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여자를 분노하게 만드는가 - 무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페미니즘 심리학
해리엇 러너 지음, 이명선 옮김 / 부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부조리한 상황 적어도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리고 분노를 느낀다.많은 충고가 우리에게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참으라고 말한다.개혁을 두려워하는 사회적 보수주의, 분노를 참는 것이 개인의 미래에 이롭다는 처세 위주의 접근, 어차피 미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주의 등의 이유로 그럴 것이다.반면 우리 사회에 갈등을 불러일으켜 주목받는 집단들은 분노를 아주 자유롭게 분출한다.분노를 분출하다 못해 증폭시켜 퍼뜨린다.물론 그들 중 상당수도 나름 본인 입장에서 나쁜 일을 겪었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지나친 것이 사실이다.일베, 워마드, 메갈 등 성별을 이유로 상대를 증오하는 집단이 그렇다.이 책은 분노를 느꼈을 때 이를 어떻게 현명한 방법으로 풀어내는지를 설명해준다.분노를 무조건 억누르거나 미래를 내 뜻대로 바꾸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 무의미하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 모두 경계한다.화가 날 때 내가 정말로 물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분노를 진정한 변화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을 알려준다.물론 글 잘 쓰는 10가지 방법처럼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 맞는 법칙을 알려주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전체적인 관계와 감정을 변화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으로 보인다.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비록 나아지고 있지만, 성적 규정은 계속 존재해왔다.분노는 남자다움에 속해옸다.분노 자체가 부정적인 감정으로 취급되어 왔지만 그중에서도 여성에게는 그야말로 부자연스러운 조합으로 여져졌다고 볼 수 있다.그러다보니 여성은 분노를 능숙하게 처리하기 힘들었고 여성의 분노는 특히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졌다.아마 둘 사이의 악순환도 있었을 것이다.분노를 참다보니 정작 분노할 일이 아닌 사소한 것에 분노하여 상대로 하여금 여성의 분노를 더 이상하고 의심스러운 것으로 느껴지게끔 했을 수도 있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제한되었던 시대에는 여성이 가족관계 속에 남성보다 더 강하게 속박되었다.아직도 그때의 영향이 남아있어 가정 문제에 여성은 남성보다 더 헌신적일 것을 요구받는 경우가 있다.아내로서, 딸로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강하게 구속받는 것이다.불효녀, 못된 아내, 날라리 엄마로 찍히지 않으려면 자신을 뒤로 물려야 하는 것이다.상처받는 일이 있어도 나를 내세우기 힘든 분위기가 있다.저자는 남편, 어머니, 아버지, 자식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문제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다.비혼과 딩크 등이 유행이라곤 하지만 그 이전 세대의 경우 이런 문제들이 아주 강하게 여성의 발목을 잡았다.이에 대해 저자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고착을 깨고 나를 중심으로 균형잡힌 관계를 설정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내 책임을 명확히 하며, 아이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긋되 과도한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 등 여러가지 대응방식을 소개하고 있다.아마 이를 관통하는 것은 무엇보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나만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그저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변호를 불러일으키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내 태도를 확고히 정하고 나를 중심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내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분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관계에 대한 집착 때문에 자신을 지우는 것은 중단하는 일이 긴요한데 이는 결국 이 책의 내용을 실천하느냐 여부에 달린 것이다.당장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처럼 선동하고 자립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그보다 여성들이 가진 전통과 유산을 보존하면서도 사회를 향해 차근차근 발을 내디뎠던 개척정신을 계속 실천해나가야 한다.

 

성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는 지금 단순히 목소리를 키우는 것보다는 서로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며 어떻게 이 갈등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일텐데 그런 의미에서 여성 뿐만 아니라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분노라는 감정을 더 잘 다스리고 사람이라면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저자가 여성이고 페미니즘에 가깝다고 해서 편견을 가지지 말고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더 잘 이해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보면 배울 것이 많다.

​페미니즘 논란이 한창인데 인터넷에 떠도는 글보다는 널리 인정받는 (그 분야의) 고전을 읽어고보 차근차근 접근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읽어봤다.페미니즘, 여성의 입장 외에도 분노라는 감정에 대한 저자의 깊이있는 이해에서 의외로 얻는 것이 많았다.이념과 사상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어떤 생각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또한 퀴리 부인이 세상에 두려워할 대상은 없고 단지 이해의 대상만 있다고 했듯이 어떤 대상이건 이해가 가능하다.(이해는 동의 내지는 지지와 동의어가 아니다.)적대, 회피보다는 이해와 대화로 문제를 풀기 위해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분노를 느끼는 것이 어떤 문제가 있다는 신호라 할지라도, 분노를 터뜨리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오히려 관계에서 기존의 낡은 규칙과 패턴을 유지시키고 심지어 굳어지게 하도록 돕는다.그리하여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게 만든다.감정적으로 긴장감이 높아질 때, 우리는 대개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헛된 노력을 기울인다.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정작 자신의 힘을 자기 자신을 분명히 하고 변화시키는 일에는 쓰지 못하고 만다."(p.23)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 게임의 목표는, 두 사람의 행동 모두에 원인을 제공한 책임자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실은 악순환임을 안다.늘 한쪽의 행동이 다른 쪽의 행동을 유지시키고 조장하는 일이 되풀이된다.이 악순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누가 먼저 잘못했느냐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더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것인가?'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은, 우리가 상대방의 행동을 유지시키고 조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심지어 상대방에게 97퍼센트의 책임이 있다고 확신해도 자신에게 여전히 3퍼센트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핵심 질문은 '이 악순환 속에서 내 행동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가 되어야 한다.이것은 상대방에게 화나는 이유를 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며, 더구나 요즈음의 성 역할이나 성 차별에 잘못이 없다는 말도 아니다.이것은 간단히 말해, 변하고 싶어 하지 않는 상대를 변화시킬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으며, 그렇게 하려고 시도할 때 오히려 상대방의 변화를 가로막는다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맞닥뜨리고 있는 악순환의 역설이다."(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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