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선고 외 을유세계문학전집 72
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태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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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 지금 이 책의 완독을,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의 거리, 그러니까 그 놈의 완독을, 불과 몇 미터 아니 몇 센티 아니 몇 페이지 남겨두고 있다. 완독하지 못한 채 리뷰를 쓰는 일의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 어떤 죄책감도 내게 통하지 않으리라는 막무가내식 막무가내가 막무가내로 달려들면서 나를 한량없이 기쁘게 한다.


2.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까지 차례대로 읽고 나니 어느덧 146쪽에 이르렀고, 그때 벌써 이 책의 절반 이상을 주파했다는 자부심으로 심장이 뜨겁게 차올랐다. 전력질주는 아니었다. 그런 걸 용납할 리 없다는 지레짐작으로 지레 겁을 먹었더니 전력질주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만 용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용을 썼고, 용의 콧구녕은 코빼기도 안보였고, 결국 용의 주도면밀함에 압사당할 뻔한, 뻔한 추억에 기대어 지금 리뷰를 쓰고 있는데, 나 참. 제일 유명하다는 명승지를 나름 한바꾸 휘돌았으니 이젠 나머지 잔챙이(?)들 몇 군데만 찍찍 밤무대 스텝을 밟듯이 하면 되겠다, 침을 퉤퉤 뱉으며(사실과 전혀 무관한 진술을 제가 하고 있어서 무척 놀랍군요)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이게 웬 걸. 사람 주저앉히는 재주가 있었네? 이 카프카가?(사실과 다르게 놀라는 척을 하다니 무척 가증스럽군요)


3. <신임 변호사> <시골의사> <관람석에서> <낡은 책장> <법 앞에서> <자칼과 아랍인> <광산의 방문> <이웃 마을> <황제의 전갈> <가장의 근심> <열한 명의 아이들> <형제 살해> <어떤 꿈> < 


꺼,꺽쇠는 여기까지. 읽은 단편들 단편단편을 말하기 위해 줄기차게 꺽쇠를 꺽다보니 꺽쇠를 앞에 두고 그만 꺼,꺼억 신물이 올라온다(이런 웃기지도 않을 말장난을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나니 어머나 비슷한 증상이 올라오네요. 이건 좀 놀라운 일이군요)

암튼 여기까지 읽었고, 리뷰에 착수하면서 든 생각은 여기까지만 읽겠다가 되었다. 좋은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머지 세 개의 단편 <학술원 보고> <최초의 고뇌> <단식술사>를 마저 읽는다 해도 내 선에서 해결되는 건 없다. 돌아서자마자 까먹을(아니 처음부터 이해불가였다) 내용을 읽는다는 건 인내심 함양도 조달도 독려도 뭣도 아닌 그냥 시간낭비일 뿐이다. 아주 멋대로 판단하고 혼자 좋아하는 단계에 온 걸 보니 대견하다. 진심.


4. 자, 이제 카프카의 대표작을 읽었으니 카프카는 어떤 인물인가. 역자 해설(합리성 너머의 세계에 대한 탐색)을 읽었다. 과연 속이 좀 풀리는 듯 했다. 좀 배웠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내놓을 수 있는 그저그런 일반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나에겐 통했다. 내 속이 어지간히 풀리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뜻이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신열에 들떠 마구 지껄이는 헛소리가 바로 카프카의 세계,라고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점잖은 교수가 그렇게 말하면 안되기 때문에 그랬을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보다 막중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아니, 카프카의 영향을 받은 세계적 작가들을 즐비하게 거론하면서,(어디 세계적 작가 뿐이겠는가. 세계적 철학자, 사상가들도 있다고 하니) 그렇게까지 막 나갈 수는 없었으리라. 카프카를 떠받치는 문화역사적 조류와 그 파장이 일으킨 막대한 영향력이 기정사실이라는 전제에 발 묶인 객관적 서술을 하다보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존중은 당연한 미덕임이 분명하지만 존중이 지나치면 어디선가 무언가는 존중받지 못하는 구석진 그늘이 생기게 된다. 카프카적 세계가 일으킨 거대한 물결을 잘도 타고 넘나든 세계적 문인들과 사상가들의 세상에 꼽사리 한번 못 끼고 죽을 것만 같다고 해봤자 어차피 난 죽지도 않는다. 그런 걸로 죽고 싶으면 내가 오늘날 이렇게 시덥잖은 독수리 타법 앞에 어쩔어쩔 하면서 살고 있진 않을 테니까. 


5. 카프카 연보를 읽었다. 읽을 것도 없지만 꼼꼼히 이 잡듯이 읽었다. 1883년에 태어나 1924년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하기가지 그는 네 명의 여자와 썸(씽 스페셜)을 탔다. 맨처음에 만난 여자는 펠리체 바우어. 그녀와는 두 번의 약혼 과 두 번의 파혼을 한다. 그러다 1918년이 되지 율리에 보리체크를 만난다. 이듬해 1919년 그녀와의 약혼이 있고, 같은 해 밀레나 예젠스카라는 저널리스트를 만났는지 어땠는지는 모르나,(아 만났으니 그녀에 의해 몇몇 단편이 체코어로 번역되었다고 나오지) 아무튼 그 다음 해인 1920년 율리에 보리체크와 파혼하고 밀레나 예젠스카를 만난다고(또 만났네 또 만났어) 연보에는 나와있다. 그리하여, 여기가 끝이냐 하면 끝이 아니다.  그로부터 3년 뒤 1923년에 도라 디아만트를 만난다고 되어있다. 만나서 베를린으로 이주했다고 나온다. 참고로 그가 폐결핵 진단을 받은 해는 1917년이다.  


6. 이상으로, 카프카는 카프카적 글쓰기를 했고 카프카식 사랑을 했다고 봤을 때, 그리고 대략(?) 41년의 짧다면 짧은 생을 살았다고 봤을 때, 그리고 또 '노동자 재해 보험국'에서 1908~1922년 은퇴하기까지 낮에는 생계를 꾸리고 밤에는 글을 쓰면서 근면하게 살았다고 봤을 때, 그리고 그 사이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때 '직장 필수 인력'으로 징집에서 제외된 사실로 봤을 때, 그러니까 이 모든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카프카는 참으로 열심히 잘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카프카가 있기까지 이러한 사실에 입각한 일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는 조금도 놀랍지 않다. 다만 놀라는 척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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