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날아올라, 빌리 엘리어트

어려운 시대 상황과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자식을 훌륭한 무용수로 키워낸 감동적인 영화인만큼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제목을 지었을 수도 있을 법한데 이 영화, 참 멋이 없다. 우리 사회로 빗대자면 영화제목이 '김철수'인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는 생각은 '제목 참 잘 지었다' 하는 것이었다. 권투 글로브를 벗어던지고 발레 슈즈를 집어든 소년, 빌리 엘리어트. 그 안에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것이 이 조그만 소년에게 다 담겨 있으니 빌리 엘리어트라는 영화 제목은 참, 있는 그대로다.

"태어나자마자 난 춤을 췄어요. 죽을 때까지 춤을 출거에요" 형 몰래 조심스럽게 올려놓은 LP판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빌리는 그렇게 날아오르고 춤을 춘다. 기력이 노쇠한 할머니와 탄광촌에서 일하다 노조 파업에 한창인 아버지와 형과 함께 한 집에서 살아가는 빌리. 할아버지를 거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권투 글로브를 끼고 권투 연습장에서 거부할 새도 없이 당연하게 권투를 배워왔다. 하지만 익숙한 권투 연습장에서의 낯선 발레 풍경은 갑작스레, 그리고 서서히 빌리의 가슴속을 파고든다. 분명 어린 소년에게는 낯설기만한 발레였을테지만 어쩐지 빌리에게 발레는 권투보다도 더 익숙하게 다가온다. 숨겨져 있던 발레 그리고 춤에 대한 열정을 온몸으로 깨달아가는 빌리에게 발레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어려운 가정형편도, 삐걱대는 가족관계... 그 모든 것은 발레 속에서 사라져갔지만, 언젠가 빌리는 깨닫게 되었을까. 자신이 날아오를 수 있었던 것은 사라져간 그것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2. 처음이기에 어색할 수밖에 없는

빌리를 둘러싼 관계들은 서로의 진심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어쩐지 조금은 어색하다. 탄광촌의 생활을 빌리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는 발레가 전부인 빌리에게 발레고 권투고 모두 집어치우라고 호되게 꾸짖고, 어린 동생을 아끼는 형은 괜히 동생에게 야박하게 대한다. 빌리와 그 가족들이 부닥치게 되는 모든 갈등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 어색함을 드러낼 줄 모르고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그 모두가 다 처음이기 때문이다. 게이인 친구도, 발레 선생님과도 가끔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만 그러한 관계 속에서 서로가 성장한다. 완강하게 반대하는 아버지 앞에서 빌리는 온 진심을 다해 춤을 추고, 게이 친구에게 발레를 가르쳐주고, 선생님께 엄마가 남긴 편지를 보여준다. 결국 가족들은 온 마음을 다해 빌리를 지지하게 된다. 비록 그것이 떠나는 버스 유리창 사이로 간신히 드러내는 진심이라 하더라도, 어찌됐던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런던으로 떠나기 전 "저 떨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빌리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괜찮다, 아들아. 우리 모두 겁내고 있어" 떨고 겁내도,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이들과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의 어색함과 보이지 않는 진심도 이해할 수 있는.


#3. 한 가족의 백조의 호수

또 다시 빌리가 날아오른다. 항상 혼자서 몰래 LP판을 틀어놓고 날아오르던 그 때의 빌 리가 아니라, 이젠 최고의 무용수가 되어 날아오른다. 무용수로서 잠재된 빌리의 능력은 타고난 자기 자신만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건 계란세례를 받으며 탄광촌으로 향하던, 합격 봉투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자신의 가족들이었다. 한 가족이 만들어 낸 백조의 호수를 빌리 엘리어트는 날아오른다. 혼자가 아니라, 자신을 있게한 그 모든 것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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