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 서당 10 - 조선시대 순종편 맹꽁이 서당 10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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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이 맹꽁이 서당10이라는 책을 읽고 을미사변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을미사변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암튼 알아보겠습니다. 

을미사변 : 갑오개혁을 통하여 깊숙이 조선 내정에 관여하게 된 일본은 청일전쟁에 승리한 뒤 박영효()·김홍집()을 중심으로 한 친일내각을 만들어 세력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이때 프랑스·러시아·독일 등 3국은 일본의 대륙침략 저지를 위해,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이 차지한 랴오둥반도[]를 청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한, 이른바 '삼국간섭'으로 일본의 세력확장에 제동을 걸었다. 그동안 일본의 강압하에 내정개혁을 추진한 조선정부는, 러시아공사 K.베베르와 제휴하고 친일세력의 완전 제거를 위하여, 1895년 9월 6일 왕비시해 음모혐의로 전 내무대신 박영효에 대해 체포령을 내려 정계에서 축출하였다.

이미 8월에 민영환()을 주미전권공사(使)로 등용한 동시에, 친일계인 어윤중()·김가진() 등을 면직시키고 이범진()·이완용() 등의 친러파를 기용하여, 제3차 김홍집내각이 성립되어, 친미·친러세력이 우세하였다. 

아하! 을미사변이 바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사주로 일본국과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이였구나! 역시 어디서 들었다고 했다.. 역시 책의 어딘가에서 알고 있었어..

더구나 주한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가 조선정부에 약속한 증여금 300만 원을 일본정부가 제공하지 않자, 조선정계에서는 배일세력이 증가하였다. 이에 일본측은 이노우에 대신 무인 출신 미우라를 주한일본공사로 파견하였다. 조선정부는 일본의 강압에 따라 제정한 신제도를 구제도로 복구하려고, 일본인 교관이 훈련시킨 2개 대대의 훈련이 해산하고자 하였다. 이에 대하여 미우라는 명성황후시해계획을 세우고, 1895년 10월 2일 하수인으로서 한성신보사()에 있는 낭인()을 이용하고자 사장 아다치[]를 공사관으로 불러 6,000원의 거사자금을 주고 왕비시해의 전위대로 삼아, 공덕리() 아소정()에 있는 흥선대원군을 궁중으로 호위하는 일을 담당시켰다. 그 외 일본군수비대와 일본인 거류지 담당경찰관 및 친일조선인까지 동원할 계획을 세우고, 훈련대의 우범선()·이두황()·이진호() 등 3대대장과 전 군부협판() 이주회()를 포섭하였다.

한편 정부에서는 군부대신 안경수()를 일본공사관에 보내어 훈련대해산과무장해제, 민영준(駿)의 궁내부대신 임명을 통고하였다. 일본은 상황이 급변함을 직감하고 명성황후 시해계획을 10월 8일 새벽으로 결행하였다. 흥선대원군을 앞세운 일본인 자객들은, 서대문을 거쳐 우범선·이두황이 지휘한 조선 훈련대와 합류하여 광화문을 통과하였다.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과 군부대신 안경수가 1개 중대의 시위대 병력으로, 이들의 대궐 침범을 제지하려다 충돌이 일어났다.

흉도()들은 궁내부대신 이경직()과 홍계훈을 살해한 다음, 이어서 왕비의 침실인 옥호루()에 난입하여 왕비를 살해하고, 시체에 석유를 뿌려 불사른 뒤 뒷산에 묻었다. 곧 새로 유길준()·서광범()·정병하()·김종한·권형진() 등 친일파를 중심으로, 제4차 김홍집내각을 수립하였다. 명성황후시해 현장에는 고종·황태자 및 미국인 교관 다이, 러시아인 기사 사바틴, 그외 많은 조선인이 있어 진상을 낱낱이 목격하여, 사건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자세히 알려졌다.

이에 구미열강이 강경한 태도로 일본인의 사건 관여사실을 주장하고 나서자, 일본은 이의 처리방안으로서 미우라를 해임, 고무라[]를 판리공사(使)로 임명하였다. 한편 미우라 등 관계자 48명을 히로시마[] 감옥에 구치하고, 형식적으로 관련혐의자에 대한 취조를 하였으며, 결국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전원석방시켰다. 결국 을미사변은 항일의병활동의 원인과 아관파천()의 계기가 되어, 한국은 러시아의 보호국과 같은 지위로 떨어졌고, 일본의 식민지화계획에 차질을 가져왔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아직 잘 알지 못했던 을미사변을 거의 다 알아서 기쁘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읽은 다음에 쓰면 읽었다가 잘 알지 못했던 것을 쓰다가 알게 되어서 기쁘다. 정말로 기쁘다. 나중에도 이런 한국사를 읽고 많이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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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 9 - 조선시대 헌종-고종편 맹꽁이 서당 9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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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이 맹꽁이 서당9란 책을 읽고 운요호 사건과 흥성 대원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운요호 사건을 알아보겠습니다. 

운요호 사건 : 1875년 9월 일본의 군함 운요호(雲揚號<운양호>)가 강화해협에 불법으로 침입한 사건입니다. 혹은 '강화도사건'이라고도 합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통일 국가가 된 일본은 한반도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흥선 대원군이 물러나자, 명성황후 일파는 쇄국 정치를 버리고 개혁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흥선 대원군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 쇄국 정책이 강화되리라 보고 대원군이 세력을 회복하기 전에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키려 했습니다. 

1875년 9월 20일 강화도에 운요호를 정박하고 초지진 포대로 침입했습니다. 일본군은 포격과 약탈, 살인, 방화를 자행했습니다. 게다가 포격전의 책임이 조선에 있다고 주장하며 개항을 요구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과 일본 간에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으며 강제적이 문호 개방이 이루어졌습니다. 

아하! 운요호 사건이 이 책을 읽고 있었을때 무엇인가 했는데, 지금 읽고 써보니까 운요호 사건이 1875년 9월 일본의 군함 운요호가 강화해협에 불법으로 침입한 사건이었구나, 아니만 강화도사건이라고도 했었다니.... 대단하구나,, 책의 힘이 이거였군, 그럼 흥선 대원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흥선대원군 : 이름은 이하응()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시백(). 호는 석파()이며. 시호는 헌의()이다. 영조의 5대손()이며 고종의 아버지이다. 1843년(헌종 9) 흥선군()에 봉해지고, 1846년 수릉천장도감()의 대존관()이 된 후 종친부 유사당상()·도총관() 등 한직()을 지내면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밑에서 불우한 생활을 하였다.

왕족에 대한 안동김씨의 감시가 심하자 보신책()으로 불량배와 어울려 파락호() 행세를 하여 궁도령()이라는 비칭()으로까지 불리면서 안동김씨의 감시를 피하는 한편, 철종이 후사()가 없이 병약해지자 조대비()에 접근하여 둘째 아들 명복(;고종의 아명)을 후계자로 삼을 것을 허락받았다.

1863년(철종 14) 철종이 승하하고 조대비()에 의해 고종이 즉위하자 대원군에 봉해지고 어린 고종의 섭정이 되었다. 대권을 잡자 안동김씨의 주류()를 숙청하고 당파를 초월하여 인재를 등용하였으며, 부패관리를 적발하여 파직시켰다. 47개 서원()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서원을 철폐하고, 국가재정의 낭비와 당쟁의 요인을 없앴으며, 《육전조례()》 《대전회통()》 등을 간행하여 법률제도를 확립함으로써 중앙집권적인 정치 기강을 수립하였다.

비변사()를 폐지하고 의정부()와 삼군부()를 두어 행정권과 군사권을 분리시켰으며, 관복()과 서민들의 의복제도를 개량하고 사치와 낭비를 억제하는 한편, 세제()를 개혁하여 귀족과 상민()의 차별 없이 세금을 징수하였으며, 조세()의 운반과정에서 조작되는 지방관들의 부정을 뿌리뽑기 위하여 사창()을 세움으로써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 민생이 다소 안정되고 국고()도 충실해졌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운요호 사건이 강화해협에 불법으로 침입한 사건인것과, 강화도 사건이 운요호 사건이라는 것도 알았고,흥성 대원군은 반만 썼지만 흥선 대원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서 기쁘다. 나중에 흥선대원군을 마무리하겠습니다.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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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가욤 2011-10-05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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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 8 - 조선시대 순조편 맹꽁이 서당 8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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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어제 이 맹꽁이 서당8 인 책을 읽고 이 책에서 나오는 역사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먼저 항우라는 사람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항우 : 중국 진나라의 우명한 무장입니다. BC209년 진승, 오광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봉기하여 세력을 모으게 됩니다. 후에 유방과 힘을 합쳐 진나라 왕을 죽이고 진나라를 멸합니다. 자신을 서초의 패왕(覇王)이라 자칭하고 유방을 비롯해서 18며의 제후를 왕으로 봉합니다. 

그럼 항우가 사람이라는 거네... 그렇구나. 나는 이 책을 읽다가 항우가 나왔었는데, 처음에 사람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읽고 글을 쓰니까 항우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 그 다음은 초,한의 싸움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초,한의 싸움 : BC206녀 한왕(漢王)으로 봉해진 데 불만을 품은 유방이 반기를 들고 항우와 패권을 다투었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항우가 우세했지만 재략이 부족하고 유능한 부하를 몰라보았으므로 차츰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이후 BC203년 천하를 유방과 나구게 되지만 유방의 기습 공격으로 포위되었고, 오강으로 피신하지만 운명이 다한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자살하였습니다. 힘만 세고 지혜가 없는 사람을 항우에 빗대어 말하기도 합니다. 

아하! 초, 한의 싸움에서 힘만 세고 지혜가 없는 사람을 항우에 빗대어서 말하였구나! 그럼 김병연이라는 사람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병연 : 조선 후기 시인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성심(), 호 난고()이다. 속칭 김삿갓 혹은 김립()이라고도 부른다. 아버지는 김안근()이며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使)로 있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기 때문에 연좌제의 의해 집안이 망하였다. 당시 6세였던 그는 하인 김성수()의 구원을 받아 형 병하()와 함께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후에 사면을 받고 과거에 응시하여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급제하였다.

그러나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전국을 방랑하면서 각지에 즉흥시를 남겼는데 그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아 민중시인으로도 불린다.

아들 익균()이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했으나 계속 방랑하다가 전라도 동복(:전남 화순)에서 객사하였다. 유해는 영월군 태백산 기슭에 있으며, 1978년 그의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에 시비를 세우고, 1987년에는 영월에 시비가 세워졌다. 작품으로 《김립시집()》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항우라는 사람이 나쁘다는 것을 알았고 초, 한에 싸움에서 힘만 세고 지혜가 없는 사람은 항우에 빗대어서 나타낸 것도 알았고, 마지막으로 김병연이 별명이 김삿갓또는 김립으로 불렸다는 것도 알아서 기쁘다. 역시 한국사는 사회가 딸리는 나한테 도움이 된다고 차차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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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만화 교과서 명언편 - 초등학교 선생님이 직접 쓴 똑똑한 만화 교과서
최미연 지음, 이동철 그림 / 대교출판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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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이 '똑똑한 만화 교과서 명언편'을 읽고 위대하고 예술적인 사람들이 가장 인상깊고 감동받고, 또 깨달음이 많은 위대한 사람들의 명언들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오늘 루스벨트라는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루스벨트는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이고, 미국 역사상 유일한 장애인 대통령이자, 네번이나 연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분입니다.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루스벨트는 변호사로 활동하던 1920년,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그러나 패배의 쓴잔을 마신데 이어 서른 아홉의 나이에 갑자기 소아마비에 걸리고 말았지요. 하지만 그는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루스벨트가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이 책을 읽고 루스벨트가 누구인지 알게되었다.그 다음글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정치권에 돌아간 그는 피나는 노력 끝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어요. 대통령에 당선된 루스벨트는 극심한 경제 공황을 해결하는 한편, 세게대저이 치러지는 동안 국제 질서를 미국 주도로 유지했지요. 그는 비록 몸은 불편했지만 국민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으며, 미국 역사상 누구보다 뛰어난 지도자로 국민들에게 칭송받고 있습니다. 

아하! 루스벨트가 미국 역사상 누구보다 뛰어난 지도자로 국민들에게 칭송받고 있었었구나! 루스벨트는 자기가 아파도 대통령이 되다니 역시 대통령다워. 그럼 루스벨트가 남긴 명언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정지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행진이다 

오늘 하루 이 시간은 당신의 것이다. 하루를 착한 일로 장식하라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며 두려움 이외에는 없다 

위대한 사람이 되는 일은 멋진 일이다. 그러나 참 인간이 되는 것은 더욱 멋진 일이다 

인간은 운명의 포로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에 딸린 포로이다 

인생이 주는 최고의 상은 가치 있는 일에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루스벨트가 누구인지 알았고, 루스벨트가 남긴 명언을 알아서 기쁘다. 나중에 이런 책들을 읽고 쓰면 속담이나 명언이 똑 내가 본받을 것도 있어 쓰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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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10 -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10
이현세 그림, 유경원. 권민정 글, 한국역사연구회 감수 / 녹색지팡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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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이 책을 읽고 제암리 학살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암리 학살 사건 : 1919년 4월 15일 오후 2시경 아리타 도시오[] 일본 육군 중위가 이끄는 일단의 일본군경이 앞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제암리에 도착해서 마을 주민 약 30명을 제암리교회에 모이게 하였다. 주민들이 교회당에 모이자 아리타는 출입문과 창문을 모두 잠그게 하고 집중사격을 명령하였다. 그때 한 부인이 어린 아기를 창 밖으로 내어놓으면서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일본군경은 그 아이마저 찔러죽였다.

이같은 학살을 저지른 일제는 증거인멸을 위해 교회당에 불을 질렀으며, 아직 죽지 않은 주민들이 아우성을 치며 밖으로 나오려고 하였으나 모두 불에 타 죽었다. 이때 교회당 안에서 죽은 사람이 23명, 뜰에서 죽은 사람이 6명이었다.

이것으로도 부족해서 일제는 인근의 교회건물과 민가 등 31호에 불을 질러 또다시 살상자를 내었다. 이와 같은 일제의 만행은 선교사들의 분노를 사게 하여 스코필드는 현장으로 달려가 그 생생한 모습을 사진에 담아 '수원에서의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미국에 보내어 여론화하였다. 1982년 제암리학살현장의 유적은 사적 제299호로 지정되었다.
 

아하! 그렇게 되어서 제암리가 학살을 당했구나! 불상하네...... 그럼 정부 청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부중앙청사 :중앙행정기관은 구() 중앙청(과거 조선총독부 건물, 이후 1983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1995년 철거됨)을 중심으로 사무공간을 사용하였으나, 정부기능의 다원화로 행정기구가 확대됨에 따라 청사부족으로 말미암아 일반인 소유의 건물을 임차하여 사용하고 자체 청사 보유기관도 노후되어, 이에 각 부처를 집중수용함으로써 행정능률을 높이고 국민의 이용편의를 증진하고자 정부청사 건립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본관은 1967년 착공하여 1970년 완공하였으며, 지하 3층, 지상 19층, 대지면적 2만 396㎡, 최고높이 84m의 철골철근 콘크리트 건물로서 총공사비 43억 8950만 원이 소요되었다.

기초 공사는 우물통식 콘크리트관을 지하 암반층까지 도달시킨 후 내부를 콘크리트로 채워 암반과 기초를 일체화하는 케이슨(Cason)공법을 사용하였고, 기둥은 실내공간에 기둥이 없는 내력벽 구조로 슬립폼(Slip Form)공법 사용하였으며, 평면은 코아(Core)시스템 사용 및 이동식 경량칸막이 시공을 하였다.

정부중앙청사 본관에는 주로 정무 부처들이 입주해 있는데 입주 부서는 국무총리 집무실을 비롯하여, 국무총리실 소속기관인  국무조정실(9,10층), 법제처(15층), 청소년보호위원회(3층)와 통일부(4∼5층), 행정자치부(11∼14층), 교육과학기술부(15∼18층) 등이다.
2002년에 완공된 별관은 지하 6층, 지상 18층의 건물로 대지 면적 7,369㎡ 이다. 별관에는 외교통상부가 입주해 있다.
정부청사는 정부중앙청사 이외에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에 있는 정부과천청사와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에 있는 정부대전청사가 있으며, 정부청사관리소가 이들을 관리하고 있다.

그 동안 정부세종로청사로 불리어왔으나 2001년 9월 1일 명칭을 정부중앙청사로 개칭하였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77-6번지에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제암리 학살 사건과 정부중앙 청사를 알아서기쁘다. 그리고 둘다 모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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