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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스피치 - 개정판, 대한민국 말하기 교과서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5월
평점 :
책을 고를 때부터 이미, 잘못 고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그 책을 집어드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이 그랬다. 나랑 상관없는 얘기일 게 뻔한데 중간에 그만두기 싫었다. 일단 읽기가 수월했고, 내 판단이 옳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이런 건 있었다. 초대장 없이는 곤란한 자리에 초대장도 없으면서 우연히(아니 의도적으로) 가게 되었는데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상황. 그 곳에 던져진 나를 멀리서 팔짱끼고 바라보는 나. 그런 나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내 판단이 옳았다.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이 아니었다. 그냥 자기자랑이다. 자기가 차린 스피치 학원(?) 홍보용 책자다.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단에 올라서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 사람들은 그들이 걸어온 역사와 일대기와 수많은 에피소드를 변방의 슬픔으로 탈바꿈 하는 크나큰 재주가 있다. 그리고 이것을 눈물없인 들을 수 없는 얘기로 치환하는 재주가 있다. 자부심 또한 남달라 진정한 소통은 이런 거라고 소탈한 웃음으로 품위를 완성한다. 저자 김미경은(김미경도) 이 방면에 전문가다. 굉장한 실력을 자랑한다. 감동과 공감의 스피치. 그 힘을 세상에 알려서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는 의지의 산물로서의 책. 피나는 노력으로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함께 하겠다는데 누가 말리나. 출판사는 주저할 이유가 없다. 책 한권에 모든 걸 쏟아부었을 리 없는데(영업비밀을 떠나) 쏟아부은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이런 재주는 낚는 기술에서도 기량을 발휘한다. 독자든 수강생이든 낚는 게 목적이니까 수단과 방법을 안가린다. 일단 자세를 낮추고(쉽게 말하고) 약장사의 기술(거침없이 말해서 정신 못차리게 하는)을 활용한다. 낚이고자 마음 먹은 사람에겐 이만큼 좋은 책도 없다. 챕터마다 성의를 다한 흔적들. 쉬운 말로 공략하는 놀라운 설득력. 겸손하게 안굴어도 매너 있어 보이는 사람. 인정욕구와 자신감이 이토록 잘 조화를 이룬 사람. 글을 글로서 대하지 않고도 글을 잘 쓰는 사람.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말을 한 것이지만 그것조차 위장하는 능력. 하긴 왜 안그렇겠는가. 말하는 재주가 타고났는데. 자신의 말이 단순한 수다의 차원을 넘어서 영향력을 행사하기까지 부단한 자기계발과 연구가 있었으니. 거기에 끈질기게 매달려 달려온 자의 뼈를 깍는 고통이 있었으니 말해 무엇하리.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가장 주력한 포인트는 가진 자들의 세계에 철저히 복무하는 것이다. 방송에서 유명해진 이후로는 더욱 가속이 붙어서 앞만 보고 잘도 달린다. 성공의 지름길을 일찌감치 체득한 자로서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이미 욕망했기 때문에 가던 길을 멈추지 못한다. 세상이 다 떠받들어주고 약자든 강자든 다 매달리니까. 자신의 신념에 제동을 걸 기회도 없다. 그녀는 오직 바쁘다. 그리고 나쁘다. 라임을 맞추기 위해 쓴 말이 아니다. 바쁜 사람은 나쁘게 될 확률이 높다.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기 쉬운 세상에서 그녀를 나쁘다고 말하는 나를 본다. 내가 가진 한도내에서 책의 리뷰를 이렇게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배운 게 있다면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