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도 채 안되어 잠이 들었던 어제는, 숙면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잠을 잘 못잔 것은 아니다. 온갖 잡스런 꿈을 꾸던 중 남편이 새벽에 오줌 누러 일어나는 소리에 설핏 정신이 들었고 아, 방금 나는 이런 꿈을 꾸고 있었구나, 생각이 났다. 그 생각은 잠에서 깬 이후로도 계속 남아있다. 차마 말하지 못할 정도의 꿈은 아니었는데 보통 이런 류의 꿈은 온갖 잡다한 꿈을 제치고 기억에 오롯이 남는다. 외간 남자(연예인 포함)가 등장해야만 이 정도 반열에 오를 수 있는데, 글쎄 어제는 어떤 남자가 중국어도 못하는 나를 데리고 중국으로 가서 함께 일해보자는 것이다. 남편이 있는 나를 말이다. 게다가 남편이 눈앞에 있는 자리에서 그런 제안을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날 흥분시켰다고 봄직하다.

 

조금 있으면 밭으로 가서 구덩이를 파고 병든 사과들을 묻어야 한다. 8월은 시나노 레드, 9월은 홍로와 홍장군에 이어 이제 10월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그간 아무런 보람도 없이 골병만 들었다고 한탄할 내가 아니다. 상실감은 상실감이고, 그 정도 잃었다고 해서 끄떡할 거였으면 애초에 시작도 안했다. 전투력을 다시 불태워야 할, 이제 미야마의 계절이다. 스케일에 압도당하지 말자. 5월, 그  때아닌 더위 속에서도 마냥 신났던 날들을 기억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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