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작가이자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인 알베르토 망구엘이 썼다.책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다독가인지를 잘 알 수 있다.흔히 고전이라 일컫는 고대의 문헌부터 근대 사상가 심지어 중국 문인은 물론 한국 시인의 말까지 두루 인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독서는 시간이나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책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진 저자가 서재를 해체하고 마지막이라 예상하며 남긴 작품이다보니 그가 하고 싶은 말들이 모두 함축되어 있었고 내 마음 깊숙이, 무겁게 와닿았다.


우리는 모두 문제를 대하는 나름의 방식이나 준거가 있는데, 저자는 문제가 닥치면 그간 읽었던 책에 기반해서 생각한다.독서가 간접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히고 무언가를 미리 이해하고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저자는 그 독서가 가진 힘을 철저하게 믿는다.우리는 복잡성과 다양성이 급증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 살고있고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경험은 전체 세상사에서 더욱 제한되는 것 같다.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는 많아지지만 그럼에도 가장 깊이있고 검증된 내용은 출판물을 통해 나온다.본인이 경험한 파편적인 사례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거나 sns에 떠다니는 근거 없는 이야기들에 휩쓸리는 경향에 대해 풍부한 독서와 사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모습은 분명한 시사점을 준다.


언어가 가진 한계와 그에 대한 종교적 이해 그리고 문학의 가능성에 대한 성찰도 음미할만하다.언어가 가진 내재적인 한계를 작가들은 어떻게 극복하며, 종교와 철학자들이 문학과 예술에 대해 부정적인 말들을 하였는데 이 역시 어떻게 풀이되는가?


저자는 공공 도서관이 그 사회의 공적 정신과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상이라며 모든 시민들을 끌어안을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독서의 필요성을 모르는 비독자들을 영혼의 진료실로 끌어들여 독서가 주는 위로와 안식을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 사회 역시 학교 공부나 취업 준비만 하기 바쁘고 독서는 등한시되는 모습인데 독서가 가진 심리적/지적 효용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시민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려면 민주주의나 정의에 대한 역사를 알아야 한다.또한 우리 시대에 필요하다고 이야기되는 융복합 능력이나 공감 능력은 모두 폭넓은 독서와 문학 작품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다.


비록 거창하지 못하더라도 우리 모두 나름의 독서 경험과 서재를 가지고 있을텐데 그것이 나 자신을 나타낸다는 저자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그리고 내 서재는 어떤 모습인지 들여다보자.


내 기억에 특별히 남는 문장들을 옮겨적는다.


한 세기 반 전 루이스 캐럴은 [실비와 브루노Sylvie and Bruno]에서 이 아찔한 개념을 이렇게 요약했다."집필 가능한 책들이 모두 집필되는 날이 언젠가 올 것이다.단어들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캐럴은 이렇게 덧붙였다."저자들은 어떤 새로운 책을 쓸지를 말하는 대신에 기존의 어떤 책을 다시 쓸지를 말해야 할 것이다."우리는 반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반복은 인간 정신의 미약한 능력 때문인가, 아니면 독자인 우리의 연상 능력 부족 때문인가?레몽 크노Raymond Queneau는 이런 말을 했다."인생은 여행 혹은 싸움이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는 [일리아스] 아니면 [오디세이아]다."(p.133)


문학의 증언은 더 좋은 것들, 희망과 위안과 동정을 상기시키며 동시에 우리가 스스로 이런 것들을 알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우리가 이런 것들을 모두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늘 성취하는 것도 아니다.그러나 문학은 우리에게 그런 좋은 것들이 분명 거기에 있다고 가르친다.이런 인간적인 특질들이 끔찍한 사태 뒤에 반드시 따라 나오는 것이다.마치 죽음 뒤에 탄생이 오듯 말이다.그런 인간적인 특질들은 우리 인간의 존재를 규정한다.(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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