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종일 집에 있었고 그는 하루종일 밖에 있었다.
나는 오늘 꼭 해야 할 일 중에 (아니, 하기로 한 일 중에) 단 한가지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하지 않아도 될(아니, 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했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건 일이랄 것도 없는, 말하자면 보잘 것 없는, 즉, 나를 위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저녁이 되자 하루종일 밖에 있었던 그와 함께 저녁을 함께할 시간이 되었다. 저녁은 생각보다 일찍 왔다. 춘분과 하지 사이의 시절을 감안하더라도 저녁은 빨리 왔다. 나의 마음이 온전하게 받아들인 체감의 결과라 해도 난 항변할 의지가 없다. 맞는 말이니까.
막걸리를 사들고온 그는 오자마다 옷을 벗었다. 골이 패인 마른 엉덩이. 얼핏 듬직한 심볼. 난, 이때다 싶을만큼의 수위로 슬몃 나긋한 미소를 지어봤지만 그의 두 다리는 이미 나른하게 풀려있어서 얼른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아 배고프겠구나. 너무나 당연한 욕망. 하루종일 안락하게 집에 머문 대가를 달게 받겠다는 자세로 분주하게 그릇을 달그락거리는 일은 의외로 전투력을 자극했다. 당신이 샤워하는 동안 저는 밥과 술을 대령하겠나이다.. 뭐 이런 투.
막걸리를 마시는 동안 그가 팟빵을 켰다. 잠시 귀를 기울이던 우리는 이내 입을 열었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더이상 경청하지 못하게 되었다. 방송은 뒷전이 되었고 곧바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정치인은 시정잡배 같다는 내 말이 빌미가 되었고, 그가 말하기를, 그건 잘못된 생각, 아니 태도다, 그런 식의 상투적 발언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된다, 아니 오히려 보수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결과만 만들 뿐이라고 했다. 그야말로 성토를 했다. 요즘 그는 자주 이런다. 나는 이런 그의 술버릇이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는 요즘 더이상 술주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