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10 -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10
이현세 그림, 유경원. 권민정 글, 한국역사연구회 감수 / 녹색지팡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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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이 책을 읽고 제암리 학살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암리 학살 사건 : 1919년 4월 15일 오후 2시경 아리타 도시오[] 일본 육군 중위가 이끄는 일단의 일본군경이 앞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제암리에 도착해서 마을 주민 약 30명을 제암리교회에 모이게 하였다. 주민들이 교회당에 모이자 아리타는 출입문과 창문을 모두 잠그게 하고 집중사격을 명령하였다. 그때 한 부인이 어린 아기를 창 밖으로 내어놓으면서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일본군경은 그 아이마저 찔러죽였다.

이같은 학살을 저지른 일제는 증거인멸을 위해 교회당에 불을 질렀으며, 아직 죽지 않은 주민들이 아우성을 치며 밖으로 나오려고 하였으나 모두 불에 타 죽었다. 이때 교회당 안에서 죽은 사람이 23명, 뜰에서 죽은 사람이 6명이었다.

이것으로도 부족해서 일제는 인근의 교회건물과 민가 등 31호에 불을 질러 또다시 살상자를 내었다. 이와 같은 일제의 만행은 선교사들의 분노를 사게 하여 스코필드는 현장으로 달려가 그 생생한 모습을 사진에 담아 '수원에서의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미국에 보내어 여론화하였다. 1982년 제암리학살현장의 유적은 사적 제299호로 지정되었다.
 

아하! 그렇게 되어서 제암리가 학살을 당했구나! 불상하네...... 그럼 정부 청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부중앙청사 :중앙행정기관은 구() 중앙청(과거 조선총독부 건물, 이후 1983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1995년 철거됨)을 중심으로 사무공간을 사용하였으나, 정부기능의 다원화로 행정기구가 확대됨에 따라 청사부족으로 말미암아 일반인 소유의 건물을 임차하여 사용하고 자체 청사 보유기관도 노후되어, 이에 각 부처를 집중수용함으로써 행정능률을 높이고 국민의 이용편의를 증진하고자 정부청사 건립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본관은 1967년 착공하여 1970년 완공하였으며, 지하 3층, 지상 19층, 대지면적 2만 396㎡, 최고높이 84m의 철골철근 콘크리트 건물로서 총공사비 43억 8950만 원이 소요되었다.

기초 공사는 우물통식 콘크리트관을 지하 암반층까지 도달시킨 후 내부를 콘크리트로 채워 암반과 기초를 일체화하는 케이슨(Cason)공법을 사용하였고, 기둥은 실내공간에 기둥이 없는 내력벽 구조로 슬립폼(Slip Form)공법 사용하였으며, 평면은 코아(Core)시스템 사용 및 이동식 경량칸막이 시공을 하였다.

정부중앙청사 본관에는 주로 정무 부처들이 입주해 있는데 입주 부서는 국무총리 집무실을 비롯하여, 국무총리실 소속기관인  국무조정실(9,10층), 법제처(15층), 청소년보호위원회(3층)와 통일부(4∼5층), 행정자치부(11∼14층), 교육과학기술부(15∼18층) 등이다.
2002년에 완공된 별관은 지하 6층, 지상 18층의 건물로 대지 면적 7,369㎡ 이다. 별관에는 외교통상부가 입주해 있다.
정부청사는 정부중앙청사 이외에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에 있는 정부과천청사와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에 있는 정부대전청사가 있으며, 정부청사관리소가 이들을 관리하고 있다.

그 동안 정부세종로청사로 불리어왔으나 2001년 9월 1일 명칭을 정부중앙청사로 개칭하였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77-6번지에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제암리 학살 사건과 정부중앙 청사를 알아서기쁘다. 그리고 둘다 모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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