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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엄숙한 얼굴 ㅣ 소설, 잇다 2
지하련.임솔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5월
평점 :
<제법 엄숙한 얼굴 - 지하련, 임솔아 (지은이) 작가정신 2023-05-09>
- 형예는 전에 없이 아름답고 즐거운 밤인 것을 확실히 느낄수록 어쩐지, 점점 물새처럼 외로워졌다. 저와 상관되고 가까운 모든 사람이 한낱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순간, 그는 저와 가장 멀리 있고, 일찍이 한 번도 사랑해본 기억이 없는 허다한 사람을 따르려고 했다.
- 그런데 생각을 해볼수록 청년이 꼭 겹으로 된 사람 같았다. 한 겹을 벗기면 또 속이 있고, 또 벗기면 속이 있어 어떠한 사람이고, 사태고 간에 그 겹겹에서, 능히 허용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또 달리는 어떠한 사람과도 어떠한 사태와도 그 스스로가 허하지 않는 한,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장 독립한 인간으로 생각되었다.
- “오라버니만 조소적이요, 방관적일 수 있고 남은 그렇다면 못쓴단 거지요?”하고, 말을 하니까, 오라버니는 잠자코 있더니, 한참 만에서야 “그게 좋은 거면 모르지만 나쁘니 말이다. 난 내게 있는 약점을 남에게서 발견하면 아주 우울하다.”
- “쓸쓸하니 말이지…… 사랑하기만 하면 백 년 천 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건 거짓말이었어요.~ 참는단 건 자랑이 있는 사람의 일일 게고, 또 자랑이 없는 사람은 외로워서 쓸쓸할 게고 그 쓸쓸한 걸 이겨나갈 힘도 없을 게고…… 그러니까 결국 아까 말한 그런 약점이란 어리석은 여자에겐 운명처럼 두려운 것이에요.”
- 마침내 그는 사람이 병을 앓는다는 게 참 재미있을 것 같았다. 눈 감고 가슴에 손 얹고 무작정 누워서, 귀찮아지면 죽을 것을 궁리하고, 그 반대일 경우엔 또한 살 것을 궁리해보고…… 얼마나 인생에 대한 유한 배포이냐 싶었다.
- 여자의 앞에서 영애가 당당하게 원래의 말투를 사용한 것에 여자는 분노했다.
* 작가정신에서 나온 소설 잇다의 두번째 작품은 지하련 작가는 1912년생으로 시인 임화의 아내이자 사상적 조력자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으며, 월북 이력으로 인해 우리 문학사에 온전히 기록되지 않았고 충분히 읽히지 못했다 한다.
그녀의 작품을 읽으면서 (옛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왜 이렇게 세련된 글들이 많은 것인가? 올드할 거라는 나의 예상을 전부 다 붕괴시켜버리듯이 훅 다가온다) 그녀가 그 당시에 생각했었던 게 어떤 것인지 왠지 느껴질 것만 같았다.
소설 <결별>에서는 기혼인 형예가 친구 정희의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불편함 마음의 꼬리가 결국은 자신이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데서 오는 것은 아닐까?하는 그 마음들. 친구에게 느끼는 마음들에서 결혼 후의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어느 때가 떠올랐다.
<체향초>와 <종매>에서는 ‘하이칼라‘인 지하련이 느꼈던 것들을 당시의 지식인들, 특히 남자들에게 주어졌던 권위 속에서 바라본 것들을 자전적으로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하게 주변인이 아니라, 하이칼라라고 조소하던 오라버니에게 일침을 가하는 모습에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소설로 내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이 내게 느껴졌다.
<가을>이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으로, 석재와 죽은 아내의 친구 정예의 대화와 심리변화와 행동들이 마치 영화가 그려진 듯 따라 그려진다. (해설에는 읽어보면 오,, 이런 의미가 있구나 하면서 감탄하지만, 내 스스로 그렇게까지 생각하게 되기에는 무리가 있으므로 간략하게만 나의 마음을 적었다.)
임슬아의 작품은 지하련의 등장인물들이 묘하게 비틀어져 나온 느낌이다.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겹으로 쌓여 있는 인간들의 내면을 본 느낌이라 기분이 영 요상했다. 인간은 몇 겹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걸까? 마지막의 로봇청소기가 오히려 제일 인간스러웠다고 느껴졌다면 나는 이 책을 잘 소화해 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