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분석철학
M.K.뮤니츠 지음, 박영태 옮김 / 서광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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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하고 상세한 서술이 장점인 동시에 약간의 단점일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의 철학사 서적이다. 분석철학 초중기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선별해 한 장씩 할애하여 그 이론들 일부를 다루는데, 역자 서언과 원저자 서언이 말해주듯이 내용이 주로 논리철학, 언어철학적인 분야에 치중해 있어서 분석철학에서 또 다른 큰 줄기인 과학철학,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등의 분야는 매우 적은 비중으로만 다뤄지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한 마찬가지로 역자가 언급하듯이 다뤄지는 인물들의 1차문헌이 다량으로 풍부하게 인용되고 있어서, 원서나 학술논문을 통한 전문적인 접근이 어려운 일반 독자층이 조금이나마 더 원전에 기대어 탐구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있다. 그에 대한 저자의 해설과 서술방식도 상세하고 풍부한바, 생산성 없는 단순 반복적인 설명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점층적이고 유기적인 형태로 설명하고 있어서 철학사의 통시적 흐름과 그 세세한 얼개 양자를 알차게 조감 및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양적, 질적인 풍부함은 분석철학에 다소 숙달해 있는 독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겠으나, 초심자에게는 (그자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번역과 함께) 되려 난해함과 지루함을 가중시킬 우려가 다소 있는 듯하다. 인용된 원전의 양은 분명 풍부하지만 그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불충분하거나 따로 노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은 경우가 간혹 있었다. 책의 구성 측면에서도 사소한 어려움이 기인하는데, 장 내 절들이 대체로 그 이상 구분되어 있지 않아 한 절 전체의 호흡이 길다보니, 초심자라면 논의되는 논제나 이론 전체를 끝내 파악하지 못한 채 길을 잃을 공산이 커보인다. 다만 전술했듯 저자의 반복설명이 생산적이고 상세한 편이므로, 서술의 긴 호흡을 잘 따라갈 끈기와 독서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어쨌든 초심자도 능히 읽어낼 수 있을 법한 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다. 


 실제로 나의 경우 대학시절 언어철학을 처음 수강할 적에 강의를 따라가기가 벅차던 차에 이 책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바 있다. 학기 초 도서관 서가를 물색하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는 분량에 겁먹지 않고 큰 맘 먹고 구매하였다. 언어철학에 대한 흥미와 더불어 어떻게든 강의를 따라가야겠다는 욕심에 바쳐 무작정 읽어나갔는데, 당시 분석철학사라곤 일절 모르던 상태였음에도 끈기 있게 읽다보니,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큰 도움을 받으면서 분석철학사 전체를 나름대로 정리해낼 수 있었다. 내용이 워낙 상세하여 이후에도 밑줄 긋고 메모해가며 재독해온 것이 이번이 대충 여남은 번째임에도, 여전히 건져내고 추려내고 정리할 것들이 산재해 있었다. 양적인 부담감 및 직역투의 번역으로 인한 번잡함을 감내할 자신이 있다면 분석철학사에 관심하는 누구에게든 구매소장을 강하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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