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와 철학
곽강제 지음 / 서광사 / 1993년 7월
평점 :
품절


교양서로서도 이론서로서도 아주 만족스러운 책이다. 우선 논리철학과 연관된 A급 철학자들의 1차저술들을 모은 책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 분야에 대한 저서가 희소한 실정에서 이 점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역자가 다수의 번역서를 출간한 이력이 있어서인지 번역도 만족스럽다. 각 글들의 내용적인 탁월함도 책을 읽는 흥미와 소득을 더한다. (역자 자신의 글 두 편을 포함하여)모아진 글들 대부분이 취하는 대강의 기조가 논리와 실재,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다소간 혼동해온 기존의 논리학과 이를 떠받치고 있는 논리철학적 관점을 비판하고, 19세기 말부터 발전해온 현대 논리학 및 그와 연관된 철학적 관점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대학에서 현대 논리학을 배우면서도 기술적이고 테크니컬한 측면만을 기계적으로 습득하고 연습하는 학생들이나, 피상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논리학 지식만을 지닌 일반 독자들이, 논리학에 대해 지닐 법한 잘못된 생각이나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게 해준다. 책의 난이도를 보자면, 개별 글들이 모인 책이다 보니 독서의 난이도를 하나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약간의 논리학 지식과 평균적인 대학생 수준의 독서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정도이다. 이 분야에 관심하는 내가 유일하게 어렵다고 느낀 글은 E. 네이글의 '존재론 없는 논리학' 한 편이었다. 나머지 글들은 논리철학에 대한 입문격의 글로서 읽기에 충분하다. 


 개별적으로 흥미롭거나 소득이 많았던 글을 꼽자면 러셀의 '철학의 본질로서의 논리학', 앞서 언급한 네이글의 글, 코피의 '연역체계', M. 코헨의 '논리와 세계질서'이다.

 러셀의 글은 현대 논리학의 기초성격, 관계 개념의 형식적 속성, 문장 연결사 개념, 원자/분자명제 개념 등 논리/언어철학 일반에서 매우 기초적인 사항들 일부를 평이하게 소개하고 있다. 입문자에게 매우 추천될 만하다.

 네이글의 글은 읽기도 어렵고 연산체계에 대한 기호주의적, 형식주의적 관점이라는 주제 자체도 생소하지만, 그런 만큼 흥미롭고 식견을 넓혀주는 좋은 독서경험을 안겨주었다.

 코피의 글은 공리, 정의, 연역(증명, 도출, 유도), 연역 내지 연산체계, 연역체계의 형식적 속성 등 형식논리학 체계에서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개념들을 교과서적이고 정연하게 해설해주고 있다. 본디 그의 논리학 저서인 "기호논리학"에 실렸던 글이니만큼 다소 무미건조하지만, 논리학을 제대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논리학을 말 잘하는 테크닉 쯤으로 막연하고 단순하게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글이다. 엄밀한 체계로서의 논리학이란 어떤 것인 지에 대핸 윤곽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비교적 짧은 코피의 글은 일반인들이 논리학에 대해 지닐 법한 잘못된 선입견들, 특히나 논리를 실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관점과 밀접한 것으로 여기는 잘못을 걷어내는 데에 일조할 법하다. 논리학에 기대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을 세심하게 구별하여 논리를 오용하거나 과용하지 않는 데에 주의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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