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몸이 있기 전에 애초에 늙은 마음이 있었다. 


첫문장을 저렇게 시작하고 보니 일단 나도 많이 늙었다. 마음이 늙으면 몸이 아무리 탱탱해도 소용없다는 식의 교훈적 언사를 습관적으로 비웃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마음이 늙으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후폭풍이 일어나는지 그 조짐이 당장 내 눈앞에 보인다.


되지도 않는 걸 붙들고 앉아 어떻게든 되게 하려고 엎어쳤다 매쳤다 주물럭거리기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했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지 싶다. 거의 발악에 가까웠던 그때의 흔적들을 아침부터 죽 훑고나서 생각한 문장이 저렇다. 늙은 몸이 있으면 젊은 몸도 있기 마련이고 근데 이거야말로 상대적인 것이니 몸을 갖고 젊네 늙네 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데 생각이 미치고,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을 이렇게 저렇게 단정지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는 데까지 가고 나니 당장이라도 저걸 폐기처분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냥 둔다. 왜냐. 아까우니까. 내 생각이 짧든 길든, 잘되었든 잘못되었든, 여기까지 왔으니 이게 어디냐 싶다. 애착이고 집착일 뿐인 생각 나부랭이일 뿐이지만 줄기에 줄기를 타고 뻗쳐오르기도 쉽지 않은데다, 오늘은 마침내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건가, 부끄럽지만 피식 즐겁기도 하니까. 그때는 시간을 쪼개서든 있는 시간을 물 쓰듯 흘려보내서든 어떻게든 읽으려고 했고 쓰려고 했는데..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 없어지기 시작했고 습관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임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던가. 이제 할 수 있는 질문있다면, 문제가 무엇인지 몰라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 나의 이런 문제를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는 가운데 오직 나만 아는 하나가 있다는 걸 밝혀야한다는 것. 하지만 공개할 수가 없다. 눈곱만큼의 마음은 있지만 내 눈에 눈곱 말고도 흙이 들어가는 것을 각오해야 하니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몸을 사려야 할 이유가 너무도 명백하니 죽고 싶어 환장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다.


그러니


오늘 모처럼 이렇게 페이퍼를 낭비하면서 말을 맺자면,

잊을 건 잊고 다시 새출발 하자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