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아시아 제45호 2017.여름 - 사오싱 Ⅲ Shaoxing Ⅲ
아시아 편집부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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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는 여행기, 소설, 시, 서평 등이 실린, 계절마다 발행되는 문학잡지입니다. 국내 작가들은 물론 평소 접하기 힘든 아시아의 다른 나라 작가들의 작품도 읽어볼 수 있어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잡지이기도 합니다. 그간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홍콩, 인도, 몽골 등의 문학작품이 골고루 소개되었는데 이번 호에는 필리핀 작가들의 시와 미얀마, 터키 작가의 소설이 실렸습니다. 짧은 글들을 통해 각 나라의 정서를 느끼면서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좀 더 많은 아시아의 작가들이 대중에게 알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호에서 기대되었던 부분은 고은 시인의 대담과 그의 시였습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고은의 시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삶이 내비치는 시를 보고 있자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지요.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의 시 '하늘'에 나오는 구절처럼 '하늘은 하늘이고 땅은 땅'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의 근원을 바로 알고 각 생명의 다름과 소중함을 인정하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그런 세계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른 언어로 쓰인 고은의 시를 수많은 나라에서 공감하며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고은의 국제 활동에 대한 내용이 담긴 대담과 함께 흥미롭게 봤던 것은 중국 사오싱 여행기였습니다. 왕희지의 자취를 더듬고 월나라를 상상하는 글은 사오싱이라는 장소에 가보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물의 도시 사오싱. 옛 도읍이었던 그곳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유명한 사람들의 생가와 오래된 저택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역사를 떠올리게 될 수밖에 없겠지요. 기원전에 존재했던 월나라, 월왕 구천과 책사 범려, 절세미인 서시의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도시를 여행하며 사색하는 글이 마음에 들어 김인숙의 도시 기행집을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아시아>는 2006년 여름에 창간호를 냈다고 하지요. 10여 년 동안 우리의 문학, 아시아의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좋은 작품들이 영어로 번역되어 세계에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한국어의 고유한 정서가 보다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잘 번역되어진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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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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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신스는 한두 송이만 피어도 방 안을 향기로 가득 채웁니다. 잊을 수 없는 향긋함은 할아버지의 기억 저 너머에서 추억이 되어 어느 순간이 되면 저절로 그를 감쌉니다. 할머니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떠오를 때마다, 손자와 함께 있을 때마다 그는 늘 그 향기를 맡습니다. 할아버지는 매일 자신의 광장으로 갑니다. 광장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끼지만 그 자신의 힘으로는 그 크기를 원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곧 그 광장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겠지요. 그러면 그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요.

이 책은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그 곁을 지키는 아들 테드, 손자 노아의 이야기입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서서히 잃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요. 할아버지의 머릿속을 상징하는 광장에서 그와 테드, 그와 노아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자니 누구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일에 원망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부여잡고 싶은 기억들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니 너무나 허무합니다. 소중한 이들을 기억할 수 없다면, 내가 누군지 기억할 수 없다면 나는 온전한 나로 불릴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서서히 헤어져야 하는 할아버지와 그런 그를 지켜봐야만 하는 가족들은 두려움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합니다. 기억을 붙잡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괴로워하는 할아버지를 도와줄 방법을 찾는 노아에게 테드는 말합니다. "할아버지랑 같이 길을 걸어드리면 되지. 같이 있어드리면 되지." 기억을 잃어도 그는 여전히 아버지, 할아버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저 함께 있는 것밖에 할 수 없지만 그것은 얼마나 큰일인가요.
괴로움과 아픔을 함께 하면서 그와 함께 있을 수 있음을 기뻐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시로 다가옵니다. 소중한 이와 하루하루 이별을 해나가는 이들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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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알았어야 할 일
진 한프 코렐리츠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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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그럴 때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가 없을 뿐더러 그때는 어쩔 도리가 없었노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직감을 애써 무시했던 일이 떠오르곤 합니다. 후회되는 일이 사소한 것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에 해당한다면 어떨까요. 이를테면 함께 살고 있는 배우자에 관한 것이라면요. 결혼생활에 위기가 닥쳐와 금방이라도 가정이 깨질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사람이 이렇다는 걸 처음에 알았다면.'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그레이스는 사람들이 내면에서 떠오르는 의심을 너무나 쉽게 무시한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심리 치료사로서 자신을 찾아오는 불행한 부부들을 보며 사람들이 잘못된 사람을 선택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진작 알았어야 할 일』이라는 책을 씁니다. '너는 처음부터 그 사람의 단점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그를 선택한 건 너야. 모른 척 하지 마.' 이런 직설적인 내용이 담겨 있지요. 책을 통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이미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새 출발을 하면서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머리 좋고 다정하며 환자에게 헌신하는 의사, 이런 사람을 남편으로 둔 그레이스는 남편을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런 남편, 사랑스러운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레이스는 자신 또한 불행한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낍니다. 뉴욕 맨해튼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그녀의 삶은 완벽해 보입니다. 적어도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녀의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학부형이 살해당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 뒤로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몇 마디 나눠 보지도 못한 학부형의 살인 사건은 그녀를 절망으로 내몹니다. 용의자로 지목된 그녀의 남편 때문이지요. 대체 진실은 뭘까요.

연락이 되지 않는 남편을 미친 듯이 찾다가 그레이스는 어떤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녀의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지요. 최고의 남편이라 믿었던 사람을 점점 의심하면서 자신의 선택이 옳지 못했음을 깨닫는 힘겨운 과정을 보면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게 일어날리 없다고 생각한 일이 갑자기 일어나면 그 충격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지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인 그녀,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살아가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왜일까요. 작은 의심들을 그냥 묻어둔 적이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동질감을 느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은 살인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습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보다는 그레이스의 심리 상태를 전달하는 것을 우선합니다. 저자는 그녀가 느끼는 긴장, 공포, 두려움을 함께 느끼며 달리듯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합니다. 그레이스의 남편에 대한 진실에 다가갈수록 입을 다물 수가 없는 만큼 처음보다는 뒤로 갈수록 재미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게 인생이지요. 한 치 앞을 못 보는 대신 우리에게는 직감이라는 것이 있으니 때로는 그 직감을 믿고 선택이라는 것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늦기 전에, 쓰라린 고통에 시달리기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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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학 기행 - 방민호 교수와 함께 걷는 문학도시 서울
방민호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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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읽었습니다. <서울 문학 기행>은 한국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서울을 이야기합니다. 한양, 경성 등의 이름을 가졌던 지금의 서울은 한 나라의 수도로 모든 영광과 굴욕의 세월을 담고 있는 공간입니다. 그간의 세월이 겹겹이 쌓인 이 공간 속에는 무수한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고 이는 문학 속에서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옛 사람들이 숨 쉬던 공간을 이렇게 공유하면서 우리는 비슷하고도 다른 삶을 또 살아 나가겠지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어 냈던 작가들의 삶 속에 자리 잡은 서울. 이 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글들은 재미있습니다. 그들이 태어나고 자라던 모습, 학교에 가고 산책하던 일상, 주변인물과 교류하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나라를 잃은 설움을 글을 쓰며 달래고 지식인의 열정을 불태우며 독립운동에 몸담기도 하던 그들의 삶은 시간이 더 흘러도 여전히 서울이라는 공간 속에서 건재하겠지요. 정말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 해설을 보면서 소설의 내용을 떠올리고 그 속에 비친 서울이 이런 풍경이었던가 되새깁니다. 

아무래도 일본 강점기에 남긴 소설을 보면 일제의 폭정을 느끼게 돼 마음이 아픕니다. 그 시절을 보내야 했던 사람들은 오죽했을까요. 경복궁 앞에 들어선 조선 총독부, 남대문 안으로 들어온 경성부청 등 식민지 도시 형성에 대한 설명을 보면 절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 나오는 경성역과 미쓰코시 백화점,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나오는 경성부청과 대한문, 임화의 시, '네거리의 순이'에 나오는 종로 네거리를 보며 무심히 지나쳤던 그곳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미쓰코시 백화점은 뒤에 박완서의 소설 '나목'에서 미군 PX로 등장합니다.)

새로운 문물이 밀려들던 1900년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어 냈던 그 시대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살아갔지만 그래도 삶을 살아냈습니다. 어두운 현실을 헤치며 앞으로 나갔던 그들을 문학 속에서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 속에서 과거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앞으로 문학 속에 남을 우리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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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일러스토리 1 - 모든 것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인문학 일러스토리 1
곽동훈 지음, 신동민 그림 / 지오북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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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올림픽 성화 봉송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의 아테네 신전에서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횃불을 밝히는 모습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남아 있던 그리스는 나중에 보니 대단한 문화를 꽃피운 나라였습니다. 로마에 고스란히 전해진 고대 그리스 문화는 세계로 전파되었고 현재 우리의 삶에까지 이어지고 있지요.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문화의 힘은 어릴 때와는 다른 의미로 여전히 신비하게 느껴집니다.

<인문학 일러스토리1>에는 궁금했던 몇 천 년 전의 그리스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라는 첫 문장은 흥미를 자아냅니다. 이것은 무슨 말일까요? 법률, 문학, 종교, 예술은 그리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퍼시 비시 셸리의 말은 사실일까요? 잠시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모든 고전은 그리스로 통한다는 저자의 말이 아니어도 말입니다. 서양의 문화는 그리스에서 시작되었지요. 백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그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으니 우리도 고대 그리스의 정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의 근간이 되는 그리스에 대해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저자는 14세기에 일어난, 그리스, 로마 문화를 되살리고자 한 르네상스 운동을 거론하며 그리스의 전성기부터 쇠퇴기까지를 빠르게 보여줍니다. 적절히 등장하는 일러스트는 내용의 이해를 돕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의 역사와 그리스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위용을 과시하는 신전과 학교들, 삶을 성찰하는 철학자들,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들, 전쟁을 치르는 군인들이 떠오릅니다. 우리와 똑같이 삶을 살아갔던 그들은 지금 봐도 아름다운 문학작품과 조각상, 건축물들을 남겼지요. 어떻게 보면 현대시대의 미의 기준이나 지적 수준, 기술들은 몇 천 년 전과 별로 다를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여덟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부분이 끝나면 추천 도서가 나오는데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 뒤에 나온 추천 책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나와 반가웠습니다.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통해 금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힘겨루기를 하는 사제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데 중세 유럽 기독교에 큰 영향을 미쳤던 그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몰랐던 면을 알게 되어서 다시 읽게 된다면 전보다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덮고나서 고대 그리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책이라 읽기를 잘 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리스 관련 서적을 좀 찾아봐야겠네요. 맺음말을 보니 다음 권은 그리스 문화를 그대로 이어 받은 로마에 대한 내용이 나오겠네요. 그리스보다는 좀 더 친숙한 로마라 술술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쯤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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