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저녁에 아이를 재우러 가는 삶.
드론 전쟁이 만든 전혀 다른 트라우마.
그래서 AI는 필연인가?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미 국방부의 연구에 따르면 드론 조종사의 PTSD 발병률이 유인 전투기 조종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2013년 미군 군보건감시센터 연구는 드론 조종사도 전투기 조종사 못지않게 작전 후 극심한 스트레스 반응과 정신적 탈진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어찌 된 일일까?
드론 조종사들은 독특한 이중생활을 한다. 낮에는 전쟁터에서 송신되는 영상을 보며 공격 임무를 수행하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 일상으로 복귀한다. 밤낮으로 폭음과 자장가 사이를 오가는 극심한 심리적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이다. 아침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저녁에 아이를 재우러 가는 삶. 이 급격한 환경 전환의 반복은 드론 조종사들에 게 전통적인 스트레스와는 다른 종류의 피로와 긴장을 안겨 주었다. 한 드론 부대의 조종사는 하루 임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도 머릿속에서 계속 전장의 영상이 맴돌고, 동료들과도 그 경험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혼자 삭이는 일이 많았다고 증언했다. 연구자들은 교대제 근무, 업무상의 사회적 고립, 그리고 매일 전쟁과 일상을 번갈아 오가는 생활이 드론 조종사들에게 고유한 정신적 압박을 가한다고 지 적한다. 동료들과 함께 숙영하며 끈끈한 전우애를 나누어 트라우마를 견뎌내던 과거와 달리, 드론 조종사는 홀로 화면 앞에 앉아 전쟁을 수행하므로 심리적 방파제가 적었다. 더구나 현대의 유인 전투기 조종사는 레이더 표적을 겨냥하여 미사일을 발사하는 반면, 드론 조종사는 고화질 영상으로 표적의 최후를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유인 전투기 조종사보다 오히려 살상의 실감이 생생하게 각인되는 것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첨단 기술로 물리적 거리는 극도로 벌어졌지만 그로 인한 스트레스 완화 효과는 예상만큼 크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양상의 심리적 부담을 동반했다. - P2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은 죽이는 것을 본능적으로 꺼려한다. 그럼 전쟁은 어떻게 될까.

2차 세계대전을 조사하던 미국의 전투사학자 S.L.A. 마셜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투 속에서도 실제로 적을 항해 사격한 보병은 전체의 약 15퍼센트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나머지 85퍼센트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탄약 운반이나 부상병 구조 같은 위험한 임무는 기꺼이 수행했지만, 정면으로 마주한 적군에게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일만은 본능적으로 회피했다. 마셜은 이를 두고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죽이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분석했다. 마셜이 주장한 15퍼센트라는 통계 수치에 대해서는 엄밀성과 재 현성이라는 측면에서 논란이 많다. 하지만 수치는 다소 과장되었을지 몰라도 적군을 직접 살상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병사가 많다는 명제 자체는 틀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나폴레옹 시대에도. 미국의 남북 전쟁 시대에도 적의 머리 위로 총을 발사한 사례가 많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제로 남북전쟁의 전환점이 되었던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회수한 머스킷 소총 2만 7,574정 중 90퍼센트가 장전된 채로 발견되었다. 이는 대부분 병사들이 적군을 죽이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 P2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손가락을 찧기만 해도 온몸이 잠들 수가 없다. 아름다움의 정수는 영적인 짐을 함께 지는 것 아닌가.

이제 헨리는 그렇게 자문한다. 아름다움의 정수는 영적인 짐을 함께 지는 게 아닐까? 이 곡예사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름다움을 창출한다. 그들의 공연은 팀워크와 공동체를 통해실현된다. 제가 아주 똑똑히 보았거니와 다 함께 전체로서 한몸을 이룹니다. 한 지체가 제구실을 못하면 몸 전체가 제구실을 못합니다. - P1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쁜 삶 속에서 가끔 위를 쳐다보며 다른 삶이 있음을 깨닫게 하신, 예수님이야말로 예능인이셨다니..
어깨에 힘을 제대로 뺀 묵상이 아닌가.

나도 서커스단의 예능인과 같을까? 나도 사람들의 삶의 많은 단절된 순간 사이에서 그들을 떠받쳐
‘그 너머‘를 보게 하려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예능‘
(entertainment)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두 단어 inter(사이)와 tenere (잡다, 들다, 받치다)에서 왔다.
예능인의 자리가 뭐가 문제인가? 예수님이야말로 사상 최고의 예능인이 아니신가? 그분은 자꾸 꺼져 내리려는 삶 속에서 사람들을 떠받치고 계시지 않은가? 다른 세계에서 와서 이곳저곳 돌아다니시며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위를 올려다보게 하시지 않았던가? 삶에 그들이 생각한 것 이상이 있음을 깨닫도록 말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도 대부분 집으로 돌아갈 때는 서커스 관객처럼 꽤 감동했지만, 다시 고단한 일상생활에 치여 다 잊어버리지 않았던가? 그분이 방방곡곡 다니시며 기쁜 소식을 전하신 3년 동안 수많은 군중이 있었지만, 정작 그분의 공연 덕분에 근본적으로 달라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 P1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초에도 일생이 지나갈 수 있다, 그렇다..

자세히 들을수록 그 짧은 공중그네 곡예가 얼마나 긴시간인지 절감하게 된다. 중대한 고비 때는 삶이 느린동작으로 흐를 수 있음을 나도 안다. 교통사고를 겪은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핸들의 통제력을 잃는 순간부터 나무나 다른 차에 부딪히는 순간까지 그들은 아주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고 느꼈다. 자신의 일생 전체가 1초만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들도 있다. - P1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