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http://www.seoul.co.kr>

 

 

"주남(周南), 소남(召南)을 모르면 담을 마주한 것과 같단다."

 

공자가 아들 백어의 시(詩) 학습을 독려하면서 한 말의 일부예요. 당대 사회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언급이기도 해요. 시가 소통의 매개체였기에 그것을 모르면 타인과 소통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죠. 아이들 세계에서 게임을 모르면 다른 아이와 소통하기 어려운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공자는 소통이 불가능한 처지를 '담을 마주함'으로 비유했어요. 여기 '담'은 전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띄고 있죠. 막막함, 답답함…  대체로 부정 이미지가 강한 것이 담이죠. 담이 긍정적 이미지로 사용된 경우도 있을까요?

 

사진은 담, 정확히는 벽의 긍정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사례예요. 흔치는 않을 듯 싶어요. 한자를 읽어 볼까요? 증주벽립(曾朱壁立). 증자와 주자를 본받아 벽처럼 (굳게) 서다, 란 뜻이에요. (내) 집안엔 증자와 주자만 벽처럼 서 계실 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란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어요. 우암 송시열(1607-1689)의 글씨로 그가 한양에서 벼슬살이 할 때 머물던 집의 바위에 새긴 글씨예요(현 위치 명륜동). 무슨 의미일까요? 증자는 공자의 도통을 이은 인물로 알려져 있고 주자 역시 이 도통 계보에 위치하는 인물이죠. 특히 주자는 성리학을 건국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서 그 어떤 유학자보다 숭상되었던 인물이죠. 이 문구는, 한 마디로, 유학의 이념을 - 구체적으로는 성리학(주자학)의 이념을 - 한 치의 흔들림없이 굳게 지키겠다는 신념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송시열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죠. 시대의 변화를 도외시한 채 형해화된 이념만을 고수한 극단적 보수주의자로 보는 시각과 가치의 혼란 시대에 명확한 이념 제시로 사상을 통일시켜 안정을 도모하려했던 정통 유학자로 보는 시각이 그것이죠. 둘 다 맞는 평가라고 생각해요. 모든 존재는 양면성을 지니기에 가치의 척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죠. 저 문구도 송시열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벽(담)의 긍정적 이미지와 무관하게, 양면의 시각으로 읽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송시열을 거시적 시각으로는 부정적으로, 미시적 시각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해요. 거시적 시각은 역사의 흐름을 염두에 둔 언급이고, 미시적 시각은 개인적 신념을 염두에 둔 언급이에요. 임진, 정유, 병자, 정묘호란으로 이어지는 국난의 시기에 사림의 영수로서 수명을 다한 성리학(주자학적) 이념만을 고수하여 국정이 경색되도록 영향을 끼친 점에서는 부정적으로 보지만, 자신의 가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봐요(송시열은 숙종 때 사약을 받고 죽는데, 여기에는 그의 이런 면모가 큰 요인으로 작용했어요).

 

사진의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曾은 결론을 짓게 되어 편안한[八, 기가 분산되는 모양] 마음으로 사용하는[曰, 가로 왈] 조사인 '이에'라는 뜻이에요. 八과 曰 이외의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이에 증. 시루를 그린 글자로 보기도 해요. 曾은 '일찍, 더하다' 등의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시루'라는 의미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시루 증. 일찍(더할) 증. 曾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未曾有(미증유), 曾益(증익. 보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朱는 목심(木心, 나무 속)이 붉다는 의미예요. 목심은 木(나무 목)으로, 붉다는 의미는 丿과 一로 표현했어요. 붉을 주. 朱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印朱(인주), 朱雀(주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壁은 土(흙 토)와 辟(밝힐 벽)의 합자예요. 벽이란 의미예요. 土로 의미를, 辟으로 음을 표현했어요. 벽 벽. 壁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巖壁(암벽), 壁報(벽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立은 사람이 지면 위에 양발을 디디고 가만히 서있는 모양을 그린 거예요. 설 립. 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直立(직립), 立場(입장)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어릴 때 선친에게 들었던 송시열에 관한 일화 한 토막. 송시열이 중병에 걸렸을 때 정적이었던 허목에게 처방전을 의뢰했어요. 처방전을 받아온 아들은 기겁을 했어요. 극약인 비상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들은 분노했지만 송시열은 아무 말없이 처방전대로 약을 달여오게 했어요. 놀랍게도 송시열은 쾌차했어요. 허목은 왜 송시열에게 비상을 넣은 약을 처방했고, 송시열은 왜 아무 말없이 그것을 복용했을까요? 허목은 송시열이 평소에 속열을 삭히기 위해 어린아이의 오줌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때문에 오줌 적이 내장에 끼였을 그에게 평범한 약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여 극약을 처방했던 거예요. 송시열 역시 허목이 비록 자신과 정치적 대립 관계에 있지만 결코 야비한 수를 쓰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기꺼이 극약 처방을 받아 들였던 것이고요. 허목과 송시열의 인간적 됨됨이를 보여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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