른 음식이나 약은 복용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다만 기록에 나타난 것이 없는 것뿐이겠죠. 그렇지 않을까요?


 사진의 한자는 노익장을 원하는 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보약을 담은 포장 상자의 글씨예요. 읽어 볼까요? ‘보정강장 만병회춘 연년익수(補精强壯 萬病回春 延年益壽)'라고 읽어요.‘정기를 보하여 튼튼하게 하다. 만병을 치유하여 회춘하고 해마다 수명을 늘이다란 뜻이에요. 보약 상자에 어울리는 문구예요. 그런데 읽고 해석할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한글로 이렇게 쓰면 어떨까 싶어요. ‘정성껏 드시고 건강하세요!’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볼까요?


 補(의 약자, 옷의)(남자의미칭 보)의 합자예요. 헤진 옷을 수선하여 제대로 만들었다란 의미예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남자의 미칭처럼 수선된 옷은 보기 좋다는 의미로요. 기울 보.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補完(보완), 補充(보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精(쌀 미)(푸를 청)의 합자예요. 골라낸 쌀이란 의미예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선명한 푸른색처럼, 골라낸 쌀은 깨끗하고 품질이 좋다는 의미로요. 고른쌀 정. 쌀눈을 의미하는 글자로 보기도 해요. 쌀눈 정. 정기(精氣)라는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쌀눈이란 의미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정기 정.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精氣(정기), 精粹(정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强(벌레 충)(넓을 홍)의 합자예요. 쌀벌레란 의미예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해요. 쌀벌레 정. 강하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차용한 거예요. 강할 강.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强力(강력), 强弱(강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壯(장사 사)(조각 장)의 합자예요. 심신이 건강하다는 의미예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해요. 건장할 장.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壯士(장사), 壯盛(장성)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壽(늙을 로)의 약자와 (밭두둑 주) 약자의 합자예요. 긴 밭두둑처럼 오래 살아 나이가 많다는 의미예요. 목숨 수.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壽命(수명), 長壽(장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평균 수명이 80을 바라본다고 하죠? 오래 사는 것은 원초적 욕망일 듯싶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게 오래 사는 걸 거예요. 그것이 동물적 장수를 넘어선 인간적 장수일 것이기 때문이죠. 마원의 노익장이 빛나는 것은 그가 노년에 들어서도 젊은 장수를 능가하는 업적을 이뤘기 때문이지, 단순히 늙어서도 튼튼했기 때문만은 아니 듯이 말이죠. 오래 살되 의미 있게 오래 살 것, 평균 수명 80을 바라보는 우리 시대 노년의 중요한 지향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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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vehills 2018-12-16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언 70이 다가온 무심한테 정말 도움 되는 좋은 글입니다.

찔레꽃 2018-12-17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께 도움이 되다니, 영광입니다. ^ ^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건강 유의하셔요. 아드님도 빨리 쾌차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출처: http://www.seoul.co.kr>

 

 

"주남(周南), 소남(召南)을 모르면 담을 마주한 것과 같단다."

 

공자가 아들 백어의 시(詩) 학습을 독려하면서 한 말의 일부예요. 당대 사회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언급이기도 해요. 시가 소통의 매개체였기에 그것을 모르면 타인과 소통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죠. 아이들 세계에서 게임을 모르면 다른 아이와 소통하기 어려운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공자는 소통이 불가능한 처지를 '담을 마주함'으로 비유했어요. 여기 '담'은 전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띄고 있죠. 막막함, 답답함…  대체로 부정 이미지가 강한 것이 담이죠. 담이 긍정적 이미지로 사용된 경우도 있을까요?

 

사진은 담, 정확히는 벽의 긍정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사례예요. 흔치는 않을 듯 싶어요. 한자를 읽어 볼까요? 증주벽립(曾朱壁立). 증자와 주자를 본받아 벽처럼 (굳게) 서다, 란 뜻이에요. (내) 집안엔 증자와 주자만 벽처럼 서 계실 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란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어요. 우암 송시열(1607-1689)의 글씨로 그가 한양에서 벼슬살이 할 때 머물던 집의 바위에 새긴 글씨예요(현 위치 명륜동). 무슨 의미일까요? 증자는 공자의 도통을 이은 인물로 알려져 있고 주자 역시 이 도통 계보에 위치하는 인물이죠. 특히 주자는 성리학을 건국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서 그 어떤 유학자보다 숭상되었던 인물이죠. 이 문구는, 한 마디로, 유학의 이념을 - 구체적으로는 성리학(주자학)의 이념을 - 한 치의 흔들림없이 굳게 지키겠다는 신념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송시열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죠. 시대의 변화를 도외시한 채 형해화된 이념만을 고수한 극단적 보수주의자로 보는 시각과 가치의 혼란 시대에 명확한 이념 제시로 사상을 통일시켜 안정을 도모하려했던 정통 유학자로 보는 시각이 그것이죠. 둘 다 맞는 평가라고 생각해요. 모든 존재는 양면성을 지니기에 가치의 척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죠. 저 문구도 송시열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벽(담)의 긍정적 이미지와 무관하게, 양면의 시각으로 읽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송시열을 거시적 시각으로는 부정적으로, 미시적 시각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해요. 거시적 시각은 역사의 흐름을 염두에 둔 언급이고, 미시적 시각은 개인적 신념을 염두에 둔 언급이에요. 임진, 정유, 병자, 정묘호란으로 이어지는 국난의 시기에 사림의 영수로서 수명을 다한 성리학(주자학적) 이념만을 고수하여 국정이 경색되도록 영향을 끼친 점에서는 부정적으로 보지만, 자신의 가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봐요(송시열은 숙종 때 사약을 받고 죽는데, 여기에는 그의 이런 면모가 큰 요인으로 작용했어요).

 

사진의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曾은 결론을 짓게 되어 편안한[八, 기가 분산되는 모양] 마음으로 사용하는[曰, 가로 왈] 조사인 '이에'라는 뜻이에요. 八과 曰 이외의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이에 증. 시루를 그린 글자로 보기도 해요. 曾은 '일찍, 더하다' 등의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시루'라는 의미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시루 증. 일찍(더할) 증. 曾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未曾有(미증유), 曾益(증익. 보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朱는 목심(木心, 나무 속)이 붉다는 의미예요. 목심은 木(나무 목)으로, 붉다는 의미는 丿과 一로 표현했어요. 붉을 주. 朱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印朱(인주), 朱雀(주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壁은 土(흙 토)와 辟(밝힐 벽)의 합자예요. 벽이란 의미예요. 土로 의미를, 辟으로 음을 표현했어요. 벽 벽. 壁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巖壁(암벽), 壁報(벽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立은 사람이 지면 위에 양발을 디디고 가만히 서있는 모양을 그린 거예요. 설 립. 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直立(직립), 立場(입장)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어릴 때 선친에게 들었던 송시열에 관한 일화 한 토막. 송시열이 중병에 걸렸을 때 정적이었던 허목에게 처방전을 의뢰했어요. 처방전을 받아온 아들은 기겁을 했어요. 극약인 비상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들은 분노했지만 송시열은 아무 말없이 처방전대로 약을 달여오게 했어요. 놀랍게도 송시열은 쾌차했어요. 허목은 왜 송시열에게 비상을 넣은 약을 처방했고, 송시열은 왜 아무 말없이 그것을 복용했을까요? 허목은 송시열이 평소에 속열을 삭히기 위해 어린아이의 오줌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때문에 오줌 적이 내장에 끼였을 그에게 평범한 약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여 극약을 처방했던 거예요. 송시열 역시 허목이 비록 자신과 정치적 대립 관계에 있지만 결코 야비한 수를 쓰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기꺼이 극약 처방을 받아 들였던 것이고요. 허목과 송시열의 인간적 됨됨이를 보여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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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http://w/ww.kookje.co.kr/news2011>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 돌 칼 갈아 다 없애고

豆滿江水飮馬無  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 물 말 먹여 다 없애리

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미평국    남아 이십 세상을 평정치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대장부    후세 뉘라서 대장부라 부를까


남이(南怡,1441-1468) 장군의 시예요. 적절한 과장법(1, 2)을 사용하여 호방한 청년 장군의 기상을 잘 나타냈어요. 셋째 구의 미평국(未平國)은 남이 장군이 유자광 등의 모함을 받는 원인 제공을 한 내용으로 알려져 있죠. 저도 번역을 '세상을 평정치 못하면'이라고 해서 남이 장군이 혁명을 꾀한 것처럼 번역했어요. 하지만 여기 '평정'이라는 말은 실제 혁명을 꾀하려는 의도를 표현한 것이라기보다는 호방한 기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한 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요(저도 이런 의미로 '평정'이라는 말을 사용했어요). 난세(亂世)도 아닌 치세(治世)에 그것도 병조판서를 역임한 이가 혁명을 꾀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불성설이에요


청년 장군의 웅혼한 기상이 느껴지는 또 다른 시 한편을 읽어 볼까 해요. 바로 사진의 시예요.


登樓遊子却忘行  등루유자각망행    누각 오른 나그네 갈 길을 잊었는데

可歎檀墟落木橫  가탄단허낙목횡    안타까울 손 낙목(落木, 잎 떨어진 나무)에 가리운 단허(檀墟, 단군 사당)

男兒二七成何事  남아이칠성하사    남자 나이 스물일곱 무엇을 이루었나

潛倚秋風感慨生  잠의추풍감개생    가을바람 맞으니 서글픈 생각만

 

이 시의 작자도 남이 장군과 마찬가지로 20대 청년이에요. 이 이 또한 나라를 위한 웅대한 기상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이 시에는 남이 장군의 시에서 느껴지는 발랄함이 없어요. 처연함만이 가득해요. 갈 길 잃은 나그네 신세(1),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어 탄식하는 모습(3), 서글픈 생각에 휩싸인 모습(4)은 읽는 이에게 동정심마저 일으켜요.

 

시인은 왜 이런 처연한 정서에 휩싸인 걸까요? 둘째 구가 그 답을 말해줘요. 둘째 구는 시인이 사는 시대 상황을 상징한 표현으로, 단허는 국가를 의미하고 낙목에 가리워져 있음은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음을 의미해요. 시인이 사는 시대는 나라가 누란(累卵)의 지경에 이른 때예요. 이런 때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니 서글플 수밖에 없겠죠. 세상을 구할 웅지가 없는 이도 서글플 수 있는 시대에 웅지가 있음에도 아무것도 못한(못하는) 사람이 느끼는 처연함은 그 강도가 더할 거예요.

 

이 시의 작자는 신돌석(申乭石, 1878-1908) 장군이에요. 구한 말 평민 의병장으로 게릴라전을 통해 일군(日軍)을 괴롭혔던 유명한 분이죠. 그는 승패의 부침이 잦았던 다른 의병장과 달리 연전연승의 신화를 창조해 태백산 호랑이로 불렸어요. 신 장군은 18세에 의병에 가담했다 의병이 해산된 뒤 10여년의 공백기를 가졌다가 29세에 본인이 주동이 되어 의병을 일으켜요. 이 시는 그가 의병을 일으키기 두 해 전에 지은 거예요. 10여년의 공백기동안 그가 어떤 심정으로 세월을 보냈는지 말해주는 시라고 볼 수 있어요. 아울러 이 시를 지은 두 해 뒤 의병을 일으킨 것을 보면 그가 공백기동안 단순히 비탄에 잠겨 세월만 보낸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며 준비했으리란 것을 암시적으로 말해주는 시라고도 볼 수 있어요.

 

신돌석 장군이나 남이 장군 모두 청년 장군의 웅혼한 기상을 간직했던 분들이에요. 비록 시대와 신분의 차이가 있지만 나라를 위한 큰 뜻을 품었던 점에선 공통점을 가졌던 분들이죠. 안타까운 건 둘 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고 그것도 모리배의 간계에 죽음을 당했다는 점이에요. 신돌석 장군은 31세에 세상을 떴어요. 현상금에 눈 먼 내부자의 폭행으로요(여기에 대해선 이견이 있어요. 내부 의견 차이로 다투다 상해를 입어 죽게 됐다는 거예요). 남이 장군 역시 28세에 유자광 등의 모함으로 세상을 떴죠.

 

시참(詩讖)이라는 게 있어요. 시를 보면 시인의 앞날을 점칠 수 있다는 설이에요. 신돌석 장군의 시 셋째 구는 왠지 남이 장군의 시 셋째 구를 의식한 구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그도 남이 장군처럼 일찍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을 해봐요.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볼까요?

 

(걸을 착)(깃발 유)의 합자예요. 한가하게 이곳저곳 거닌다는 의미예요. 으로 뜻을, 로 음을 나타냈어요. 는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듯 마음가는대로 한가하게 이곳저곳 거닌다는 의미로요. 노닐 유.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遊覽(유람), 遊戲(유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나무 목)(도타울 단)의 합자예요. 박달나무란 의미예요. 으로 뜻을, 으로 음을 나타냈어요. 은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단단하고 향내가 많은 나무가 박달나무란 의미로요.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檀君(단군), 檀木(단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흙 토)(빌 허)의 합자예요. 큰 언덕이란 의미예요. 로 뜻을, 로 음을 나타냈어요. 언덕 허. 터라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터 허.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遺墟(유허), 廢墟(폐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나무 목)(누를 황)의 합자예요. 난간목이란 의미예요. 으로 뜻을 나타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은 토지의 빛깔을 나타낸 것으로 아래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데, 난간목은 그같이 아래에 설치하는 것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하고 있어요. 난간 횡. 가로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가로 횡.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縱橫(종횡), 橫隊(횡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마음 심)(이미 기)의 합자예요. 비분강개한 심정이란 의미예요. 으로 뜻을 나타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분개할 개.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慨嘆(개탄), 憤慨(분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1908년 영해 경찰서의 야마모토가 경무국장 마쓰이에게 보고한 바에 의하면 신돌석 장군의 사망 소식을 들은 한 노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우리들이 구차하게 산 것은 신장군이 일본군을 소탕하리라 기대한 때문인데, 이제 모든 것이 끝이로구나.” ( 신돌석, 백년 만의 귀향(김희곤, 푸른역사) 참고) 당시 민중들의 신돌석 장군에 거는 기대가 어떠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이에요. 이런 기대와 안타까운 심정이 결합돼 신돌석 장군에 대한 갖가지 전설이 만들어졌다고 보여요. 남이 장군에 대한 민간 신앙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어요. 신돌석 장군과 남이 장군, 다른 듯 같은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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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http://treecycle.co.kr>




바쁜데.”

 

걱정 마. 착오 없이 할 테니.”

 

십 수 년 전, 바쁜 아침 출근 시간을 쪼개어 고문진보를 읽은 적이 있어요. 처음에 아내는 짜증을 냈어요. 지극히 당연한 짜증이었죠. 아이들 등교 준비 도와주랴, 식사 준비하랴 청소하랴, 그리고 각자의 출근 채비까지, 11초가 아쉬운 아침 시간에 거실에 앉아 책을 읽다니. 하지만 아내의 짜증을 호언(豪言)으로 물리치고 매일 10분씩 고문진보를 읽었어요. 아내의 짜증은 잦아들었어요. 실제 호언한대로 분담한 일을 착오 없이 해냈기 때문이죠. 그러나 흔쾌한 표정은 아니었어요. ‘뭐야? 갑자기 왜 저러지?’ 이런 속내를 담은 표정이 역력했지요.

 

당시 저는 이상한 자괴감에 시달렸어요.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초라함에 휩싸여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지요. 이를 극복해보려는 차원에서 고문진보읽기를 시도했던 것인데, 저녁에는 몸이 피곤해 읽을 수 없었고 바쁘지만 그래도 에너지가 충만한 아침에 읽게 됐던 거예요. 출근 준비 전에 일어나 읽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기에 아내의 눈총을 받아가며 읽었던 거지요.

 

그렇게 매일 10분씩 고문진보를 읽어 1년 동안 3차례 반복해 읽었어요.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지요. 지금도 생생해요. 끝이 보일 것 같지 않던 두꺼운 책을 매일 조금씩 읽어 마지막 쪽까지 다 읽고 덮었을 때 느꼈던 그 성취감과 충만감. 1년의 고문진보독서를 통해 이상한 자괴감은 꽤 많이 치료됐어요.

 

사진은 '노적성해(積成海)'라고 읽어요. ‘이슬이 쌓여 바다를 이루다란 뜻이에요. 끊임없는 노력으로 큰 성과를 낸다는 의미예요. 꾸준한 노력을 강조할 때 많이 사용하죠. 성어를 대하니 문득 성어에 어울릴 법한 과거 독서 경험이 떠올라 몇 마디 해봤네요. 이슬이 쌓여 바다를 이룬 정도는 못되지만 한 종지 물은 될 듯 하니 이 또한 노적성해의 아류가 아니겠어요?

 

사진의 한자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벼 화)(구할 책)의 합자예요. 벼 등의 곡물을 널리 구해 저장해 놓았다는 의미예요. 쌓을 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蓄積(축적), 過積(과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비 우)(길 로)의 합자예요. 밤사이 비처럼 내려 초목에 부착된 물체라는 의미예요. 이슬 로. 는 뜻을, 路는 음을 담당해요. 는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길이 사람 눈에 잘 띄듯 이슬도 사람 눈에 잘 띈다는 의미로요.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寒露(한로), 露宿(노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다섯째천간 무)(장정 정)의 합자예요. 만물이 흙에 의지하여 성장하고 결실을 맺는다는 의미예요. 이룰 성. 흙이라는 속 의미를 갖는 는 뜻을, 은 음()을 담당해요. 은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장정처럼 성장하여 결실을 맺었다는 의미로요.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成敗(성패), 成功(성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의 변형, 물 수)(풀우거질 매)의 합자예요. 우거진 풀처럼 물이 많이 모인 곳이란 의미예요. 바다 해.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死海(사해), 近海(근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배우는데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비록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란 말이 있죠. 배우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목표와 의지이지 시간이 우선 요소는 아닌 것 같아요. 목표와 의지가 있으면 시간은 마련할 수 있고, 그 시간이 누적될 때 배움은 달성된다고 생각해요. 확신하냐구요? ! 노적성해의 아류경험으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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