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지향이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라면, 이제부터의 세대는 인공지능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을 삶의 지향으로 삼아야 하는 건가.

‘인공지능처럼 둬라.‘
이것이 알파고 이후 프로기사들의 목표였다. 인공지능처럼 두기 위해 인공지능처럼 느껴야 했다. 인간의 감각을 억누르고 지워야 했다. 인간이 쌓아 올린 바둑 지식은 잊어야 했다. 그런 인간 정석들이 몸에 덜 밴 젊은 기사들이 유리했다(10여 년 뒤에는 인간 정석을 전혀 배우지 않은 ‘AI 세대‘ 기사들이 활동할 텐데, 그때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강자가 나올 거라고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얼마나 인공지능처럼 두는가.‘ 이것이 프로기사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 2010년대 후반 바둑계에서는 ‘AI 일치율‘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어떤 인간 기사가 인공지능이 추천한 수대로 돌을 둘 확률을 가리키는 말이다. ‘AI 일치율이 높다‘라는 말은곧 그 기사가 강하다는 뜻이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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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으므로 옳다고 믿는 신앙의 경지가 아닌가.

프로기사들이 삼삼 침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수를 따라 두는 것은 인공지능의 권위 때문이다. 그 권위는 놀라운 실적에서 나왔다. 알파고 이전에 누군가가 ‘여기에 돌을 두면 이길 확률이 4.7퍼센트 높아진다‘ 같은 이야기를 했다면 농담처럼 들렸을 것이다. 10년 전이었다면 기사들은 가치 판단을 숫자로 표시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 자체에 웃었을 것이다. ‘이길 확률이라는 게 뭐냐,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은 바둑에서 그걸 어떻게 정확히 예상할 수 있느냐‘ 하고 따졌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그에 대한 답을 모른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바둑이 엄청나게 강하니까 아마도 옳을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만다.
그리고 따라 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인공지능의 수가 심오한 원리에서 나온다고 상상하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기에 어이없을 정도로 얄팍하고 편의적인 이유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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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역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제 어떻게 긍지를 느껴야 할까?

사람은 의미 있는 일을 자신이 잘해내고 있다고 믿을 때 긍지를 얻는다. 나는 다른 직업에서도 인공지능으로 인해 긍지를 잃을 사람이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 어떤 일의 의미와 인간의 유능함을 납작하게 짓눌러 버릴 것이다.
그 영역에서 문학은 예외일까?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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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사들이 앞서 맛본 ‘먼저 온 미래‘.
지금 내가 선 이곳에선, 또 앞으로 마주하게 될 그곳에서는 어쩔텐가.

집에서 중계를 보다가 멘탈이 나가서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다가 ‘이게 현실인가? 전화를 한번 해봐야겠어‘ 하고 동료 기사들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어요. 
‘너무 충격적이고 슬프다. 이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뜬눈으로 밤을 새웠어요.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져 내린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지금까지의 나의 노력은 어떤 가치가 있었을까, 그 시간은 헛된 시간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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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수준에서 실수라고 봤던 수들이 ‘신의 한 수‘였다.

"이세돌 9단 입장에서는 실수가 거의 없었고, 알파고는 실수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상한 수를 몇 번 뒀다. 실수한 알파고가 완벽한 이세돌을 이긴 형국이다." 조혜연 9단
"알파고가 부분적으로 굉장히 이상하고 이해가 안 가는 수를 두는데, 지나고 보면 이 9단한테 형세가 불리해졌다." 박승철 8단

이세돌 9단 역시 "왜 졌는지를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이쯤 되니 실수라고 봤던 알파고의 수들을 다시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파고는 바둑을 제대로 둔 것이었고, 인간 기사들이 그걸 이해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인공지능은 사람이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을 정도로 까마득히 높은 위치에 있었다. 
이때부터 프로기사들 사이에서 ‘알파고가 바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 같다‘라는 말이 오가기 시작했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 다섯 번의 대국을 마친 뒤 "인간의 창의력, 바둑격언, 기존의 수법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것이 정말 맞는가"라고 말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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