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이 살아가는 법

몽골의 초원은 겨울이 워낙 길어 눈이 쌓이면 5월이 되어야 녹는다고 한다. 초원의 풀을 뜯어 먹고 사는 동물들에게는 재앙의 기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동물들은 눈이 오기 전 풀을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어서 자기몸을 세 배 이상으로 불려 놓는다. 그리곤 긴긴 겨울 동안 몸에 비축된 지방을 소진하며 버틴다는 것이다. 드디어 봄이 오면 동물의 몸은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있는데, 그때 초원에 남아 있는 눈을 들치고 나오는 최초의 풀은 약 성분이 있어 이 약초를 뜯어 먹으며 건강을 신속히 회복한다. 힘을 얻은 동물이 봄풀이 솟아 나오도록 언 땅을 헤집으면 초원은 다시 온갖 풀과 야생화로 뒤덮이게 된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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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을 걷는 여행이 좋다

나는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골목길 속을 탐색하며 그 속에 기록된수없이 많은 역사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삶이 완성한 건축의 아름다움, 그 일상의 미학을 만끽했다. 그렇다. 여행이란 공간 속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얻는 삶에 대한 성찰임을 다시 알았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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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집은 삶을 짜는 일이지

인류의 역사에 건축이 먼저 생겼지 예술이나 공학이 먼저 생긴 게 아니다. 예술이나 공학이 없던 시절에도 집은있었음을 상기하시라.
건축설계라는 일이 남의 삶을 조직해 주는 것인 만큼, 건축가가 좋은 집을 설계하고 짓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집에 사는 이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가져야 하고, 이는 우리의 삶에 대한 지극한 관심의토대 위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바른 건축 공부란 우리 삶의 형식에 대한 공부여야 한다. 남의 삶을 알기 위해서는 문학과 영화 등을보고 익혀야 하며, 과거에 어떻게 산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들추지 않을 수 없고, 나아가 어떻게 사는 게 옳은가를 알기 위해 철학을 공부해야 하므로, 건축을 굳이 어떤 장르에 집어넣으려 한다면 그것은 인문학이어야 한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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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오현으로 숭상받는 김굉필의 단단한 오기를 기린 곳, 도동서원.
죽음이 생애를 규정한다, 연산군의 첫 사림 순교자 김굉필처럼.

#도동서원 #김굉필

사람은 어떤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느냐, 그리고 어떻게죽음을 맞이하느냐로 판단된다. 김굉필은 정적들에겐 지독한 적이었지만 그의 뜻을 따르는 후학들에겐 위대한 실천가였다. 도동서원은 서원이란 독특한 건축 장르가 진정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서원을 찾아가는 우리가 서원에서 진정 느껴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전하고 있다.
서원 건축은 처음부터 화려한 아름다움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평생 모시고 존경할 학자의 뜻을 세우는 것, 이것이 서원의 목표였다. 그래서 소박하면서도 지성적인 건축을 추구했다. 이런 서원 건축의 이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서원이 도동서원이다. 그리고 김굉필을 모신 서원답게 오기와 자존심까지 담아냈다. 이 작은 서원은 그래서 더욱 도드라진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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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고 하면서도 고난에 무기력한 이유

악과 고난에 관해 크리스천들이 가진 첫 번째 자산은, 인격적이고전능하신 하나님이 세상만사를 주관하신다고 믿는 신앙이다. 이는 변덕‘스러운 운명과 가늠할 수 없는 우연이 삶을 쥐고 흔든다는 악의 문제 앞에서 더할 수 없는 위안을 준다.
두 번째 결정적인 교리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친히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우리와 더불어 고난을 받으셨다는 가르침이다. 이는 신은 세상사에 멀리 떨어져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다는 이신론적 세계관과 대척점에 서서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준다.
세 번째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가 이루신 역사를 믿음으로 구원을얻는다는 신념이다. 이는 예수님이 이미 값을 치르셨으므로 살아가며만나는 힘겨운 일들은 우리가 지난날 저지른 죄의 대가가 아니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게 만든다. 세속주의는 이런 믿음을 줄 수 없다. 덕을 쌓고 선행을 베풀어 구원을 받으라고 주문하는 종교들도 마찬가지다.
네 번째는, 믿는 이들마다 어김없이 죽음을 이기고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교리다. 기쁨과 위안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완결하는 신념이다.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소망 가운데 하나는 사랑하는 이들과헤어지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는 일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부활 신앙은 죽으면 무로 돌아가거나 인격이 없는 영적인 존재가 된다는 관념보다 훨씬 큰 진정한 위로가 된다. 부활은 육신을 세상에 버려 둔 채 영혼만 하늘나라로 들어가리라는 약속이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아름답게 회복한 모습으로 몸을 돌려받게 된다.
...
기독교 신앙이 가르치는 이런 교리들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세속화된 신앙으로 하나님을 찾기보다 차라리 그분을 철저하게 불신하는 편이 비극적인 사태와 마주하는 더 좋은 대비책이라고 본다. 오늘날 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다지만, 구원을 받고 주님 품에 안겼다는 확신이 있는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해 돌아가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깊은 감동을 받는지, 예수님과 성도들이 육신으로 부
활했고 또 그렇게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지 물어보면 고개를 가로젓거나 눈만 껌벅거리는 반응이 돌아오기 십상이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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