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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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오랫동안 노니는 상상을 가끔 한다. 생각만으로도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다. 온몸을 감싸는 물의 부드러움, 양 팔에 스치는 물의 일렁임은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아늑함을 선사한다.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면 아마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상상 속에서도 떠올리지 못한 존재가 등장하는 <아가미> 속 이야기는 이 생각을 확장시킨다. 작은 소년, 곤에게 생긴 아가미가 지금까지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을 경험할 도구가 된다면 반기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다만 다른 이들에게는 숨겨야 할 것이다. 모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통제해야 할 대상이 될 것이기에.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한 소년에게 아가미가 생겨난 일은 기적이라 불릴 만하다. 이 아이는 이로 인해 사람들 앞에 온전한 모습을 드러낼 수 없게 되었고 아이를 구한 강하와 몇몇 사람들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니 이 일은 충분한 의미를 지녔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아가미가 생긴 일이 아이에게 좋기만 한 일이었을까. 목숨은 건졌지만 작은 가슴 속에 외로움과 불안함을 가득 안은 채 십수 년을 지내던 나날, 버려질까 두렵던 그 나날들이 과연 행복한 시간이었을까. 아가미가 생겨 육지와 물에서 생활하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이었다면 행복한 동화가 됐을 이야기가 현실 속 상황에 충실히 부합하니 슬프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되었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강하의 모순적인 행동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곤을 부러워하며 언제든 저 먼 세상으로 떠날 것 같아 조바심을 내는 강하는 책임감과 애정 사이를 오가며 잘못된 방식으로 곤에게 감정을 쏟아낸다. 사람들의 눈에 띠면 곤이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철저하게 보호하면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잔혹하게만 구는 강하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아이를 구하고 곤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준 강하의 그런 행동은 강하가 처했던 사정을 살피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지만 곤이 느꼈을 감정을 생각한다면 모두 다 이해한다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의지할 데 없는 곤이 어떻게든 떨려 나지 않으려 온몸을 다해 버텼던 긴 세월은 작은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웠으리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한 마디 말에 존재의 의미를 찾던 순수한 곤은 지금 너른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까. 언젠가 다시 강하를 만나 들어본 적 없던 속엣말을 나누며 서로를 보고 웃는 날이 온다면 참 좋을 텐데. 꿈에서라도 그렇게 되어 눈부시게 웃는 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장자의 '소요유'에서 그 이름을 가져온 곤. 거대한 물고기인 곤이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새, 붕이 되어 지금껏 보아왔던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처럼 이제 아름다운 눈을 가진 곤도 세상의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소망한다. 언젠가 물속에서 나오는 곤을 만나게 된다면 바라던 일은 잘 이루어졌는지 손 내밀며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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