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아침 이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남편이 좀더 이불 속에서 밍기적거렸으면 좋겠고 올려놓은 찌개가 좀 천천히 끓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오늘은 오후 5시 무렵이면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저녁은 아주 간단하게, 대충(늘 그랬지만) 때울 참이다. 그래서 이겠지만 난 지금 조증이다. 하지만 손가락은 굼뜨다. 마음 같아선 자판 위에서 춤을 춰도 모자랄 판에. 이 모두가 가운데 손가락 때문인데 그동안 이 손가락의 장단에 오랫동안 놀아나도록 스스로를 방치한 대가이니 이제 와서 무슨. 키보드 워리어가 되기엔 너무 늦었다고 누굴 탓하리. 

 

남편이 아직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고 있으므로 두번째 단락을 이어간다. 오늘 남편은 일박이일 일정의 출타를 앞두고 있다. 남편의 포터는 36번 국도를 달려 어느 작은 소도시에 도착할 것이다. 늦여름 꽃들이 드문드문 피어있고 이제 막 피어난 코스모스 사이로 노을빛이 내려앉는 길 위를, 요즘 같은 저녁을, 오늘은 각자 해결하는 방식이라니, 좋아서 미치겠다. 이렇게 좋아 죽겠는 내 마음을 남편이 알게 된다면 얼마나 서운하고 또 서운할까. 그래도 좋다. 알 턱이 없는데 무슨 걱정이랴. 이랴이랴, 말을 타고 달리는 내 마음을 누가 말릴소냐.   

 

어젯밤, 늦도록 아래 리뷰를 쓰느라 시간을 엄청 버렸다. 겨우 2시간 잔 것 같은데 내내 반수면 상태였다. 몸을 혹사했더니 리듬이 깨졌고 그 바람에 제 정신이 아닌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 찾아오는 쾌감이 있다. 허리를 쭉 펴고 실로 오랫만에 맛보는 쾌감을 깊숙이 끌어안는다. 아니 등에 업는다. 둥가둥가 아이를 얼르듯.

 

그동안 미뤘던 일들을 할 예정이다. 제일 먼저, 작은 물건부터 시작해서 큰 가구(랄 것도 없지, 냉장고나 장농을 옮기는 건 아니니까) 따위를 이리저리 들었다 놨다 할 것이다. 한번 일을 벌이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 아이들은 무척 심란해 할 테지만, 드디어 엄마의 히스테리가 집안의 먼지들과 소통하는 절호의 주기를 맞이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와, 생각만 해도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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