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ㅣ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E. M. 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옮김 / 이터널북스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 e.m. 델라필드, 이터널북스/ 2022-08-23, p,272>

1929년 11월 7일의 일기를 시작으로 1930.10.23일자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곳곳에 공감과 유머의 포인트가 있었다.

남편 로버트, 딸 비키, 아들 로빈의 아내이자 부인인 그녀
아들 로빈이 담뱃갑 카드를 모으는 걸 달라고 해서 모으는 엄마의 모습은 왤케 귀엽던지, 지역 부부 의원과 점심을 먹으러 가서 구할 수 없는 소소한 사치품인 각설탕 한 조각을비키에게 주고 싶어서 핸드백에 하나 쑤셔 넣었는데, 감사 인사하고 나오는 길에 핸드폰 놓쳐서 각설탕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이쿠야 …ㅋㅋㅋㅋㅋ 타인의 말 한 마디에 살인자가 된기분으로 잠자리에 든다는 글은 엄마라서 자꾸 더 흔들리는 지금과 마찬가지인 모습에 세상 엄마 다 똑같구나 싶었다. 가계 경제가 쪼들려 남편 방수코트 몰래 팔아버리고 갈등하는 모습, 이성 잃고 지름신 오신 모습, 한도 늘리고 기분 전환 위해 지르는 모습.. (나만 그런 거 아니라고..) 아가씨라고 불러줘서 마음이 누그러지는 귀여움, 문학클럽도 가고, 친구 로즈와의 여행으로 한껏 즐기는 모습도 있고, 아이들과 또 다가올 당좌대월에 걱정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 이야기들, 이래서 브릿지 존슨을 이야기하는구나 싶었다.

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발췌문보다는 내게 와 닿았던 문장들과 간단한 생각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 인간의 운명은 어째서 이토록 불공평한지 모르겠다. 그래서 환생을 믿고 싶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한창 상상해본다. 모든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낫고 레이디 복스와 나의 입장이 뒤바뀐다면 어떨까? 의문:이런 추상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건 시간낭비일까?

- 여기서 그녀가 의문이라고 적는 것들 내밀한 속내를 보는 것 같아서 공감가서 너무 좋았다.

사촌 앤젤라가 나보다 사교술이 뛰어난 것 같다며 하지만 굳이 얘기하지 않는 그 꽁함이 마음에 든다. +레이디 복스에 대한 속내에 대한 이야기가 차마 말로 할 순 없지만 맘에 든다. 은근히 비틀고 꼬집는 이야기 재밌다.

🌿이틀 전에 기운을 차리고 아래층에 내려가 차를 마시려다가 현관 선반에서 봉투도 없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채 나를 바라보는 어마어마한 세금 청구서를 마주치곤 병이 도질세라 얼른 침대로 돌아갔다. 메모: 소설에서 묘사되는 요양의 풍경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소설에서는 주로 여주인공이 봄꽃과 햇살을 보고 환희에 젖을 뿐 세금 따위는 언급되지도 않는데 말이다.

- 아니 표현 너무 재밌다. 세금 청구서 마주하곤 병이 도질세라 !!

🌿메모:엄마들은 늘 자기 자식이 다른 아이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속상하지만 미키는 외모로나 매력으로나 예절로나 분명히 로빈과 비키보다 월등하다.

- 이 엄마 찐이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엄마라고 다 내 눈에 고슴도치 아니고 부족한 거 다는데 일기에 요렇게 적어놓으니 어찌나 인간적인지.. ㅎㅎ

주저리주저리 길어졌지만, 책 소개에서 느꼈듯이 ‘어른 맛’브릿지 존스의 일기였고, 100년 전 여성의 인권을 생각하면 (그리고 당시 1920년은 30세 이상의 특정 계층 여성에게 처음 참정권이 부여되었고, 28년에 완전한 참정권이 확립되었다) 여성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쓰여진 이 이야기가 그 시대의 여인들에게 어떤 즐거움으로 다가왔을지 너무 잘 느껴진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중산층을 위한 가벼운 읽을거리를 써달라는 편집장의 요청에 의해 매주 연재한 작품이다)

1930년 영국 여인이지만 2023년을 사는 나도 그녀와 별 다를 것 없는 인생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사는 이야기를 가진 책이었다.

이 다음 이야기는 런던으로 가던데, 친구 로즈의 더 넓은 세계로 확장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듣고 출발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런던 다음은 미국, 그다음은 전쟁이 배경인데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질 지 아주 궁금해졌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김지호, 한겨례출판/ 2023-02-20, p,296>

- 뭐든 처음이 힘들잖아. 그럴 땐 우리가 그 ‘처음’뒤에 줄줄이 세워둔 것들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볼 일이야. 어서 계산을 마치고 카운터를 통과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처럼 등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그것들 말이야. 혹시 그런 성급함과 중압감이 첫걸음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 “대화가 전혀 되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하죠?”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씀드린다. “먼저 아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하거나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게 한 경험이다. 1차적 인간관계인 가족을 장애물로 인식한 아이는 회피 혹은 공격적인 행동을 키운다. 당연히 사회성이 손상될 가능성이 크다.

- “홍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스케줄에서 빼시고, 혼자 있는 시간을 보장해주시고, 혼자 하겠다고 하면 안 될 게 뻔하더라도 지켜보세요. 홍이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셔야 합니다. 실패에 익숙해져야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홍이는 홍이, 엄마는 엄마, 아빠는 아빠가 되어야할 때라고 생각해요.”

✿ 언어치료사로 의사소통 장애를 겪는 아동, 청소년, 성인과 만나는 일을 하고 있는 저자의 2007년 가을부터 2022년 겨울까지 만났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태어나고 일정 시간을 지나오면서 언어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원하는 바를 표현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되기 어려운 이들이 있다는 걸 또 이렇게 새삼 알게 된다.나의 관계가 협소하기도 하고, 비율적으로 따져봤을 때 장애인보다는 비장애인이 많기도 할 터이다. 그래서 접해 본 이 이야기들에는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러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초등학생 때 뇌종양이 발견된 은이, 초기에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다면 다른 모습일 터인데 종교인인 은이 아버지의 비의료적인 방식으로 그 시기를 놓쳐 신체적, 언어적 능력이 소실된 이야기는 왜 이렇게 속이 상했을까.. 게다가.. 그 아이와 수업을 한지 만 3년 가까이 진행되었을 때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버린 아이.. 언어치료사 생활을 하면서 마주친 세 번의 죽음 중 가장 처음인 이 죽음에 비로소야 이별하자는 저자의 아이에게 보내는 담담한 편지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자폐성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과제를 수행하게 하다가 거부행동이 본격화되고, 아이가 적대적 행위를 결국 ‘사람’에게 향하게 되고 폭력이 이어지고, 이 행동이 또 다른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이 마지막에는 무기력의 단계로 가는 화니의 이야기는 문득 정인이 사건이 떠올랐다. 어린이집에서 공개한 cctv속의 무기력한 아이 모습이 떠올라 언어의 부재로 인한 침통함이 느껴졌다.

저자가 라포형성을 위해 아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아이의 곁에서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과정이 결국은 그 아이들도 모두 똑같은 아이일 뿐, 똑같은 신뢰와 공감을 쌓고 포용력 있는 마음으로 받아주어야 한다는 걸,

상담자의 부모가 “나중에 우리 죽고 나면 어떻게 될지가 제일 큰 걱정이에요. 누가 쟤를 보살피겠어요. 형이 있다고 해도 자기 가족들도 있고, 평생 동생 때문에 마음고생한 앤데 걔한테 떠안게 하는 거 자체가 가혹한 일이죠. 사실은 지금이 가장 좋을 때예요. 학교도 다니고 나라에서 지원도 해주고 할 때가요. 앞으로가 큰 일이죠...”
라는 이야기에는 발달장애인들은 학교를 떠나면 모든 지원이 끊긴다. 보육원의 아이들이 성년이 되면 모든 지원이 끊겨서 사회에 내던져지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장기적으로 지원이 될 수 있는 계책의 필요성을 느꼈따.

특히나 장애 아이의 보육 책임자가 90%이상이 아이의 어머니라는 거에는 씁쓸했다. 어머니와 아이만이 덩그러니 놓여진 있는 고립된 섬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저자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 속에 사회제도적으로 보완되어야 할 점이 꽤나 많다는 것과 씁쓸하면서도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걸 느꼈다.

*하니포터6기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는 마음 - 이다희, 한겨레출판 / 2023.02.20>

- 오늘날의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은 소비를 통해, 소유를 통해, 그리고 소비와 소유에 대한 사유를 통해 정의되는 것 같다.

-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산업은 이처럼 다양성이 부족한우리 사회에서 그저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이용한다. 또 삶을 붙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이용한다. 그 불안감과 간절함을 자극하는 메시지는 아주 교묘하고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 물건과의 인연은 그 물건을 구매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물건을 돌보면서 쌓은 정은 첫눈에 반하던 순간의 짜릿한 희열을 능가하는 마음의 풍요로움, 안정감을 선사했다.

- 집 안 깊숙이 들어오는 햇살이 반가워지기 시작하는 초가을 아침, 말끔한 욕실에서 씻고 나온 후 집 앞으로 배송된 빵에 커피를 곁들여 식사를 하는 내 생활은 단지 내가 번 돈으로 내가 마련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 몸을 쓰며 노동한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기대어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잊지 않으려고 한다.

- 내가 생산 수단의 디자인을 중시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나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나의 시각적인 취향을 만족시켜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물건을 곁에 두는 행위는 바로 그 실용성을 증명하거나 수치화할 수 없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 다시 말해 내가 일하는 기계, 돈 버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상기한다.

- 대개의 경우 돈을 벌기 위한 노력의 보상은 돈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 돈을 쓴느 모습은 우리가 아무리 감추거나 포장해도, 아무리 겸손하고 은근하게 과시해도 세상과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여실히 드러낸다.

- 모든 것을 전부 스스로 깨달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 때로는 누구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필요한시기에 적절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영리한 중년이 되고 싶다.

🤑 남편하고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추억을 쌓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만 말이다. 하루에 몇 십만원씩 써대는 합법적인(?) 하루를 보내면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여행지의 추억도 결국은 돈으로 사는 것이다. (그게 다양한감각으로 내 추억이 되는 것이지-)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제목이 사는 이유가 buy인지 live인지 뭐든지 간에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걸 사고 시작한다. 내가 사지 않았더라도 내 부모가 샀다. 아이가 생겼음을 알고 나서 부터 시작하는 병원비부터 사는 행위이다. 그러니까 아마 buy와 live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우리에게 굉장히 잘 알려져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윤기 선생님의 자녀분이신 저자의 사는 것에 대한 각종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삶을 사는 것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었다.

나도 꽤나 맥시멀리스트인데 특히나 아기자기한 것에 홀리듯이 빠져든다. 아기자기한 것만 좋아하나. 예쁜 거, 우아한거, 다 빠져든다. 이건 이렇다는 이유로 이건 이렇다는 이유로, 그래서 이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는 1부가 정말 내 취향의 글들이었다. 바이올린이야기는 나도 갑자기 긴급상황일 경우 뭘 챙길까를 종종 생각해보았는데 내게는 아이들의 사진이 저장되어 있는 외장하드라고 생각했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내게 추억은 나를 살게 하는 존재인건가 싶었다. 웨딩드레스를 버리고 나서야 또다시 앞으로 나갈 힘이 있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도, 찻잔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다.

2,3부의 이야기는 소비와 소유라는 행위를 통해 좀 더 인문학적인 고찰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고 이윤기 선생의 자식으로서 쓴 글 중에
📌우리를 키워 준 사람에 대한 배신은 어쩌면 숙명적이다. 우리를 키워 준 사람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우리가 자신에게 가진 기대나 포부와 동일한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에 최근 읽은 <올리브키터리지>와 함께 읽었던 터라 오래도록 나의 마음에 남아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조용한 날들의 기록 -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용한 날들의 기록 - 김진영, 한겨레출판/ 2023-02-20, p,708>

이전에 인친님의 피드에서 “상처로 숨쉬는 법”에 대한 리뷰를보고 알게 되었던 이 분의 글, 지금도 변함없지만 평소에 철학에 대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던 책이었다. 물론 아직 읽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하니포터의 기회로 읽게 된 이 책!

철학적이지만은 않은, 어려운 느낌 없이 (물론 어려운 글도 있었지만) 짧막한 문장에도 그의 사유가 깊이 느껴졌다.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깊이가 느껴진다. 꿰뚫어보는 혜안이 있달까,

저자인 철학가 김진영이 2017년 암선고를 받기 7년 전에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블로그, 페이스북, 개인노트의 기록중 1348편을 엮어 만든 것이 이 책이라 한다. (찾아봐서 알았는데, 그 전까지는 전부 일기의 기록인 줄 알았다)

그래서일까, 변해가는 혹은 늙어가는 육신에 대한 글들에선 근미래에 그에게 있을 일을 알고 있는 내게 쓸쓸함을 자아낸다. 강의에 대한 이야기, 글쓰기, 책읽기, 사랑, 소멸, 절망, 슬픔, 이별.. 그 밖의 등등

2013년 8월부터 12월의 기록들은 없다. 얼마나 힘들었던 걸까. 2014년의 기록 중에 “지난해 지옥을 건너왔기 때문이리라”는 문장에 그래서 무엇조차 적을 수 없었구나. 라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 분의 책도 야금야금 소장해야겠다💛

📝 산다는 건 무수한 것들이 나를 지나간다는 것. 그리고 지나가는 것들은 모두가 말을 남기고 메시지를 남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주인이었다. 그리하여 돌아보면 문장 하나 남지 못한 텅 빈 떠난 자리들뿐.

📝 치과 가는 일을 자꾸만 미룬다. 입을 벌리기가 너무 싫다. 살려면 자꾸만 벌려야 하는 입들.

📝 젊음이 축제라면 늙음도 축제다. 미래의 축제와 과거의 축제. 이 두 축제가 만나면 어떤 연애가 가능할까. 사랑의 황홀일까 아니면 저주의 냉소일까.

📝 종일 비. 주막에서 비 오는 어스름을 바라보며 술을 마신다. 사방이 쓸쓸한 생활. 무엇이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늘 거기에 미치지 못했던 나의 사랑을 생각한다. 아끼고 주지 않았던 그 사랑들로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했던 걸까. 이제야 알 것 같다. 오래 남은 건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덧없기만 하다.오래 남는 건 내가 받았던 사랑들이다. 쓸쓸한 사방. 흰 소주처럼 목 안으로 넘어가는 그 사랑들.

📝 세월은 모든 것을 희미하게 만든다. 음악은 모든 걸 또렷하게 만든다.

📝 오늘 아침 벤야민 강의에서 말했다. 로마는 부패해서가 아니라 너무 반성해서 몰락했다고…… 사랑도 과일처럼 너무익기 전에 따야 하는 걸까. 이제야 알 것 같다. 왜 이별들이 그렇게 서둘러 왔었는지를……

📝 우리의 삶은 막살려고 하지 않죠. 격을 지키고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해요. 우리의 삶은 자기가 인간의 삶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막사는 건 우리예요. 우리아 막살면서 삶을 모욕하고 수치스럽게 만들어요. 아이를 망치는 게 부모인 것처럼, 삶을 욕되게 만드는 건 우리고 나예요, 라고 나는 나지막히 말했다.

📝 빛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그건 빛이 그림자를 지우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빛이 그림자를 불러내기 때문이다.

📝 사랑은 쉽고 글은 어렵다. 글은 가볍고 사랑은 힘들다. 무엇이 나의 진실일까.

📝 숫자에 감정이 흔들리는 건 수치스럽다.

📝 책은 왜 우리를 매혹하는 걸까. 그건 책이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좋았던 문장이, 나를 멈춰세운 글들이 너무 많아서 마지막까지 빠듯하게 읽었고, 프루스트를 다시 도전하고 싶고, 애도일기도 읽고 싶고, 한국문학 광장부터 다시 읽고 싶고, 아라비안나이트도 담아놨고, 또 한 권에 무한증식이 시작되었다. 감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로렘 입숨의 책 - 구병모 미니픽션
구병모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렘 입숨의 책 - 구병모, 안온북스/ 2023-01-31, p,256>

- 신인은 자신에게 집행되는 진짜 형벌이, 아무것도 없는 땅에 놓인 거대한 공허와 무의미 그 자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 머리로만 생각할 때는 소박한 꿈들이었으나 그 가운데 하나도 이루지 못한 채로 젊은 날의 끝자락에 매달리고 보니 얼마나 원대한 꿈이었는지 알게 됐는데, 이렇게 발설함으로써 몸 밖으로 찌꺼기처럼 배출해버리자 또다시 그 무게와 가치가 한없이 가벼워졌다.

- 세상에 어떤 글도 존재하지 않음이야말로 자신이 꿈꾸던 궁극의 글쓰기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 사람에게 행복을, 기쁨을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예술이나재능 따위 다 무슨 소용인가?

- 그러나 나의 고작은 남의 고작과 같을까? 너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닌 일이,

- 이렇게 실체가 있고 무거운 말을, 인간은 그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난사한다. 허공에 값 없이 흩어지는 말들도 있으며 어떤 말들은 사람의 심장에 가서 박히고 그를 죽인다.

❤️ 구병모 작가의 책은 신선하면서 충격적이면서도 내게 있어 ‘어?‘가 ’아!!‘의 물음표에서 느낌표의 과정을 만들어주는 작가 중 하나이기에 이번에 안온북스에서 출간된 미니픽션들에 굉장히 기대했고, 그 기대에 부응한 책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상상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스토리를 써낼 수 있을까? 읽으면서 감탄하고 신선하고 충격이었다.

13편의 미니픽션은 그의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을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나 마음에 들었던 것들을 간단하게 꼽아보자면

+화장(花葬)의 도시
어떤 방법을 통해(책에는 설명되어 있지만 생략)인간이 죽고 나면 썩어가는 사람의 몸에서 꽃이 피어나는데 그 피어나는 꽃들에 따라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정말 짧은데 띠용했다. 진짜 첫 이야기부터 엄지 척이었다.

+영 원의 꿈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난 매몽(買夢)가, 그에게 꿈을 팔게 된 이의 이야기였는데, 나 왠지 이 이야기 너무 슬펐다. 읽어보면 왠지 나랑 비슷하게 느낄 이가 많지 않았을까? 꿈.. 사전적 의미는 1.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2.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예술은 닫힌 문
세상 모든 연주자여 우리 성으로 모여들라, 라는 왕의 공문에 모여든 그들, 탈락자는 사자 우리에 한입 저녁거리로 던져진다는 불이익은 명시되지 않은 그들, 주관적인 판단들과 서바이벌... 영 원의 꿈과 비슷하게 자꾸 현실의 슬픔이 느껴지는 건 나만 그런걸까?

+궁서와 하멜른의 남자
흡입력있게 아주아주 재밌게 읽었던 13편의 이야기 중 가장 길었지만 가장 흥미진진했다.

+세상에 태어난 말들
신의 사전에서 말들을 없애니 일어나는 현상들, 정말 상상력의 끝을 달렸다.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는 듯 하면서도 재미와 흥미와 감탄이 일었다.

정말 재밌었던 단편들, 가벼울 것 같지만 생각해볼 것들이 그득그득 차 있어서 곱씹어서 아껴 읽었다. 특히나 어떤 의도로 썼는지가 이야기의 끝에 간략하게 다 적혀 있어서 그런지 더욱 더 수긍하며 읽을 수 있었던 재미가 있었다.

몇 번씩 다시 읽어보고 싶을만큼 좋았다.

#로렘입숨의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