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용한 날들의 기록 -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평점 :
<조용한 날들의 기록 - 김진영, 한겨레출판/ 2023-02-20, p,708>
이전에 인친님의 피드에서 “상처로 숨쉬는 법”에 대한 리뷰를보고 알게 되었던 이 분의 글, 지금도 변함없지만 평소에 철학에 대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던 책이었다. 물론 아직 읽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하니포터의 기회로 읽게 된 이 책!
철학적이지만은 않은, 어려운 느낌 없이 (물론 어려운 글도 있었지만) 짧막한 문장에도 그의 사유가 깊이 느껴졌다.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깊이가 느껴진다. 꿰뚫어보는 혜안이 있달까,
저자인 철학가 김진영이 2017년 암선고를 받기 7년 전에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블로그, 페이스북, 개인노트의 기록중 1348편을 엮어 만든 것이 이 책이라 한다. (찾아봐서 알았는데, 그 전까지는 전부 일기의 기록인 줄 알았다)
그래서일까, 변해가는 혹은 늙어가는 육신에 대한 글들에선 근미래에 그에게 있을 일을 알고 있는 내게 쓸쓸함을 자아낸다. 강의에 대한 이야기, 글쓰기, 책읽기, 사랑, 소멸, 절망, 슬픔, 이별.. 그 밖의 등등
2013년 8월부터 12월의 기록들은 없다. 얼마나 힘들었던 걸까. 2014년의 기록 중에 “지난해 지옥을 건너왔기 때문이리라”는 문장에 그래서 무엇조차 적을 수 없었구나. 라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 분의 책도 야금야금 소장해야겠다💛
📝 산다는 건 무수한 것들이 나를 지나간다는 것. 그리고 지나가는 것들은 모두가 말을 남기고 메시지를 남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주인이었다. 그리하여 돌아보면 문장 하나 남지 못한 텅 빈 떠난 자리들뿐.
📝 치과 가는 일을 자꾸만 미룬다. 입을 벌리기가 너무 싫다. 살려면 자꾸만 벌려야 하는 입들.
📝 젊음이 축제라면 늙음도 축제다. 미래의 축제와 과거의 축제. 이 두 축제가 만나면 어떤 연애가 가능할까. 사랑의 황홀일까 아니면 저주의 냉소일까.
📝 종일 비. 주막에서 비 오는 어스름을 바라보며 술을 마신다. 사방이 쓸쓸한 생활. 무엇이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늘 거기에 미치지 못했던 나의 사랑을 생각한다. 아끼고 주지 않았던 그 사랑들로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했던 걸까. 이제야 알 것 같다. 오래 남은 건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덧없기만 하다.오래 남는 건 내가 받았던 사랑들이다. 쓸쓸한 사방. 흰 소주처럼 목 안으로 넘어가는 그 사랑들.
📝 세월은 모든 것을 희미하게 만든다. 음악은 모든 걸 또렷하게 만든다.
📝 오늘 아침 벤야민 강의에서 말했다. 로마는 부패해서가 아니라 너무 반성해서 몰락했다고…… 사랑도 과일처럼 너무익기 전에 따야 하는 걸까. 이제야 알 것 같다. 왜 이별들이 그렇게 서둘러 왔었는지를……
📝 우리의 삶은 막살려고 하지 않죠. 격을 지키고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해요. 우리의 삶은 자기가 인간의 삶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막사는 건 우리예요. 우리아 막살면서 삶을 모욕하고 수치스럽게 만들어요. 아이를 망치는 게 부모인 것처럼, 삶을 욕되게 만드는 건 우리고 나예요, 라고 나는 나지막히 말했다.
📝 빛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그건 빛이 그림자를 지우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빛이 그림자를 불러내기 때문이다.
📝 사랑은 쉽고 글은 어렵다. 글은 가볍고 사랑은 힘들다. 무엇이 나의 진실일까.
📝 숫자에 감정이 흔들리는 건 수치스럽다.
📝 책은 왜 우리를 매혹하는 걸까. 그건 책이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좋았던 문장이, 나를 멈춰세운 글들이 너무 많아서 마지막까지 빠듯하게 읽었고, 프루스트를 다시 도전하고 싶고, 애도일기도 읽고 싶고, 한국문학 광장부터 다시 읽고 싶고, 아라비안나이트도 담아놨고, 또 한 권에 무한증식이 시작되었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