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50분 기상. 어머니 동그마니 앉아 계신 걸 보고 깜딱 놀람. 황급히 쌀을 씻고 된장찌개를.

 

8시 출발. 터미널(길가)에 어머니 내려 드린 후 일터로 향함. 부앙. 산천초목이 먼지에 뒤덮인 느낌으로 다시 부앙. 통일고속 앞마당 시멘트 바닥에 목줄을 한 채 잠들어있는 개. 가엾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마음이 미어져오는 걸 아침마다 목격함. 이런 것이 인생의 잔인함.

 

9시 도착. 널브러진 그. 그의 옷자락도 못건드리겠는 나. 나 언제부터 이렇게 소심해졌지? 행여 하자고 할까봐 움츠러든 거? 암튼 내일은 컨디션을 정비해야 할 듯. 하자고 덤비면(?) 해야 하니까.

 

겨우 기운을 차리고 꿀차와 커피를 나란히 마신후 d구역부터 시작. 오늘 목표량은 30 정도 예상했으나 결국 못채움. 그래도 상관없음. 이것이 나의 실체. 나의 본질. 그래서 나는 살아갈 수 있음.

 

간식으로 얼음 섞인 물을 마심. 11시 50분 무렵. 팟캐스트를 듣다 말고 새가 날아든다에 나오는 황진미의 화법과 태도에 대해 잠시 쿵짝이 맞는 느낌으로 대화를 나눔. 약간의 흥분. 과연 흥분. 흥분에 대해 생각함. 다시 생각함. 좀더 생각함. 흥분에 대해. 대하여.

 

2시 30분. 점심. 먹다 남은 어떤 류의 국물에 밥을 비벼먹음. 입맛이 없다는 공통된 의견에 서로 맞장구를 치며 물을 마심. 물만 마심. 물밖에 없음. 물이 최고야. 이러면서.

 

다시 출동. 오늘은 일찍 시마이 하자는 그의 말에 약간은 동의할 수 없는 마음이 생기자 이상하게 기운을 차리게 되는 아이러니 발생. 이런 쩝. 묘한 심리라니, 까진 아니고 당연한 인지상정?

 

아, 갑자기 생각난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야만적인 앨리스씨. 신영복과 황정은.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길 바라고 조만간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며.

 

5시 30분. 이제 그만하자는 말. 작업반장인양 말하는 듯 해도 그는 예고편은 항상 옳다. 자기중심적인 면을 어떻게 해볼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적어도 폭력적이진 않기때문에 문제삼지 않는다. 그의 폭력이 있다면 난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진짜 폭력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감히 안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긴 하지만.

 

퇴근길의 바람은 언제나 상쾌하고 부드럽지만 오늘은 덜 그랬다. 너무 이른 퇴근이었나. 그랬다. 해가 여전히 하늘에 걸려있다는 게 이상하게 낯설고 죄책감마저 들었다면 이건 너무 오버인가? 암튼.

별 놈의 것에 죄책감에 느끼다니 나도 참.

 

옛날통닭에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석가탄신일이라 절에 갔나, 아님 정기휴일인가. 날이 너무 더워 식욕조차 없는데 통닭을 떠올린 건 순전히 간절함 맥주때문었...음을 그도 나도 인정. 술꾼의 고리. 지독한 유착. 중독이라고 일찌감치 명명한 이래로 이젠 새로운 수식어를 개발할 의지도 없어졌다. 그냥 마신다. 매일이 술. 애브리데이 원샷.

 

8시. 다시 8시라고 하기엔 이미 구라. 쎄시봉을 보았다. 그의 주정상태를 감안하면 제대로 보긴 글렀다는 통념을 깔고 각오하고 보긴 했는데 다행히 그는 잘 적응(?)했다. 김윤석과 김희애(특히 김희애)의 미스캐스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서 난 충분히 의미있었고.

 

영화가 끝난 후 밀린 저녁 설거지를 하고 빠래를 정리하고 세수를 하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려니 시간이 뚝뚝. 새는 수돗물처럼 뚝뚝 떨어지는 가운데 정수리가 쩡 하고 갈라지는 아픔이 있다. 내일은 또 오늘처럼, 그러나 오늘과는 완연히 다른 내일이 있다는 통념으로 옛날통닭에 다시 전화를 걸어볼수도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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