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음악도 보고 싶은 풍경도 보고 싶은 영화도 없다. 난 요즘 그렇게 살고 있다. 아, 그러니까 뭘 해도 별로인 것이다. 이해력은 물론이고 감수성이라는 것도 그 실체가 무너진지 오래다. 도무지 뭘 해도 설레지가 않다. 좌표도 없는 희멀건 지도를 펼치면 불안의 너울을 쓰고 달려드는 휑한 도로에서 두리번거리는 내가 있다. 한 명도, 어떻게 단 한 명도 없을 수가 있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지? 나를 구원할 누군가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내가 구원할 누군가에 대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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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소. 풍문으로 들었지만 풍문으로만 듣지 않았다오. 풍문이면 풍문이지 뭔 소리오? 하는 분들 위해, 그러니까 이럴 때의 내 유치함의 끝은 어느 정도냐면 이거요. 우편함도 없으면서 날아든 우편물이 있다는 소식을 풍문으로만 듣던 어느 먼나라의 유적지에 머리를 조아리며 졸다가 저 바람소리가 내 방 문풍지 소리인지 풍문으로만 듣던 그 바람인지 사리분별 못하는 딱 그 수준이라오. 아무튼 그 끝장의 정도가 어디냐에 달렸겠지만, 이런 류의 사람들이 흔치 않다는 건 사실 아니겠소. 게다가 축복이라오. 여기엔 희소성의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오. 아니 희소성의 가치만 있소. 그러니까 그 한 분야라는 것이 어떤 분야인가 하는 희소성인 것이오. 이를테면?  글쎄요. 각자 하기 나름 아니겠소? 편하군요. 네 편하오. 불철주야 주구장창 한 우물만 정신일도하사불성 투철한 정신 순전한 몸과 마음 온전히 불살라 맨바닥 육신의 백골 난망난망 하염없이 진토되는 그날까지 한 우물만 파다가 아 그래 콸콸콸 솟구치는 그날에 대한 확신도 기약도 없기로서니 아 드디어 해냈어 언젠가는 이럴 줄 알았어 근데 뭐야 이게 뭐야 이건 아니잖아 잘못 건드렸어 오마이갓 신음처럼 흘러나오는 되돌릴 수 없는 다시는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다 괜찮다 이를 악물고 굳게 다짐하는 그런 편안함 이라오. 그나저나 풍문으로만 듣던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한단 말이오. 그 정신으로 정신나간 축복을 챙기는 사람들이 내게도 있기를 내 집에도 들러 주기를. 뭘 더 바라겠소 하는 마음으로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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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4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컨디션 2017-01-04 21:08   좋아요 2 | URL
뭐이런 페이퍼 제가 한두번도 아닌 걸요. ^^ 힘든 일은 언제나 있고 누구나 있는데 그때마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말을 하는 거죠. 그나마 이런 곳에 서요.

2017-01-04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5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