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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나라는 통증 - 비로소 나아가는 읽기, 쓰기
하재영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평점 :
<지극히 나라는 통증 - 하재영 (지은이) 문학동네 202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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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다 보면, 저자의 깊은 사유가 평소 내가 품고 있던 생각에 힘을 실어줄 때가 있다. 또 어떤 책은 평소에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언어화하여 나를 감동시키며 밑줄을 긋고, 물음표와 느낌표를 번갈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책은 후자였다. 오랜만에 내 생각을 조금 더 넓고 깊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무엇보다 제목부터가 강렬하다. ‘통증’은 곧 ‘아픔’이며, 그것은 건드려졌다는 의미이고, 그 지점이 약하다는 뜻이다. 나는 늘 사람의 ‘약한 면’이 그 사람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왔다. 약하다는 것은 감추려 애써도 감춰지지 않는, 결국 그 사람의 가장 진실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살기 위해 글을 쓰고, 내면을 지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사회가 주는 듯하지만 이미 깊숙이 내면화된 ‘정형화된 여성상’이 나를 옭아매고 있는 건 아닌지. 저자의 발레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나를 평가하는 첫 번째 시선은 언제나 나의 시선이었다”는 문장은 너무도 맞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나는 내 스타일이 확고한 편이다. 유행을 따르지 않는 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거울을 보던 어느 날 문득 ‘어라… 좀 안 어울리네?’라는 생각이 들었던 날,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더 나은 버전의 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 지금까지 누려왔던 것들이 조금씩 상실되어간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성추행이나 성희롱, 생각해보면 나 역시 등굣길, 버스 안, 길가, 회사에서 그런 일들을 겪은 적이 있다. 여성이라면 한 번쯤은 마주했을, 그러나 쉽게 입 밖에 내지 못했던 경험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묘하게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애도, 인간 중심의 사고가 만들어내는 폭력, 그리고 “때로는 고통을 말하지 않는 것이, 고통을 말하는 가장 나은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문장은 오래 남았다.
에세이를 ‘정직함’을 윤리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장르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정직함은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남길지 스스로를 집요하게 추궁한 끝에 도달하는 지점이라 말하는 저자의 글이 너무 좋았다.
나를 이해하고, 타인(타자)을 상상하고 이해해보도록 혹은 이해하지 않은 채로 놓아두는 일. 이 책 강추🤍
✴︎ 고독이 글쓰기의 조건이라면, 욕망은 문장을 나아가게 하는 힘, 추동이다. 고독은 나를 책상 앞에 앉히고, 욕망은 나를 언어 속으로 끌어들인다.
✴︎ 더 나은 버전의 내가 없으리라는 사실을 아는 나 또한, 언제까지고 내면의 전신거울 앞에서 괴로워할 따름이다. (102)
✴︎ 내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상실 그 자체보다, 내가 잃은 것으로 초래되는 균열이 아닐까? (108)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