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사람들은 왜 더 폭력적이 될까?
혹시 SNS 회사들이 그 폭력화에 한몫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 SNS 회사들은 가입자수 확대를 위해 폭력화의 버튼을 기꺼이 눌렀다.
인류가 인지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이른바 ‘던바의 수‘ 150명. 묘하게 SNS도 이 한계를 넘지 못했다. 원숭이들의 실험은 150명이 넘는 공동체에서는 투쟁과 도피 반응이 커지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안락의 한계를 넘도록 유도하는 SNS는 ‘폭력화‘라는 지뢰밭으로 수십억 인구를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사용자 참여를 끌어올릴 수 있기를 바라며 이른바 던바의 수를 깨는 실험에 들어갔다. 1990년대에 영국 인류학자 로빈 던바 Robin Dunbar가 인간이 인지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는 150명이 한계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150명은 우리가 진화한 사회 집단이 최대 150명인 데서 얻은 숫자다. 이 숫자를 넘기면 우리 뇌에서 사회 인지를 담당하는 신피질neocortex이 한계에 다다른다. 우리 행동도 회로 차단기가 작동하듯 바뀌어 다시 150명으로 돌아가려 한다. 온라인에서마저 사람들은 던바의 수에 자연스럽게 수렴했다. 2010년에 페이스북 사용자의 친구 수는 평균 130명이었고, 소셜네트워크 게임 프렌드스터는 친구 수를 아예 150명으로 제한했다. "던바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실리콘밸리의 오랜 꿈이었다. 저커버그는 그 저주를 깨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아무리 페이스북이라도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적어도 아직은. 2013년에 다시 사용자 증가가 멈추자, 페이스북은 던바의 저주를 깨겠다는 목표를 중심으로 플랫폼을 재설계했다. 사용자에게 ‘약한 관계‘, 즉 친구의 친구, 지인의 지인, 친척의 친척이 만든 콘텐츠를 쏟아냈다. 정교한 알고리즘을 활용한 덕분에, 이 계획이 효과를 거뒀다. 페이스북은 던바의 수를 넘어 계속 확장하는,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사용자를 끌어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정책을 펼친 트위터도 사용자에게낯선 사람의 트윗을 보여줘 친구의 친구를 팔로우하게 자극했다. 이 회사들은 인간이 타고난 신경학적 한계를 우회할 때 나타날 결과를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늘 그랬듯 자기네 상품이 본질적으로 사람을 해방한다는 믿음 속에 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던바의 수가 인간과 비슷하다는 레서스원숭이와 마카크원숭이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이 원숭이들을 넌바의 수보다 더 큰 집단에 집어넣으면 공격성과 폭력성이 커지고 서로 더 불신했다. 마치 공동체 생활의 위험은 모조리 증가하고 기쁨은 줄어드는 듯한 모습이었다. 원숭이들은 부자연스럽게 큰 집단을 안전하게 탐색하는 일이 자기네 능력을 넘어선다는것을 알아챈 듯 끝없이 사회적 투쟁-도피 반응을 이어갔다. 또 일종의 방어 기제로 사회적 위기를 형성해 강제하는 데 더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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