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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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다. 2주의 대출기간이 있었고, 미련없이 반납한 게 바로 어제다. 미련없이 반납했다는 건 '완독'을 했다는 것이다. 얼추 열흘 정도 걸렸다. 내 독서환경(독서력)에 비추었을 때 이 정도면 굉장하다. '정유정 책인데 그렇게나 많이 걸렸어?" 라는 힐난(물론 내가 나에게 던지는)은 이제 없다. 깨끗이 털고 일어난 기분이다.  

 

일단 책의 도입부터 확 끌렸다. 히말라야,를 결심하게 된 배경과 당시의 혼란스런 심경을, 자칫 뻔한 얘기를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전달하는 솜씨에 감탄했고 그것이 동력이 되어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배신당했다는 느낌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똑똑 떨어지는 스타카토식 문장. 달력을 한장한장 찢으며 달려가는 망설임없는 여정. 고산병에 시달리는 며칠 간의 기록조차 한치의 망설임 없이 잘 견뎌낸다. 글쟁이 특유의 과잉이나 엄살로 힘들게 하지 않는다. <7년의 밤>과 <28>이라는 탁월한 서사를 만들어낸 정유정이니까 이 정도는 거뜬히 견뎌내겠지, 하는 일종의 믿음. 다만,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으려는 그녀의 앙다문 듯한 고통이 엉뚱한 차원에서 내게로 전이된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강하구나 정유정, 독하구나 정유정을 연발해야 했던 것도 일종의 고통이라면 말이다.  

 

떠난다는 것. 여행(해외)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있다. 본능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누구나 있다. 여행의 필요충분조건을 잘 구비했든, 여행에 대한 일념으로 몇년짜리 적금을 들어야 하든, 죽음을 눈앞에 둔 시점에 언뜻 떠오르는 소원이든.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해당사항 없음,이다. 해외를 나가 본 적 없는 나. 이 시대의 '불능'이라고 해도 견딜만 한 표현이다.

 

뭐 어쨌든.

 

동행한 김혜나 작가는 물론이고, 히말라야 중턱(?)에서 정유정을 알아본 한국의 어느 청년 독자라든가, '뷰에 죽고 뷰에 사는' 등반 대장 버럼까지, 내가 부러워하고 또 부러워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그 이유는, 너무 뻔해서 밝히지 않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밝히고야 말겠다. 내 부러움의  최종 승자는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님 정유정의 남편이다. 소설가, 그것도 매우 잘 나가는 실력파 소설가의 남편. 아내의 집필 환경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팍팍 밀어주는 외조력(?)까지 갖춘 것이 분명해 보이는 남자. 난 뜻밖에도 이 남자의 일상이 부럽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지만, 아무튼 부럽다. 아내가 벌어오는 인세 덕에 별 걱정없이 사는 것 아니냐는, 어떤 '편견'에 사로잡힌 것이라면 할 말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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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 2015-09-11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 아닌 오타 발생. 뷰에 죽고 뷰에 사는 남자는 `버럼`이 아니고 `검부`였다. 본문에서 고치지 않고 이렇게 셀프 댓글로 수정...하는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