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어 풀빛 그림 아이
알리체 로르바케르 지음, 리다 치루포 그림, 이승수 옮김 / 풀빛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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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속으로
길이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서툰 길입니다.
우물쭈물하다 큰 나무에도 부딪히기도 하고 줄지어 가는 개미 떼들의 길을 방해하다 겁을 먹고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당황하기도 합니다.
서툰 길은 오르막길도 되어보고 넓은 길도 되어보아도 상처투성입니다.
길을 잃은 서툰 길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 서평
나에게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곤 했던 길. 그런데 그 길이 나에게 말한다. “나도 길을 잃었어. 나에게 묻지 말아줘.”

처음 접하는 그림책이다. 나는 그림책을 통해 하루를 시작하며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그림책을 통해 얻곤 한다. 그런데, 이제 그 길이 나도 길을 잃었다고 자신도 상처투성이라고 한다. 순간 당황스러우면서도 어떻게 이 책을 접해야 할지 생각을 해보았다.

예정론자들은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이 미리 정해주신 섭리로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가 바라는 대로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구하고 바라는 대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렇다. 나도 마찮가지지만, 서툰 그 길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오직 그만이 아신다. 그렇다면 나와 서툰 그 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지만, 너랑 같이 가면 될 거 같아.”

벌써 해가 중천에 올랐다. 알 수 없는 미지의 하루가 오늘도 색다르게 펼쳐질 것 같다. 이제는 친구되신 성령님과 손잡고 나의 길을 걸어야겠다.

그런데 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두 마리의 여우는 누구일까…

‘우리는 길 밖에 서서 바라보며 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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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가족에게 휘둘린다
비에나 패러온 지음, 문희경 옮김 / 김영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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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비엔나 패러온 작가는 15년 넘는 시간 동안 결혼 및 가족 치료 전문가로 수백 명의 내담자를 통해 어린 시절 과거를 회상시켜 고통과 상처를 다시 입히는 작업이 아닌, 잠시 그 고착화된 패턴에서 벗어나 자신의 근원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문제를 파악하고 함께 치유의 과정인 로드맵을 제시한다.

꺼내고 싶지 않고, 들키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어릴 적 상처가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데 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패턴은 깨트려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목적이 누군가를 탓하고 비난만 하지 않고, 단지 잘못된 습성을 바로잡고 이미 일어났던 과거의 상처를 없었던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인정하고 각자의 상처에 이름을 붙혀 탐색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

다시말해, 가족의 불화의 뿌리는 세대를 거듭해 이어지고 있으며 산불이 모든 것을 태우듯 재앙과 같이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에 시급히 위험한 불장난의 불을 꺼야 한다고 한다.

📌 책 속으로
결혼을 앞둔 나타샤라는 한 여성이 있다. 곧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왜인지 배우자에 대한 100% 확신과 신뢰가 가지를 않는다. 주변 사람은 그를 칭찬하며 이 만한 사람은 없다며, 말을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마음에는 남모르는 불안감만 앞선다. 이 내담자는 작가를 찾게 되고 곧이어 상담이 시작된다.
비엔나 패러온은 심리치료 중 갑자기 어릴 적 가정사 이야기를 해보라고 한다. 그러나 당황한 나타샤는 머뭇거리다 말문을 연다. 어릴적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그의 가정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어느 날 나타샤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아버지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비밀을 지켜달라며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에게도 말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어린 나타샤는 가정의 화목을 위해 지금까지 이 사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도 가정을 꾸릴 생각을 하니 사랑하는 이 사람 또한 어떠한 과거와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몰라 불안해 했던것이다. 이와같이 원가족에서의 모든 역할은 하나로 묶여져 있으며 또 다른 가족을 형성하는데 크나큰 영향을 준다. 원가족의 구성원을 지켜내느랴 홀로 그 고통과 슬픔 그리고 상실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나타샤. 나타샤에게는 상실의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 불화의 연속성
상처는 치유되지 안고 해결되지 않으면 과거의 삶이 오늘의 삶을 지배하며 또한, 미래의 삶까지도 위험해진다. 이를 불화의 연속성이라 한다.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있어. 나만 참고 나만 모르는척 하면 돼 이것이 아니다. 그러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의 상처는 골이 깊어져 또 하나의 원가족을 형성 했을 때 그 상처는 어떤 모양으로든 나타나게 된다. 수면 아래 깊숙이 있는 가족의 근원의 이야기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상처 들어내기
또 시작되었다. 눈물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나 또한 원가족의 상처가 있다. 그러나 이 상처는 하나님의 말씀과 삶의 경험으로 치유 받았다 생각이 들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눈물샘이 자극 되었다. 나의 근원 치유 연습을 위해 미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 겠다. 그리고 한국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모 삼촌에게도 전화를 해서 나의 문제를 해결 받고 싶다. 상처를 들어내는 작업은 쉽지만은 않다. 칼을 대는 작업은 고통과 눈물의 시간이다. 그러나 무조건 덮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아니다. 덮으면 덮을수록 더 큰 염증으로 마음의 병은 더 썩어들어갈 것이다. 상처를 사람 앞에 들어내기 어렵다면 먼저는 하나님께 그 상처를 꺼내어야 한다. 현재, 나는 무슨 상황에 예민하고 반응하는지를 잘 체크하여 위험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 대처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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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가족에게 휘둘린다
비에나 패러온 지음, 문희경 옮김 / 김영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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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비엔나 패러온 작가는 15년 넘는 시간 동안 결혼 및 가족 치료 전문가로 수백 명의 내담자를 통해 어린 시절 과거를 회상시켜 고통과 상처를 다시 입히는 작업이 아닌, 잠시 그 고착화된 패턴에서 벗어나 자신의 근원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문제를 파악하고 함께 치유의 과정인 로드맵을 제시한다.

꺼내고 싶지 않고, 들키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어릴 적 상처가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데 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패턴은 깨트려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목적이 누군가를 탓하고 비난만 하지 않고, 단지 잘못된 습성을 바로잡고 이미 일어났던 과거의 상처를 없었던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인정하고 각자의 상처에 이름을 붙혀 탐색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

다시말해, 가족의 불화의 뿌리는 세대를 거듭해 이어지고 있으며 산불이 모든 것을 태우듯 재앙과 같이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에 시급히 위험한 불장난의 불을 꺼야 한다고 한다.



📌 책 속으로
결혼을 앞둔 나타샤라는 한 여성이 있다. 곧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왜인지 배우자에 대한 100% 확신과 신뢰가 가지를 않는다. 주변 사람은 그를 칭찬하며 이 만한 사람은 없다며, 말을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마음에는 남모르는 불안감만 앞선다. 이 내담자는 작가를 찾게 되고 곧이어 상담이 시작된다.
비엔나 패러온은 심리치료 중 갑자기 어릴 적 가정사 이야기를 해보라고 한다. 그러나 당황한 나타샤는 머뭇거리다 말문을 연다. 어릴적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그의 가정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어느 날 나타샤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아버지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비밀을 지켜달라며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에게도 말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어린 나타샤는 가정의 화목을 위해 지금까지 이 사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도 가정을 꾸릴 생각을 하니 사랑하는 이 사람 또한 어떠한 과거와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몰라 불안해 했던것이다. 이와같이 원가족에서의 모든 역할은 하나로 묶여져 있으며 또 다른 가족을 형성하는데 크나큰 영향을 준다. 원가족의 구성원을 지켜내느랴 홀로 그 고통과 슬픔 그리고 상실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나타샤. 나타샤에게는 상실의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 불화의 연속성
상처는 치유되지 안고 해결되지 않으면 과거의 삶이 오늘의 삶을 지배하며 또한, 미래의 삶까지도 위험해진다. 이를 불화의 연속성이라 한다.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있어. 나만 참고 나만 모르는척 하면 돼 이것이 아니다. 그러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의 상처는 골이 깊어져 또 하나의 원가족을 형성 했을 때 그 상처는 어떤 모양으로든 나타나게 된다. 수면 아래 깊숙이 있는 가족의 근원의 이야기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상처 들어내기
또 시작되었다. 눈물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나 또한 원가족의 상처가 있다. 그러나 이 상처는 하나님의 말씀과 삶의 경험으로 치유 받았다 생각이 들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눈물샘이 자극 되었다.

나의 근원 치유 연습을 위해 미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 겠다. 그리고 한국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모 삼촌에게도 전화를 해서 나의 문제를 해결 받고 싶다.
상처를 들어내는 작업은 쉽지만은 않다. 칼을 대는 작업은 고통과 눈물의 시간이다. 그러나 무조건 덮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아니다. 덮으면 덮을수록 더 큰 염증으로 마음의 병은 더 썩어들어갈 것이다. 상처를 사람 앞에 들어내기 어렵다면 먼저는 하나님께 그 상처를 꺼내어야 한다. 그리고 믿을만한 나의 가족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든 예민하게 반응하는 행동은 신호가 왔다는 것이다. 현재, 나는 무슨 상황에 예민하고 반응하는지를 잘 체크하여 위험한 상황에 잘 대처하는 방법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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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조각들 라임 청소년 문학 66
샌디 스타크-맥기니스 지음, 최효은 옮김 / 라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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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 누구도 원치않는 알츠하이머의 병으로 인한 상실감
- 열두 살 나이 소녀의 엄마의 기억을 찾기위한 여정
- 연필은 알지만 그 쓰임의 용도를 모르는 엄마를 향한 애끌는 사랑의 분노
- 엄마의 부서진 기억을 찾아야 한다. 그것도 아빠 몰래.


📌 무서운 병 알츠하이머
어릴 적 엄마 아빠와 함께했던 장소를 바라보는 캐시와 아빠의 기억은 같지만, 엄마는 그 추억의 장소를 기억 못 한다. 먼 산만 바라볼 뿐 사랑하는 딸 캐시의 이름도 기억 못 한다. 예나 지금이나 캐시의 엄마, 아빠의 아내가 분명한데 엄마의 기억은 산산이 조각이 나서 전혀 기억을 못 한다.

불과 몇 달 전 알츠하이머의 진단을 받았을 때만 해도 엄마의 기억상실이 이토록 빨리 진행될 줄은 몰랐다. 엄마의 기억이 더 잘게 부서지기 전에 그 기억의 조각을 모아야 한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딸 캐시의 이름을 한 번만이라도 불러주는 것이다.

📌 아빠의 걱정, 캐시의 걱정
엄마의 잃어버린 기억으로 아빠의 걱정은 남들이 엄마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볼까 엄마를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철저히 보호하고 감시한다. 그리고 엄마를 시설로 보내고자 한다. 그러나 어린 캐시는 엄마와 함께할 수 없는 시간이 점점 다가옴을 느끼며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다. 캐시는 슬픔에 지배당하지 않으려, 친구 베일리의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단지 일시적인 건망증이라고 믿고 싶지만, 캐시의 걱정은 태산처럼 자꾸 커져만 간다.
고작 열두 살의 어린 캐시는 무리를 해서라도 엄마의 기억을 찾아주고자 아빠에게 거짓말을 하고 엄마의 버킷 리스트인 돌고래와 수영하기를 실천하기 위해 엄마와 단 둘만이 여행을 떠난다.


📌 1 ➗ 100 ⚌ 0.01
1이라는 숫자를 100으로 나눈다면 정답은 0.01이다. 숫자는 끝없이 숫자가 정한 수대로 나뉘고 쪼갤 수 있다. 그렇다면 기억은….
만약, 기억의 조각을 이미지로 분해해서 머릿속 세포에 넣는다면 아주 작은 틈 사이로 그 조각들이 스며들어 작은 그 무엇이라도 기억하지 않을까.
그렇다. 숫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은 왜 점점 사라져야 할까.
어릴 적 수영 선수였던 엄마의 머릿속 기억은 잊혀가고 있지만, 몸은 기억하지 않을까. 엄마의 버킷 리스트인 돌고래와 수영하기를 실천하고자 캐시는 숫자가 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가슴에 품고 아빠도 모르게 집과 가까운 아쿠아틱 파크로 엄마와 여행을 조용히 떠난다.



📌 나의 기억의 조각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나 또한 무언가를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단지 건망증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스스로만 아는 자괴감으로 홀로 마음을 쓸어내릴 때가 많다. 이 나이가 되면, 다 그렇지. 라고 스스로를 위로를 한다고는 하지만 나 혼자만의 통제가 안 되고 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그 누군가는 분명 가족이 될 것이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육신의 한계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 나의 기억이 이제는 조금씩 금이 가고 있는 듯 하다. 처음에는 웃으며 건망증이라 생각하곤 했으나 캐시를 생각하면서 조금 마음이 아파 왔다. 그래서 나는 이 금이 더 벌어지기 전에 최대한 책을 많이 잃고 또 이제는 필사 또한 해보려 한다. 책이 주는 위로와 평안 그리고 자극제가 참으로 좋다.
나의 기억이 더 금이 가기 전에 책으로 그 틈새를 메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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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소로 - 일하고, 돈 벌고, 삶을 꾸려 가는 이들을 위한 철학
존 캐그.조너선 반 벨 지음, 이다희 옮김 / 푸른숲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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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데이비드 소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먼저 월든의 작가 헨리데이비드 소로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 같다. 소로는 1817년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나 1837년 하버드 대학을 졸업 후 고향에서 잠시 교편을 생활을 했으나, 학생을 처벌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그 후 형 존 소로와 함께 진보적인 학교를 운영했으나 형의 건강 악화로 학교 운영은 짧은 시간에 문을 닫게 된다. 그 후 1845년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 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2년간 하면서 그 유명한 <월든>을 집필한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삶을 의도적으로 살기 위해서였다. 말하자면, 삶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마주 대하고서 삶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고 싶었고, 또 죽게 되었을 때 내가 헛되게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을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렇게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아주 불가피하지 않은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깊이 살기를 원했고, 삶의 모든 골수를 빨아 마시고 싶었다. 삶이 아닌 것을 모두 몰아내기 위해 강인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기를 원했다.
<월든 p 112>

소로는 2년간 월든 호숫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연과 함께 삶의 진리를 찾고 깨닫는다. 그리고 1846년 그 유명한 <월든>을 집필하게된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다 폐결핵으로 45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소로의 일터
소로의 짧은 인생 중 홀로 숲속에서의 생활은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낸 그 또한 삶의 노동자였다. 숲속에서의 생활이라고 그는 한량처럼 지내진 않았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하루 하루를 맞이하며 그 또한 먹고는 살아야 했기에 그도 매일 출근길에 오르듯 삶의 노동자처럼 일을 했다.

다시 말해 소로의 일터는 숲속이었으며, 그곳은 단지 사회로부터 격리된 장소이며 사회의 관습과 전통적 정치 세력에 대항하는 그만의 일터였다.

치열한 삶의 전쟁터. 그는 진정한 일의 의미를 알았기에 짧은 인생이었지만 진정한 삶을 살아낸 우리의 또다른 삶의 노동자이다.

누군가 정해놓은 출퇴근이 진정 내가 원하고 바라는 일터일까. 우리가 피땀 흘려 일하는 그 시간, 그 영혼, 그 삶도, 그 어떤 것도 희생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루 하루 죽어가고 있으니 의미 없는 출퇴근의 나날 속에서 절망하면서 작은 일터에 목숨을 걸지 말고, 한 줄기의 빛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라고 따뜻한 위로와 뜨거운 용기를 이 책을 통해 전해준다.

📌 나의 일터
현대사회는 재물을 모으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의미 없이 출퇴근하는 우리의 일상이 나의 삶을 좀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일터의 생활에 잠시 쉼표를 찍고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은 짧고 언젠가는 천국 본향을 입성한다. 그런데 뭐가 그리도 급한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빨리 빨리 빠르게 움직인다.

📌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은 ‘쉼표’란 단어가 자꾸 마음에 와 닿는다. 나의 일터에, 나의 신앙생활에 그리고 나의 공동체 안에 삶의 쉼표를 잠시 찍고, 일하고 돈을 벌고 알지도 알 수도 없는 그 무언바에 쫒기듯 달려가는 삶이 아닌 진정한 나의 일터, 나만을 위한 아름다운 삶의 정원을 다시한번 가꾸어 본다.

“일의 의미를 잃므년 삶은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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