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하기 연습 - 화내지 않고 상처 주지 않고 진심을 전하는
박재연 지음 / 한빛라이프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가 태어났을 때 너무 예뻐서 하루종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때 다정한 엄마가 될 것을 다짐했는데 요즘에는 그리 다정하지 않은 모습만 보이고 있다. 아이가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은 점점 크고 있다는 증거인데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화를 내고는 뒤돌아서서 후회한다. 그런 날이 늘어날수록 아이의 마음에는 상처가 더 많이 생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와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이 책을 읽게 됐는데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도 말하기 연습이 필요하다는 데 동감하면서 인상깊은 부분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엄마의 말하기 연습>은 '엄마인 나 이해하고 공감하기'와 '우리 아이 이해하고 공감하기'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부분을 읽고 육아를 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아이를 가르치고 키울 지만 생각했었는데 아이를 보살피는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나 자신을 돌보는 일에는 소홀했었다. 나는 엄마이기 이전에 나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잊고 살았을까. 아이를 이해하고자 읽게 된 책인데 생각지 못하게 위로를 받았다. 이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 엄마들이 많다고 들었는지 왜인지 알겠다. 내 상태가 어떤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다행이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아이에게 더 깊고 뜨거운 사랑을 올바르게 전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를 바라보고 어떻게 대화할 것인지를 다루고 있는데 실생활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을 것 같은 내용이 많았다. 아이가 실수할 때 하는 말이 잘못된 것을 알았으니 고쳐야겠다 싶었고 앞으로 혹시나 아이가 거짓말이나 욕을 할 경우에는 어떻게 대해야 할 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책 중간중간에 실린 공감톡은 앞에 나온 내용을 대화로 풀어놓아 앞으로 참고하기 좋을 것 같다. 아이가 잠든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예쁜 아이를 심하게 꾸짖은 것은 아닌가 자책하고 내가 나쁜 엄마가 아닌지 생각했던 적이 있는 엄마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우리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이다. 이 사랑을 아이가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아이는 무한한 행복감을 느끼며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엄마의 마음을 전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노력 없이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엄마와 대화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아이를 기대하며 진심을 전하리라 마음 먹는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라는 작가의 말에 모든 엄마가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물속에서 오랫동안 노니는 상상을 가끔 한다. 생각만으로도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다. 온몸을 감싸는 물의 부드러움, 양 팔에 스치는 물의 일렁임은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아늑함을 선사한다.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면 아마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상상 속에서도 떠올리지 못한 존재가 등장하는 <아가미> 속 이야기는 이 생각을 확장시킨다. 작은 소년, 곤에게 생긴 아가미가 지금까지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을 경험할 도구가 된다면 반기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다만 다른 이들에게는 숨겨야 할 것이다. 모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통제해야 할 대상이 될 것이기에.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한 소년에게 아가미가 생겨난 일은 기적이라 불릴 만하다. 이 아이는 이로 인해 사람들 앞에 온전한 모습을 드러낼 수 없게 되었고 아이를 구한 강하와 몇몇 사람들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니 이 일은 충분한 의미를 지녔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아가미가 생긴 일이 아이에게 좋기만 한 일이었을까. 목숨은 건졌지만 작은 가슴 속에 외로움과 불안함을 가득 안은 채 십수 년을 지내던 나날, 버려질까 두렵던 그 나날들이 과연 행복한 시간이었을까. 아가미가 생겨 육지와 물에서 생활하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이었다면 행복한 동화가 됐을 이야기가 현실 속 상황에 충실히 부합하니 슬프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되었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강하의 모순적인 행동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곤을 부러워하며 언제든 저 먼 세상으로 떠날 것 같아 조바심을 내는 강하는 책임감과 애정 사이를 오가며 잘못된 방식으로 곤에게 감정을 쏟아낸다. 사람들의 눈에 띠면 곤이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철저하게 보호하면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잔혹하게만 구는 강하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아이를 구하고 곤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준 강하의 그런 행동은 강하가 처했던 사정을 살피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지만 곤이 느꼈을 감정을 생각한다면 모두 다 이해한다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의지할 데 없는 곤이 어떻게든 떨려 나지 않으려 온몸을 다해 버텼던 긴 세월은 작은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웠으리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한 마디 말에 존재의 의미를 찾던 순수한 곤은 지금 너른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까. 언젠가 다시 강하를 만나 들어본 적 없던 속엣말을 나누며 서로를 보고 웃는 날이 온다면 참 좋을 텐데. 꿈에서라도 그렇게 되어 눈부시게 웃는 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장자의 '소요유'에서 그 이름을 가져온 곤. 거대한 물고기인 곤이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새, 붕이 되어 지금껏 보아왔던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처럼 이제 아름다운 눈을 가진 곤도 세상의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소망한다. 언젠가 물속에서 나오는 곤을 만나게 된다면 바라던 일은 잘 이루어졌는지 손 내밀며 묻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책이나 영화에서만 접할 수 있는 직업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 킬러라는 직업이 등장할 때마다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든 엮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치밀하게 계산된 살인 장면과 킬러의 냉혹한 표정, 죽음을 당하는 사람의 공포어린 시선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60대의 여자 킬러인 조각의 일상과 과거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죽음 앞에서 공평하게도 약하디 약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조각은 방역업자로 불린다. 누군가의 생을 제거하는 일은 그 대상을 해충이라 여기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해로운 벌레를 죽이는 것쯤에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테니. 의뢰인도, 이유도 모른 채 방역 대상을 해치우는 조각은 벌써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세월은, 한때 날아다녔던 그녀의 몸을 천천히 무너뜨리는 중이다. 신체는 물론 정신까지. 한 순간의 판단이 자칫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그녀는 매사 신중해지려 하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나누는 존재 없이 살아가는 그녀의 인생은 회색빛으로 보인다. 그런데 냉철한 이성 틈으로 언뜻 비치기 시작한 알지 못할 감정은 그녀를 점점 다른 세계로 이끌어간다. 그녀가 도달할 그곳은 어디가 될까. 파과, 흠집이 난 과일이 거치는 절차대로 그녀는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인가. 책을 읽는 내내 약간의 행복만이라도 느끼기를 바랐던 그녀의 회색빛 삶은 이제 어떤 색을 띠게 될까. 인간에 대한 동정, 연민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무너뜨릴 줄 알기에 극도로 경계했던 세월이 지킬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인지 되짚어보기를 바라는 수 밖에.

사랑도, 우정도, 그 어떤 따뜻한 감정도 배제한 채 살아야 하는 이의 무미건조한 삶은 별다를 것 없는 나의 삶을 아주 아름답게 느끼게 한다. 두둔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조각이 거쳐온 길 속에서 생의 소중함을 발견하면서 쉽게 바스라지는 삶 속에서 그녀도 무언가를 건져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던 그녀라도 꾹꾹 눌러놓은 인간성을 조금씩 다시 느끼며 남아있는 나날들을 그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내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살아있는 자의 고통은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양장) 헤르만 헤세 컬렉션 (그책)
헤르만 헤세 지음, 배수아 옮김 / 그책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과 정말 다르다 싶은 사람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경우가 있다. 갖지 못한 것에 끌리기 때문일까.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기에 서로 보완하면서 만족을 느끼고 풍부한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처럼 평생에 걸쳐 우정을 나누는 일이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깊은 우정을 유지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서로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으므로.

운명적으로 끌리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삶을 담아낸 이 책을 읽으며 사랑과 우정, 운명과 모험에 대해 생각한다. 뛰어난 학식과 흠잡을 데 없는 품성을 지녔지만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는 나르치스와 눈을 반짝이며 청소년의 발랄함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골드문트가 서로를 알아가며 영향을 주고 받는 모습에서 부러움을 느낀다. 언제든 떠올리면 위안이 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찰나의 사랑도, 가벼운 사귐도 아닌 영혼이 연결된 우정이라니! 아버지에게 금욕적인 삶을 강요받은 골드문트가 수도원을 벗어나 생동감 넘치는 세상 속으로 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언제든 나르치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유년기에 잃어버린 어머니의 기억을 되찾은 뒤, 모험을 통해 사랑을 만끽하고 예술가의 길로 들어선 골드문트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나르치스와 함께 하는 모습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영혼의 반쪽과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는 법이니. 오직 수도원 안에서만 학문을 탐구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나르치스와 세상에 온 몸을 던져 얻은 경험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골드문트의 삶은 물론 같을 수 없었지만 서로를 통해 세상을 더 폭넓게 알아갈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모두가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에 그 과정은 단 한 사람도 똑같을 수 없으며 누군가에게는 짧은 꿈 같아 아쉽게 여겨지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끝없이 계속되는 괴로움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자신이 선택해서 한 발자국씩 떼는 길 위에서 상반되는 감정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이니 그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도 기왕 사는 거 처음부터 끝까지 순조로워 결국엔 단조로움이 느껴지는 여정보다는 처음에는 삐걱거리더라도 갈수록 즐거운 일이 많아지는 여정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성으로 무장한 얼굴 뒤에 숨어 있는 비열함을 이렇게 잘 드러낸 글이 있을까. 말의 무거움, 문학의 순수성을 교묘히 이용해 미성년자들을 노리개로 삼는 자의 모습은 양의 탈을 쓴 괴물 그 자체로 대단히 공포스럽다.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회 분위기를 어릴 때부터 학습한 아이들이 막다른 곳으로 몰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가슴 깊이 느끼게 하는 이야기에 손이 떨린다. 이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할까.

성을 터부시하는 곳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성폭행을 당해도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작은 소녀, 자신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팡쓰치는 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이다. 사실을 알린다고 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거라 생각하게 만든 것은 한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이다. 가정이, 학교가, 직장이, 이 모든 것이 속해 있는 사회가 수많은 팡쓰치들을 모른 체한 결과는 실로 비참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일과 다른 점은 등장인물들의 이름뿐이다. 이런 일이 알려졌을 때 나타나는 반응은 어쩌면 이렇게나 똑같은지.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고 피해자에게 비난을 퍼붓는 상황은 없어져야 마땅함에도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여전히 이 상황을 부추긴다. 이 책은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해 온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묻고 있다. 방관자로 사는 것은 대단히 편리한 일이다. 그러나 눈을 돌리고 산다고 해서 성을 제 편한 대로 이용하는 일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방관자가 많은 사회는 결코 변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소중한 존재들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 걸까. 나보다 힘없는 존재를 눈 깜빡하지 않고 눌러버려도 되는 세상은 없다. 성에 폐쇄적인 이 사회를 바꿀 길은 수많은 팡쓰치들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싫은 것을 당당히 싫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는 사회,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는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 본다. 억압된 채 눈물 흘리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때 힘을 실어주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