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만 틀리지 않아 콩닥콩닥 9
칼 노락 글, 자우 그림, 박선주 옮김 / 책과콩나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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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어캣들이 한 방향으로 서서 무언가를 쳐다봅니다. 같은 모습이라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약간씩 자세가 다릅니다. 키, 생김새, 손이 올라간 위치가 모두 다르군요. 이 책은 아마도 미어캣들의 각각 다른 모습을 통해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한 것 같네요. 어떤 내용일까요?

미어캣 4마리는 친구입니다. 이들은 항상 함께 있지만 의견이 달라 자주 싸우곤 하지요. 모두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하늘을 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 특히 심하게 말다툼을 합니다. 반듯하게 누워서, 산꼭대기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서, 두 눈을 감고, 그냥 제자리에서 고개를 들고 보는 것 중 어느 방법이 제일 완벽한 것일까요? 

 미어캣들에게는 이 뿐 아니라 멋진 도마뱀의 색깔, 가장 바삭바삭한 풍뎅이, 비가 올 때 하늘을 보는 방법, 무지개에 대한 생각 등 다툴 거리는 무척 많습니다. 싸우는 모습을 보니 이들은 서로의 다른 생각과 생활습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서로 멍청하다고 놀리고 바보라고 비난하는 모습 속에는 이해하려는 노력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친구 사이가 유지될 것 같지가 않네요.

결국 미어캣들은 몸싸움을 시작했어요. 서로 밀고 나뒹굴면서 격렬하게 싸웠지요. 그렇게 뒤엉켜있는데 갑자기 독수리가 나타났다 사라졌어요. 모두 동작을 멈추고 독수리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번에도 역시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는 않네요. 하지만 각자가 제시한 방법을 잘 활용해 결국 독수리의 습격을 피하게 되지요. 각자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마음으로 느끼는 계기가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미어캣 친구들은 서로를 욕하고 상처주는 말을 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각자의 생각을 그대로 인정하고 의지하지 않을까요. 함께 있는 소중함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아이들도 책을 보며 친구들의 다른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저 다를 뿐, 그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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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
찰스 디킨스 지음, 정의솔 옮김 / B612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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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는 찰스 디킨스의 유작으로, 미완성 추리소설입니다. 19세기에 쓰인 작품이라 그런지 희극이 떠오르는 문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등장인물들은 대화 중 섬세한 감정을 드러내고 약간 과장된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문체라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의 마음을 묘사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매료됩니다. 사람의 외양이나 풍경, 사물에 대한 묘사가 아주 자세해 영화를 보듯 사건을 그려나갈 수 있어 실감났다고나 할까요. 그가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6부까지 연재된 내용은 작가의 죽음으로 인해 미완성으로 끝났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한껏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범인이 공개된 듯한 내용이지만 그가 범인이라는 정확한 설명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말을 여러 가지로 예측했습니다. 몇 명의 범인을 정해놓고 그날의 관객 투표에 따라 결말을 다르게 내는 공연이 아직까지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이 작품에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고 봐야겠지요.

 

이 이야기는 제목에 등장하는 에드윈 드루드의 삼촌, 존 재스퍼의 대한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성당 성가대의 지휘자로 절제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지요. 아편 중독에 조카의 약혼녀를 넘보는 인물입니다. 조카인 에드윈의 약혼녀, 로사 버드는 사랑스러운 아가씨라 충분히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세상에는 해서는 안 될 사랑이 있기에 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좀 불편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책의 중반부쯤 되면 에드윈이 사라집니다. 에드윈이 실종되고 그의 시계와 셔츠 핀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은 그가 살해됐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로사를 흠모하고 에드윈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던 청년이 용의자가 되지요. 존 재스퍼는 조카를 잃은 슬픔을 격렬하게 표현하며 용의 선상에서 벗어납니다.

 

에드윈은 사라진 걸까요, 살해된 걸까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그가 살아서 나타난다면 아주 극적인 연출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삼촌이 조카를 살해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니 아무래도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누가 범인일까요? 그의 삼촌일 수도, 연적일 수도, 또 다른 적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삼촌인 재스퍼가 범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랑에 빠진 광기 어린 인물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라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여러 군데서 보였기 때문입니다.

 

존 재스퍼는 수도원 묘지의 구석구석을 잘 아는 듯 보입니다. 대성당 묘지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더들스의 열쇠를 가지고 그가 어디론가 갔다 온 것 같은 상황이 있었지요. 그때 어느 깊숙한 곳을 발견한 것은 아닐까요. 시체를 숨겨두기에 적당한 장소 말입니다. 그가 더들스에게 건넨 와인에 무슨 약이라도 들어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고 말이지요. 시장인 삽시의 비열함을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이 사건에 그를 이용하는 재스퍼의 교활함도 그냥 보아 넘기기 힘듭니다. 이 외에도 그가 보인 여러 가지 행동은 그에 대한 의심을 부채질합니다. 아편굴을 운영하는 여자가 재등장하면서 재스퍼의 숨겨진 행적을 암시하는 와중에 이야기가 끝나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책을 덮으면서 예정됐던 12부까지 진행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은신처에서 생활하는 로사와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궁금하고 그루져스 씨의 온화하고 사려 깊은 후견인의 행보와 대처리 씨가 앞으로 펼쳐나갈 탐정 역할도 무척 흥미를 끌어 그런 마음이 깊어집니다. 완성됐으면 천 쪽이 넘는 분량이었겠지만 길다는 생각을 못하고 푹 빠져 읽는 사람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결말을 상상할 수밖에 없겠네요. 저는 에드윈이 살아서 나타나는 결말과 존 재스퍼가 범인이라는 결말 두 가지로 상상해보겠습니다.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한 가지씩 그려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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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소설가의 개이고 여기까지 타이핑하는 데 세 시간 걸렸습니다
장자자.메시 지음, 허유영 옮김 / 예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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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깁니다. 솔직히 아주 깁니다. 그런데 소설가의 개가 썼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납니다. 제목을 쓰는 데 세 시간이 걸렸다면 이 책은 평생에 걸쳐 썼겠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진지하게 자판을 두드리는 개의 모습은 표지와 똑같았을까요. 아무튼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웃고 말았네요.

 

개는 세상을 어떻게 볼까요. 다른 개는 모르겠지만 골든레트리버, 메시는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언제나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재능이 있습니다. 사실 메시는 큰 귀 때문에 주눅 들어 있는 개였지요. 하지만 아빠라 부르는 주인은 메시를 멋진 개라고 생각합니다. 아빠의 자부심에 힘입어 자신감을 갖게 된 메시. 이후로는 자신의 부족함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현재 바꿀 수 없는 것에 절절한 심정으로 매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메시를 본다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메시의 아빠는 작가입니다. 글을 열심히 쓸 때도 있지만 놀 때도 있지요. 그의 수입이 줄어들면 바로 자신의 밥 종류가 달라질 수도 있기에 메시는 아빠를 독려합니다. 책 표지를 본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작가인 아빠처럼 메시도 글을 씁니다. 열심히 글을 쓰면 사람들이 개를 친구로 생각하게 될 거라는 아빠의 말 때문이지요. 덕분에 개가 보는 세상을 엿볼 수 있어 다행이다 싶습니다. 아빠와 어울리는 이웃들, 그 반려동물들과 더불어 웃기도 하고 눈물짓기도 하는 메시를 통해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라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니 말입니다. 아빠 곁에 있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메시를 보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수풀 속에 들어가 앉기를 좋아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도 좋아하는 메시는 자신과 함께 일상을 보내는 아빠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을 즐길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지요. 그냥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메시는 즐거워 보입니다. 그녀는 아빠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감정을 공유합니다. 행복과 슬픔, 외로움까지도 함께 하는 이들은 평생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메시의 아빠처럼 메시를 사랑한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될지는 안 봐도 알 것 같습니다.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를 구별할 줄 알고 글도 쓸 줄 아는 특별한 개, 메시. 그녀는 앞으로도 아빠와 함께 하며 친구인 푸들, 코커스패니얼, 사모예드, 셰퍼드와 아웅다웅 다투면서 즐겁게 지내겠지요. 메시의 다음 이야기에는 새로운 이웃이 등장할지 새삼 궁금해집니다. 메시가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판을 칠 때 마음처럼 빨리 글자를 칠 수 없어 힘들어하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궁금하니 어쩔 수 없네요. 메시가 실연당한 셰퍼드의 아빠를 훌륭하게 위로해 주었듯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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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해야겠어요 - 감정의 묵은 때를 씻어 낼 시간
박성만 지음 / 유노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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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해야겠어요>는 중년 여성을 위한 심리도서입니다. 다가오는 중년기를 의식하며 펼쳐 들었지요. 저자는 왜 '여성'이 아니라 '중년 여성'에 주목했을까요? 인생 전반부를 넘기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한 번쯤 돌아보게 됩니다.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고, 앞으로 다가올 노년도 걱정됩니다. 자식들은 성장해 자신의 곁을 떠나갑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없어진 것 같아 우울하기도 하고 사라진 청춘이 아쉽기도 합니다.

 

중년의 여성들은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겪을 법한 혼란스러움을 겪게 되지만 별 것 아니라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이유모를 불안함, 우울함은 화병으로 나타나기도 하지요. 저자는 마음속에 있는 이런 여러 가지 감정들을 외면하지 말고 정면에서 바라보기를 권합니다. 고통과 갈등의 원인이 되는 이 '감정 덩어리'를 정화한다면 중년 이후의 인생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가 '중년 여성'의 감정에 대한 책을 쓴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중년을 대비하고, 중년을 잘 넘기기 위해 고민하는 많은 여성들에게 필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분석심리학 세미나와 심리 클리닉에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합니다. 이들은 주변 어디에선가 본 듯한 모습입니다. 커오면서 바라봤던 엄마와 그 또래 여성들의 모습이 기억나기도 하고 현재의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칼 융의 분석심리학 개념을 적용해 중년 여성의 심리를 분석하고 이를 치료해나가는 저자는 그녀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제 자신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여성들이 겪는 고민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아내로, 엄마로 살면서 예전의 자신을 잃어버린 모습을 고민하고, 다른 사람을 충실히 챙기면서 동시에 그들을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도 사랑스럽지 않아 당황하고 너무나도 여성스러운 다른 여성을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기도 합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대상이 아무도 없다는 느낌에 우울감을 느끼기도 하고 직장에서 할 말을 하지 못해 속앓이를 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상담을 진행하면서 차차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옵니다. 무의식을 들여다보며 그동안 썼던 가면을 벗고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결국은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저자는 감정의 덩어리를 콤플렉스라고 부르는데 민감한 부분이 콤플렉스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열등감이나 부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우월감이나 좋은 감정도 억압하면 콤플렉스가 된다고 합니다. 이 콤플렉스는 좋은 것이나 나쁜 것으로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정신 현상이므로 특정 대상의 콤플렉스를 알면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지요. 책을 읽으면서 콤플렉스를 무조건 안 좋은 것으로만 여기던 기존의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콤플렉스를 없애버리고자 한다면 오히려 억압으로 작용해 더 커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의 콤플렉스를 의식하고 감정의 때를 씻어냄으로써 치유와 성장을 도모해야 함을 기억해야할 것 같습니다. 

 

오래 쌓인 감정을 묵은 빨래에 비유하며 적당한 시기에 씻어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 깊습니다. 마음에 어느 정도 감정이 쌓여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보며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 모두를 솔직하게 인정해야겠습니다. 콤플렉스는 자신을 수용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니까요. 사랑, 이해, 배려와 더불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질투, 허영, 자만을 꺼내서 깨끗이 씻어볼까 합니다. 세탁된 감정들이 폭신폭신해지기를, 좋은 향이 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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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아야세 마루 지음, 이연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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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아래서 기다릴게>는 봄향기를 떠올리게 하는 일본소설입니다. 벚꽃나무가 모여 있는 풍경을 '복숭앗빛 안개'로 표현하던 타케후미의 눈을 빌려 벚꽃이 흩날리는 광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봄에 읽게 되어 좋았지만 겨울이 되면 또 읽고 싶어질 것 같기도 합니다. 차가운 겨울에 따스한 봄을 떠올리며 가슴 설레는 마음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단편 5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등장하는 벚꽃뿐 아니라 각각의 이야기에 목향장미, 탱자꽃, 유채꽃, 백목련이 등장해 아름다운 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꽃은 자연에서도, 등장인물들의 옷이나 소지품에서도 볼 수 있지요. 토모야의 할머니가 입은 고운 원피스를 점점이 수놓은 노란 꽃이나 네일 아트를 잘 하는 코코미의 손톱에 피어난 꽃이나 사쿠라의 옷에 그려진 은은한 색조의 꽃이나 벚꽃이 흩날리는 스노 글로브나 모두 봄 내음을 물씬 풍깁니다. 꽃은 그냥 봐도 아름답지만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일 년에 삼사일 정도만 피어 있는 백목련을 바라보는 치사토의 할머니에게 백목련은 세상에 다시없을 소중한 꽃인 것처럼 말입니다. 지나치면서 예쁘다는 말만을 흘리고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소중히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꽃의 입장에서도 아주 기쁜 일이 아닐까 싶네요.

 

각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기차여행을 합니다. 할머니 댁에 가기 위해,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뵙기 위해, 어머니의 기일을 기리기 위해, 이모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은 기차에서 한 승무원을 보고, 그녀에게 커피를 사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 승무원이 바로 다섯 번째 단편의 주인공, 사쿠라입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인 그녀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모두 만나본 셈이지요.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 자는 모습, 우는 모습을 모두 본 그녀는 '어딘가 인연이 있는 장소'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큰 눈을 반짝이며 그들의 여행을 짐작하는 그녀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지만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에게는 고향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녀가 꿈꾸고 상상하는 그런 안온한 곳을요.

 

책을 읽고 나니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기차를 타고서 멀리 갔다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고향으로 가야겠네요. 보고픈 얼굴들이 있는 그곳으로 가서 힘든 일상을 털어버렸으면 싶네요. 여행의 즐거움,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모두 누리고 와야겠습니다. 봄이 다 가기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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