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이 철학을 어떻게 말하는가 - 자연주의를 위한 새로운 토대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 지음, 뇌신경철학연구회 옮김 / 철학과현실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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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생소하고 번역이 좋지 못한 편이지만, 신생 분야에 대한 책이니만큼 신선하고 흥미로운 독서경험을 가져다 주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생물학이라는 자연과학이 철학을 어떻게 꼴지을 수 있는지를 논증해내고자 (진화)생물학, 신경학, 뇌과학 등에서의 연구성과를 철학의 다양한 분야와 문제들에 적용하고 있는 논문들 선집이다. 이렇다 보니 전통/현대철학 및 생물학과 연관된 자연과학 양자에 대한 강도 높은 지식이 없이는 꽤나 읽기 버거우며, 안 그래도 이리 어려운데 직역투의 번역이 이를 가중시킨다. 개인적으로 생물학 분야에 아는 바가 적다 보니, 각 글들의 논지는 파악했어도 그를 뒷받침하고자 동원된 근거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솔직히 내용을 논증적으로 이해한 글이 적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포착되는바 '철핫은 자연과학과 연속적이어야 한다'는 미국 실용주의와 콰인의 기치를 좇는 저자들의 근본 기조를 통해, 전통적으로 철학에서 제기되어 온 문제들에 이렇게도 접근할 수 있구나 하는 지적인 신선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어떤 식으로든 자연과학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가장 설득력 있게 여겨지는 방식의 철학함을 제시해주는 분야가 이와 같은 생물/신경철학 분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싹틔워준 독서였다. 번엿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융합적인 신생분야의 전문적인 글들을 한국어로 읽을 수 있도록 긴 기간 노고를 쏟아가며 함께 공부하고 번역해온 뇌신경철학 연구회 구성원들과, 학문적으로 양질인 책을 기획, 출판하여 일반 독자층이 접할 수 았게 해준 출판사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사족1. 책 첫 장에 '생물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he the biosphere!)' 라는 문구가 써 있다. 읽기 전에는 그저 그런 수사인 줄 알았는데 다 읽고 나니 편자가 왜 저런 문구를 삽입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분야의 프론티어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이 본질주의, 의식적 경험, 언어와 의미론, 의도와 지향성, 합리성, 윤리와 삶, 인간 본성, 일부다처제와 젠더문제, 인종 개념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 걸친 여러 문제들을, 자연과학의 토대에서 접근하여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지적 분투를 엿볼 수 있는바, 말 그대로 활발하고 생동감 있게 살아 숨쉬는 사유의 생물권을 조감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그 명칭만 알고 있던 목적의미론 분야를 다룬 파피노의 글은 언어철학에 관심하는 나로서는 흥분감마저 느끼게 하였다(여타 철학책의 인용 서지사항에서 그의 이름을 간간이 보기는 했었는데, 글도 아주 잘 쓰는 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묘사하고 비유하는 문장으로서 아주 적합한 문구였던 셈이다. 


사족2. 패트리샤 처칠랜드의 '신경철학'이 여타 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수철학적 내용이 많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읽기 쉽게 쓰이기도 해서였는지, 개인적으로 그나마 잘 읽힌 글이었다. 그녀의 글을 읽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신랄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논조로 자신의 생각을 잘 풀어내는 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저서 "신경철학"을 예전부터 눈여겨보기만 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 책을 꼭 사서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책을 통독하고자 하거나 생물/신경철학 분야에 관심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이 글 한 편으로 입문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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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 논리학 - 논리적 추론과 증명 테크닉
이병덕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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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고 적당한 수준의 논리학 교재이다. 부제가 말해주듯이 현대 명제/술어논리의 추론규칙 및 증명법의 핵심을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소개하면서도, 논리학을 이해하고 숙달하는 데에 필요한 사항들을 놓치지 않고 알기 쉽게 잘 전달해낸다. 특히 겐첸의 자연연역법을 저자가 나름대로 변형한 형태 역시 직관적이고 깔끔한 편이라 쉽게 이해하고 연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여타 논리학 교재들을 더 읽어본 뒤 비교해보고 싶어진다). 연습문제의 양과 난이도도 적당하다. 논리학을 전혀 모르는 쌩 입문자도 혼자서 읽어가며 논리학을 습득할 수 있을 만큼, 입문 수준의 논리학 교재로는 여러모로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하다. 논리학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아는 바를 한번쯤 깔끔하게 정리하는 데에 유용하다. 

 다만 첨언하자면, 논리적 추론을 숙달시키겠다는 저자의 의도가 꽤나 관철되었으니 귀결된 장점들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다 보니 논리학이라는 분야 자체에 대한 좀 더 심층적인 이해는 가져다주지 않는 듯하다. 오로지 논리적 증명법을 실질적으로 익히는 데에 관심한다면 만족하겠지만, 그 이상의 고차적인 이해에만 배타적으로 관심할 만큼 이미 논리학에 충분히 숙달해 있다든가, 실질적인 추론방법뿐만 아니라 깊은 수준의 논리학적/논리철학적 지식까지를 병행하여 습득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아쉬워할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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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론 교실 - 세상에서 가장 인기없는 강의
노야 시게키 지음, 김석희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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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수학 교양서이다. 무한론, 집합론, 수학기초론과 연관된 개념과 논제들을, 두 학생이 약간 괴짜스러운 교수의 강의를 수강하는 이야기 형태를 빌어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당 주제에 관한 지식을 정석적으로 습득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을 읽고 흥미를 키운 뒤 해당 분야들에 대한 공부를 나름대로 해 보고 다시 이 책을 읽어보면, '아, 그 개념이나 논제가 이렇게도 설명되는구나, 이런 예시와 비유를 통해서 이해될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자신의 이해도가 나름 진전되는 것과 그에 따른 지적 유희감을 경험할 수 있다. 간간이 피식거리게 만드는 저자의 개그도 매력포인트이다. 절판되었지만 혹여 중고매물을 발견한다면 구매 소장하여 생각날 때마다 가볍게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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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합본, 양장) 서양철학사
군나르 시르베크.닐스 길리에 지음, 윤형식 옮김 / 이학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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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의 평가가 이 책의 장점을 요약해준다: "대부분의 철학사 책들이 철학 사상의 영향 관계를 중심으로 한 학설사라면, 이 책은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철학과 정치사상 및 다른 학문들 간의 관계를 비교적 상세히 다룬다. 특히 자연과학과 철학이 서로 주고받은 영향관계는 이 책의 독자라면 시야에서 놓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통상의 철학사 책에는 결코 등장하지 않을 많은 정치, 사회, 경제 및 과학 사상가들에 관한 서술(후략)" 각 철학자들의 사상 내지 사조를 독립적 배타적으로 다루는 데에 중점을 두는 여타 철학사들에 비해, 철학적 사유가 흘러온바 철학 이외의 분야들의 맥락 내에서 철학사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은 철학사 서적이다. 그렇다 보니 내용이 꽤 방대할 수밖에 없지만 평이한 해설과 소개로 그 난점을 잘 해결해내었다. 양적인 부담감만 이겨낸다면 철학에 생초보인 입문자들도 부담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다. 반면 철학사에 다소 숙달되어 있기에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철학사 서적을 찾는 사람이라면 읽는 소득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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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 철학
곽강제 지음 / 서광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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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서로서도 이론서로서도 아주 만족스러운 책이다. 우선 논리철학과 연관된 A급 철학자들의 1차저술들을 모은 책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 분야에 대한 저서가 희소한 실정에서 이 점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역자가 다수의 번역서를 출간한 이력이 있어서인지 번역도 만족스럽다. 각 글들의 내용적인 탁월함도 책을 읽는 흥미와 소득을 더한다. (역자 자신의 글 두 편을 포함하여)모아진 글들 대부분이 취하는 대강의 기조가 논리와 실재,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다소간 혼동해온 기존의 논리학과 이를 떠받치고 있는 논리철학적 관점을 비판하고, 19세기 말부터 발전해온 현대 논리학 및 그와 연관된 철학적 관점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대학에서 현대 논리학을 배우면서도 기술적이고 테크니컬한 측면만을 기계적으로 습득하고 연습하는 학생들이나, 피상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논리학 지식만을 지닌 일반 독자들이, 논리학에 대해 지닐 법한 잘못된 생각이나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게 해준다. 책의 난이도를 보자면, 개별 글들이 모인 책이다 보니 독서의 난이도를 하나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약간의 논리학 지식과 평균적인 대학생 수준의 독서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정도이다. 이 분야에 관심하는 내가 유일하게 어렵다고 느낀 글은 E. 네이글의 '존재론 없는 논리학' 한 편이었다. 나머지 글들은 논리철학에 대한 입문격의 글로서 읽기에 충분하다. 


 개별적으로 흥미롭거나 소득이 많았던 글을 꼽자면 러셀의 '철학의 본질로서의 논리학', 앞서 언급한 네이글의 글, 코피의 '연역체계', M. 코헨의 '논리와 세계질서'이다.

 러셀의 글은 현대 논리학의 기초성격, 관계 개념의 형식적 속성, 문장 연결사 개념, 원자/분자명제 개념 등 논리/언어철학 일반에서 매우 기초적인 사항들 일부를 평이하게 소개하고 있다. 입문자에게 매우 추천될 만하다.

 네이글의 글은 읽기도 어렵고 연산체계에 대한 기호주의적, 형식주의적 관점이라는 주제 자체도 생소하지만, 그런 만큼 흥미롭고 식견을 넓혀주는 좋은 독서경험을 안겨주었다.

 코피의 글은 공리, 정의, 연역(증명, 도출, 유도), 연역 내지 연산체계, 연역체계의 형식적 속성 등 형식논리학 체계에서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개념들을 교과서적이고 정연하게 해설해주고 있다. 본디 그의 논리학 저서인 "기호논리학"에 실렸던 글이니만큼 다소 무미건조하지만, 논리학을 제대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논리학을 말 잘하는 테크닉 쯤으로 막연하고 단순하게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글이다. 엄밀한 체계로서의 논리학이란 어떤 것인 지에 대핸 윤곽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비교적 짧은 코피의 글은 일반인들이 논리학에 대해 지닐 법한 잘못된 선입견들, 특히나 논리를 실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관점과 밀접한 것으로 여기는 잘못을 걷어내는 데에 일조할 법하다. 논리학에 기대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을 세심하게 구별하여 논리를 오용하거나 과용하지 않는 데에 주의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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