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기적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33
장 주네 지음, 박형섭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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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 1920년대 프랑스의 감옥을 본다는 것은 21세기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꽤나 낯선 경험이다.
작가 장 주네의 작품을 보기 전에 먼저 그의 인생사를 아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생후 7개월만에 버려졌고, 청소년기에는 감화원에 수감되더니, 반복되는 절도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가 사면되기도 했다. 그의 인생이 그가 쓴 작품보다도 더 극적이다.

이 책 <장미의 기적> 은 프랑스 퐁프트브로 형무소 이야기이다. 손발이 쇠사슬로 묶인 채, 도착한 그곳에서의 생활은 처음부터 무시무시하다.
죄수와 간수의 군대식 위계질서, 사형수의 죽음과 비인간적인 대우들 등, 현대를 살아가며 감옥이라곤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글만 봐도 섬뜩하다.

형무소, 그곳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남창, 강도, 동성애자, 부랑자들까지 속칭 인간말종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더러워하지만 반대로 측은해 하기도 한다. 모순된 감정을 품으며 그들도 삶을 갈구하고, 살아 남아서 내일을 꿈꾸는 인간들이다.
그러나 그들 대다수는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며 불우한 일을 자연스레 지지르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들이 다수에게 피해를 준 것이 먼저인지, 사회에 의해 그들이 피해를 받은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지닌 장 주네가 자신의 절도충동을 자제하지 못하고 감옥에 까지 이른 상황은 나쁘지만 그곳에서 그가 묘사해내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은 볼만하다. 형이 끝나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과 종신형 또는 사형을 선고받은 이들은 세상을 보는 방식도 달라진다.
극한의 상황속에서 시시때때로 변하는 인간들 심지어 간수들의 변화무쌍한 심경과 행동까지 그의 입과 손을 통해 글로 남아 전달된다.
그래서 그는 형무소를 자신을 만들어준 우주로,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곳에서의 낯선 생활과 경험들은 인식의 확대를 가져왔고 그를 변모시켰다.

철학적 인간은 어디에서고 삶과 죽음, 인간에 대해 철학하기에 형무소라는 특수한 공간은 장 주네에게 새로운 판을 깔아주었나 보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내용이 거칠고 다소 거북하기도 했다. 내가 사는 세상과 너무 다르기에 한편으로는 이해된다.
그러나 그때도 인간들은 살아 숨쉬었고, 지금도 그와같은 환경에서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도 생각의 판이 새로 열리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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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
최지은 지음 / 유선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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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유일한 것은 '죽음' 이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고 나약하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인간은 그저 죽음 전에 찾아오는 노화와 고통을 떠올리며 죽음이 두렵기만 하다. 그 두려움을 해소하고자 신도 찾고 종교도 찾는 것이 인간이다.

소위 말해, 잘 나가는 커리어를 가진 저자에게 갑작스레 죽음의 그림자가 덮쳤다. 딱히 죄지은 일도 없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왔는 데, 억울하다. 이제 좀 살만하다 싶을 때, 그것도 타지에서 찾아 온 병마는 원망스럽기만 하다.
한없이 울고만 싶은 데, 울고 있을 수 만은 없다. 조금이라도 더 삶을 영위하고 싶다면 살고 싶다면 해야할 일이 산더미다. 암전문의를 찾고 병원을 예약하고 보험도 살핀다. 이제는 병마와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해야한다.

나의 아픔을 날 사랑하는 이들에게 알리는 것은 병만큼이나 아픈 일이다. 고통스런 항암을 견디며 몸도 마음도 피폐해지고 함께 있어주는 엄마와의 관계까지 힘들어진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오는 또 다른 형식의 아픔이다.
이 고통이 언제나 끝날까? 그 끝이 있기나 할까? 고통의 끝은 죽음일까?

함께 응원하며 병마와 싸우던 이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면 간신히 붙들고 있던 용기도 무너져 내린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서 가장 빠르게 삶의 의지를 잃은 사람들은 의외로 긍정주의자들이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희망을 품고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주던 사람들이 끝이 없다는 것을 알자 오히려 가장 먼저 희망의 끈을 놓아버렸다는 것이다.
기대는 나를 살리기도 하지만 충족되지 못할 때 더 큰 절망이 되어 쓰나미처럼 덮치기도 한다. 그 순간을 감내하지 못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도 하나보다.

암환자의 투병일지를 본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 다르기도 했고 더 무섭기도 했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 조차 조심스럽다
병이라는 것이 환자의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겨냈고 이겨내고 있었다.
인간의 인생사가 그렇듯, 모든 것에는 본인의 마음과 의지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과도한 희망고문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내 삶을 선택할 정도의 의지는 있어야 했다. 저자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 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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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이름 - 우리가 몰랐던 독서법 125
엄윤숙 지음 / 사유와기록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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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좀 해봤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 많은 독서의 종류가 있는 줄 몰랐으니 좀 부끄럽다.
독서를 부르는 다른 이름은 이명(異名)이라고 한다. 독서의 수많은 이명을 알아보는 이 책의 부제는 '우리가 몰랐던 독서법125' 이다. 125가지나 되는 이름을 가진 독서의 깊이와 넓이는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다독, 낭독, 구독, 묵독, 음독, 속독, 오독, 완독, 정독, 해독, 재독, 탐독 이외에도 수많은 독서들이 있는 데, 이 중 신선하고 인상적이었던 것들 위주로 살펴 보고자 한다.

<체독>은 글자에 표현되어 있는 것 이상으로 그 참뜻을 체득하여 읽는 것을 말한다. 머리로만 읽는 게 아닌 온몸을 통해 읽는 것으로 눈에 담고, 뼈에 새기고, 가슴에 녹여내는 통합적이며 종합적인 경험이다.
<배독> 은 남의 글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공손히 읽는 것이다. 나는 김훈 작가님 책을 읽을 때, 그 분의 방대한 역사지식과 휘몰아치는 필력에 반해 한줄한줄 감탄하며 읽었었다. 그 순간이 떠오른다.
<미독>은 내용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읽는 것 인데, 시 처럼 함축적인 문장이 많거나 은유가 많이 함유된 책을 읽을 때 그렇게 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맛있는 문장의 맛이랄까.
<회독> 은 여러 사람이 모여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독서모임을 하면 내가 미처 생각치 못한 부분을 다른 이의 시선에서 볼 수 있어 좋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여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그러나 독서는 일상이 되는 것이 좋다.
그렇기에 설사 남독이나 오독이라도, 편독, 적독, 비독, 난독, 약독, 전독일지라도 책을 늘 가까이 두고 함께 하는 것이기에 아예 책을 읽지 않는 것보다 좋다고 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는 말도 있지 않은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이해하고 잘 읽는다 생각지 말고 책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처 알 지 못했던 다양한 독서의 종류와 의미를 알게되어 나에게는 꽤나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 책에서 얻은 지식과 깨달음이 앞으로 나의 독서인생에 큰 영향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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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리움 - 문화체육관광부 선정도서, 한학기한권읽기, 청소년추천도서, 타이페이도서전 선정도서
복일경 지음 / 세종마루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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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구달은 "인간에게는 동물을 다스릴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지킬 의무가 있다" 고 했다.
인간과 다른 생명체 간에 발생한 비극은 이 진실을 간과해서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세상의 지배자라고 생각했다.

2033년, 지구 온난화에 녹아내린 빙하로 도시들은 잠기고 이재민들이 생겼다. 식량 마저 부족해지자 가축을 키워 식량공급을 하기 위한 거대건물 센트리움이 생긴다.
이야기는 그곳에서 수의사로 일하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열악한 환경의 축사에서 식용으로 키워지는 닭, 돼지, 소 등 가축들의 상태는 좋지않다. 아니 몹시 나쁘다.
이 부분에서 소설은 동물들의 처참한 상황을 리얼하게 설명하고 있어 보기가 무척 힘들었다. 오로지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해 태어난 생명체에게 삶이란 고통이다. 동물들 조차도 자신들의 고통을 아는 지 난동을 피우거나 자살을 하고 새끼들을 죽이기 까지 한다. 노예제가 있던 시절의 인간들의 삶보다 더 비참하다.

육식동물이 고기를 먹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가? 개개인의 건강과 영양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육식도 채식도 가능하다.
육식은 무조건 나쁘니 채식만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센트리움에서 일어나는 방식은 생명체를 공장식 물건처럼 제조하기에 고통만 받다가 죽는 생명체가 생긴다.
그러나 실은 센트리움이라는 가상 공간만이 아니라 현재도 곳곳의 농장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우리도 깊이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인간의 건강이 동물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지극히 지배자적인 인간들만의 가치관이다. 어느 누구도 생명체의 소중함을 나눌 권리는 없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다.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나는 먹어야 했으니 애써 외면했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렇다. 마음은 아프되 저렴하게 식재료도 공급받아야 하니 동물들의 울부짖음과 피비린내는 차라리 모르고 싶은 거다.

소설은 센트리움 수의사였던 주인공이 2110년 백번째 생일을 맞으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백살의 그가 사는 세계는 인간도, 동물도 동등하게 더불어 살며 육식따위는 없어진 지 오래다.
저자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인 것 같다.
나는 답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로 인해 고통을 겪는 생명체는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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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카 유랑단
박혜영 지음 / 아무책방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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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카는 이슬람 교도들의 여성 의복이다. 온몸을 가리고 눈만 보이거나 망형태로 가리는 옷이라 여성억압정책의 상징이기도 하다.
비 이슬람교에게는 심한 거부감을 주는 이 의상이 책의 제목이라니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돌이켜 보면, 감수성 넘치는 소녀들에게 10대라는 나이는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도 세상이 힘들게 느껴지는 시기다.
그러나 아란, 돌리, 자옥, 지호에게는 소녀들을 힘들게 하는 삶의 무게들이 더 얹혀져 있다.

아란은 화장실에서 혼자 밥을 먹어야 하고, 체육시간을 함께 할 친구도 없다. 아란에게 학교는 감옥이다.
인도에서 온 돌리의 엄마는 히잡을 쓰지 않은 어느 날 사고로 죽었고, 그 후로 돌리는 아빠의 지시로 한국학교에서도 부르카를 쓰고 지낸다.
베트남으로 떠나버린 엄마가 그리운 자옥은 폐지줍는 할머니와 둘이 사는 기초생활수급자이다. 고단하게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희망은 없다.
지호에게 우울은 아무 이유없이 찾아왔다. 치료를 받으며 우울과 불안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그런 날이 올 지는 알 수 없다.

사회는 이들에게 여러 종류의 투명 부르카를 씌워 놓았고, 소녀들은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허우적 댄다.
찐따, 무슬림소녀, 다문화 소녀가장, 우울증 환자라는 굴레까지 지닌 소녀들을 탈출시켜 준 건 기타, 보컬, 베이스, 키보드 연주를 하는 청소년 밴드였다.
마침, 돌리가 다문화 밴드를 만들려는 기획사의 명함을 받으며 그들은 밴드를 하기 위해 모인다.
한번의 합주가 끝날 때마다 이들은 조금씩 성장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세상과 맞설 힘을 얻고, 억압에 저항할 용기를 가지며, 온전한 인간으로 독립할 이유를 얻는다.
부르카 유랑단은 그렇게 탄생했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너무 힘들다고 주저 앉아있기엔 세상은 넓고 인생은 길다. 지금 느끼는 고통과 좌절이 영원할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을 날도 찾아온다.
날 덮고 있는 부르카는 나 만이 벗어던질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보자. 그 길에 희망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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