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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툼 - 대영제국 최후의 모험
마이클 애셔 지음, 최필영 옮김 / 일조각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세계사 교과서에서 이 사진을 한 번 쯤은 봤을 것이다. 이 사진은 영국의 아프리카 종단정책과 프랑스의 횡단정책, 파쇼다 사건에서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흐름에서 등장한다. 그리고 많은 한국의 교과과정이 그렇듯이 이 부분도 그냥 훑고 지나가는 수준에서 다뤄지기 때문에 이 사진에서 왜 저 남자가 전선을 들고 있는지, 왜 총을 매고 등산용 처럼 생긴 헬멧을 쓰고있는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나도 이 시기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 정책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추천마법사에 <카르툼>이라는 책이 떴을 때, 또 알라딘이 내가 관심도 없는 책을 추천하는구나 생각했다. 게다가 가격도 에누리없는 3만원. 표지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고, 번역자는 군인 출신이라니. 솔직히 나는 군인 출신이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한 책을 불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목차를 천천히 읽어보고 나니 약간 생각이 바뀌었다. 알고보니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줄루 전쟁 이야기와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유사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책은 충동구매가 맛이라고, 생각이 바뀐김에 바로 구매해버렸다. 600쪽이 넘는 분량이 약간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일단은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수단의 카르툼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당시 수단의 지배구조는 매우 복잡했는데, 우선 공식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무함마드 알리 시대 이후 주변 지역을 제압한 이집트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물론 영국은 중동지역에 이들의 영향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이때가 바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태양이 가장 높게 떠있던 빅토리아 시대였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에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마흐디가 등장하면서 불안정했던 균형상태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현대 이슬람 극단주의의 원류라고도 볼 수 있는 마흐디는 엄청난 기세로 세력을 넓혀나갔고, 주로 이집트군으로 이뤄진 힉스 원정대를 섬멸한 순간을 정점으로 마흐디는 수단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이 되었다.
수단에는 마흐디를 막을 수 있는 세력이 없었다. 오스만 제국은 이미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지 오래였고, 이집트 역시 힉스 원정군 사태를 통해 자신들의 무기력함을 확인했다. 결국 이 수단을 "안정"시킬 수 있는 세력은 사실상 대영제국 뿐이었다. 그러나 대영제국은 딱히 이익이 되지 않는 수단을 포기하고 싶어했고, 그 작업을 위해 아편전쟁에서 명성을 얻은 고든을 불러들인다. 우여곡절 끝에 수단에 총독으로 부임한 고든은 사전에 자신이 생각했던대로 수단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안정화 시키는 작업에 돌입한다.
이 작업은 대영제국의 군사적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미 수단의 실질적인 지배권은 마흐디에게 넘어가고 있었고, 마흐디군에 가담하지 않은 부족들도 세력균형을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영제국의 군사력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마흐디가 수단을 차지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영제국의 움직임은 너무 더뎠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각의 움직임이 더뎠다. 그렇게 "중국의 영웅" 고든은 점점 수렁에 빠지기 시작했다.
카르툼은 고립되고, 포위되었다. 고든을 구해내라는 국민(과 여왕)들의 요구에 못이긴 영국 행정부가 고든을 구출하기 위해 파견한 고든 구원군은 몇몇 전략적 판단의 실수로 인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야만인이라고 무시했던 마흐디 민병대는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했다. 특히 힉스 원정군에게서 노획한 무기를 지닌 병사들 보다도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베자족 등 냉병기로 무장한 용맹한 전사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의 병사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데다가 놀라운 전투능력까지 지니고 있었고, 거기에다 지휘관인 오스만 디그나의 뛰어난 용병술까지 더해졌다. 이 모든 것들은 카르툼의 종말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고든 구원군이 고전하는 사이에 카르툼에 갇힌 고든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매일마다 내일이면 구원군이 도착한다는 말을 해왔던 그는 지역에서 신뢰를 잃어갔고, 점점 식량도 떨어졌다. 도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만약 고든이 이렇게 결말이 뻔한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건지고자 했다면 마흐디를 인정하고 물러나거나 몰래 도주했어도 됐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고든은 비록 몇 가지 실수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자신의 책무를 저버리거나 비겁자가 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진정한 "영국인"이었다.
하지만 훌륭한 인격과 의지만으로 해결 될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고든 구원군이 고전 끝에 소수의 결사대를 증기선에 태워 카르툼으로 황급히 보냈을 떄는, 더 이상 카르툼에서 방어군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책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인 고든의 모험은 이렇게 끝이 난다. 그리고 이후에 다시 수단에 들어온 키치너가 이끄는 영국군은 이전의 원정군들과는 달리 여러 이점을 안고 싸울수 있었다. 더 진보한 기술, 더 유능한 지휘관, 그리고 예전같이 강하지 않은 적들. 그래서인지 이 책의 후반부는 전반부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지는 감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책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번역도 매끄럽고 내용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래서 끝까지 집중력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고, 읽는데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때,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수단의 마흐디군이 영국군에게 궤멸당하는 장면이 한국사의 동학농민전쟁과 겹쳐져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사건을 단순비교 할 수는 없다. 적어도 동학군이 교리를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고 학대했다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식 제국주의 군대와 구식 원주민 군대의 충돌이라는 구도는 어쩔 수 없이 내게 이런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계속 읽다보면 점점 영국군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실제로 이 책에 제국주의를 옹호하거나, 당시의 영국군을 추켜세우는 서술이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소설 같은 구조 속에서 주인공의 위치에 있는 고든과 영국군에게 심정적인 지지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소감을 간단히 말한다면 이 책의 부제를 인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대영제국의 마지막 모험". 근대와 현대의 과도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련의 사건들은 말 그대로 모험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험난한 오지와 적대적인 원주민, 그 가운데에 있는 "문명인"들. 마치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야기들. 이 책은 역사소설로 읽어도 좋다. 소설같은 역사서로 읽는다면 더욱 좋다. 이렇게 흥미로운 역사서는 흔치 않으니까.
마지막으로, 당신이 중동 현대사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여기에 이슬람 무장조직들의 연원이 직접 설명되어있지는 않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무슬림들이 바로 현대 이슬람 극단주의의 원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