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언어철학
윌리엄 G. 라이컨 지음, 서상복 옮김 / 책세상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는 "언어철학: 현대적 입문"이지만, 입문자에게는 분명 추천할만하지 않은 책이다. 영국의 Gary Kemp라는 사람은 자신의 저서 "What Is This Thing Called Philosophy of Language?"의 서문에서 이 책을 이렇게 촌평했다: "이 책과 비슷한 수준의 저서로서 William Lycan언어철학: 현대적 입문Philosophy of Language: A Contemporary Introduction(Routledge, 2, 2008)을 들 수 있겠다. 분명 뛰어난 교재이긴 하지만, 그 책과 나의 책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큰 차이점이 있다: Lycan 의 책은 주제별로 구성되어있다보니 해당 주제와 얽힌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론과 각종 주의(主義)ism, 철학적 문제들, 그 해결책과 반론들 전부가 압축적이고 빠르게 제시된다. 이런 식의 접근법은 해당 주제에 이미 충분히 숙달해 있어서 비교적 최근의 논의에도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수준 높은 학생들에게나 효력이 있을 뿐 초심자들에게는 버겁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어가며 내가 느꼈던 바의 핵심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각 장이나 절에서 다뤄지는 주요 주제나 논제에 대해 특정 입론들과 반론들, 그에 대한 재반론, 원저자 나름의 해결방안 등이 빠른 호흡으로 압축적이게 제시되다 보니, 기초적인 개념조자 모르는 언어철학의 초보자는 논의의 흐름을 잡기 매우 어려울 듯하다. 각 철학자들의 이론이나 주장을 통괄하여 충분히 조감해주지 않은 채 필요나 맥락에 따라서만 산발적, 부분적으로 논의에 삽입시키는 서술방식 역시, 초심자는 물론이요 언어철학을 다소 아는 독자에게도 읽는 어려움을 가중한다. 

 유난히 눈에 띄었던 것은 원저자가 각주로 달아놓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이는 많은 서지사항들이다. 'A는 자신의 저서 b1에서 여차여차를 주장했는데, B는 b2에서 b1의 저차저차한 부분을 문제삼았고, 이에 C가 b3에서 여차저차를 모색함에 따라 D는 (…)' 이런 식의 정보들이 자주 제시되는데, A ~ D 등의 인물과 그 저술들의 내용은 본문에서 상세하게 논구된 적이 없는 경우가 많고, 각주에서도 간략하게나마 부연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무척 뜬금없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학계활동을 업으로 삼는 정도의 전문가들에게나 도움이 될 법한 간략한 방향제시일 뿐, 입문자는 고사하고 철학에 관심하는 일반 독자층에게는 사실상 도움이 되지 않는 잉여적 정보의 나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간, 다소 강하게 말하자면 입문자들에게는 수준이 높아 읽히기 어렵고, 숙달된 일반 독자층에게는 필요한 부분을 메워줄 만큼 친절하지는 않아 역시 읽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라면 이 책보다는 여기서 제시되는 다양한 1차문헌들을 이미 독파하느라 바쁠 터이니 이 책을 읽을 리가 없는 셈이다. 전문가의 지도나 강의를 받으면서 활용할 요량이 아닌 바에야 혼자 읽어나가는 것은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다. 쌩 입문자에게 더 나은 선택지로는 이병덕의 "쉽게 읽는 언어철학"을, 다소 숙달된 철학서 독자들에게 더 나은 선택지로는 맥긴의 "언어철학"을, 영어에 부담이 덜한 사람이라면 초두에 언급한 켐프의 저서를 각각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