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 서당 9 - 조선시대 헌종-고종편 맹꽁이 서당 9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이 맹꽁이 서당9란 책을 읽고 운요호 사건과 흥성 대원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운요호 사건을 알아보겠습니다. 

운요호 사건 : 1875년 9월 일본의 군함 운요호(雲揚號<운양호>)가 강화해협에 불법으로 침입한 사건입니다. 혹은 '강화도사건'이라고도 합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통일 국가가 된 일본은 한반도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흥선 대원군이 물러나자, 명성황후 일파는 쇄국 정치를 버리고 개혁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흥선 대원군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 쇄국 정책이 강화되리라 보고 대원군이 세력을 회복하기 전에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키려 했습니다. 

1875년 9월 20일 강화도에 운요호를 정박하고 초지진 포대로 침입했습니다. 일본군은 포격과 약탈, 살인, 방화를 자행했습니다. 게다가 포격전의 책임이 조선에 있다고 주장하며 개항을 요구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과 일본 간에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으며 강제적이 문호 개방이 이루어졌습니다. 

아하! 운요호 사건이 이 책을 읽고 있었을때 무엇인가 했는데, 지금 읽고 써보니까 운요호 사건이 1875년 9월 일본의 군함 운요호가 강화해협에 불법으로 침입한 사건이었구나, 아니만 강화도사건이라고도 했었다니.... 대단하구나,, 책의 힘이 이거였군, 그럼 흥선 대원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흥선대원군 : 이름은 이하응()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시백(). 호는 석파()이며. 시호는 헌의()이다. 영조의 5대손()이며 고종의 아버지이다. 1843년(헌종 9) 흥선군()에 봉해지고, 1846년 수릉천장도감()의 대존관()이 된 후 종친부 유사당상()·도총관() 등 한직()을 지내면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밑에서 불우한 생활을 하였다.

왕족에 대한 안동김씨의 감시가 심하자 보신책()으로 불량배와 어울려 파락호() 행세를 하여 궁도령()이라는 비칭()으로까지 불리면서 안동김씨의 감시를 피하는 한편, 철종이 후사()가 없이 병약해지자 조대비()에 접근하여 둘째 아들 명복(;고종의 아명)을 후계자로 삼을 것을 허락받았다.

1863년(철종 14) 철종이 승하하고 조대비()에 의해 고종이 즉위하자 대원군에 봉해지고 어린 고종의 섭정이 되었다. 대권을 잡자 안동김씨의 주류()를 숙청하고 당파를 초월하여 인재를 등용하였으며, 부패관리를 적발하여 파직시켰다. 47개 서원()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서원을 철폐하고, 국가재정의 낭비와 당쟁의 요인을 없앴으며, 《육전조례()》 《대전회통()》 등을 간행하여 법률제도를 확립함으로써 중앙집권적인 정치 기강을 수립하였다.

비변사()를 폐지하고 의정부()와 삼군부()를 두어 행정권과 군사권을 분리시켰으며, 관복()과 서민들의 의복제도를 개량하고 사치와 낭비를 억제하는 한편, 세제()를 개혁하여 귀족과 상민()의 차별 없이 세금을 징수하였으며, 조세()의 운반과정에서 조작되는 지방관들의 부정을 뿌리뽑기 위하여 사창()을 세움으로써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 민생이 다소 안정되고 국고()도 충실해졌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운요호 사건이 강화해협에 불법으로 침입한 사건인것과, 강화도 사건이 운요호 사건이라는 것도 알았고,흥성 대원군은 반만 썼지만 흥선 대원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서 기쁘다. 나중에 흥선대원군을 마무리하겠습니다.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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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가욤 2011-10-05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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