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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다윈 지능
최재천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7월
평점 :
판매중지
전 세계적으로 다윈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과학자도 없을 것이다. 또한 그의 유산인 진화론은 가장 논쟁적인 과학분야이기도 하다. 다윈과 진화론을 혐오하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오해 또는 신념이다. 특히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 두가지 모두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종교는 다윈주의의 오랜 숙적이다. 물론 나같은 무신론자가 보기에는 그런 종교인들의 모습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화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자유 역시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누리는 것과 그들이 과학을 짓밟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더군다나 고의적으로 진화론을 곡해 함으로써 이 사회에 창조론을 관철하려하는 것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교회 안에서 그들만의 경전을 믿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나, 그것을 사회에 강요함으로써 한국을 중세시대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은 문명에 대한 파괴행위와 같다.
하지만, 종교를 가진사람들은 차치 하고서라도고, 종교가 없는 사람들조차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원숭이가 진화해서 인간이 된다는 식의 잘못된 내용은 너무 많이 알려져 있다. 사실 진화론, 정확히 진화생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만물의 영장”으로써 이 세계를 지배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인간이나 그밖의 동물이나 종의 탄생 과정만 보면 크게 다를바 없다는 사실은 신의 자녀라고 믿어왔던 인간들에게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불편한 진실에는 고개를 돌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수많은 신도를 거느린 종교지도자를 비롯해서 다수의 대중은 쉬운 언어(과학적이지 않은)를 사용해서 진화론을 맹렬히 공격한다. 반면, 진화생물학측은 진화론을 이해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지만, 대중은 어려운 말에 쉽게 지친다. 그러던 와중에 도킨스 같이 효율적인 종교킬러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는 다른 과학자들의 신중한 태도와는 달리 종교를 무자비하게 물어 뜯는다. 말 그대로 “오늘만 사는 진화생물학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과학자들도 결국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종교를 가진 대다수의 이웃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진화론을 친절하게 서서히 알려나간다. 나는 이러한 과학자들을 “진화생물학의 몰몬교도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최재천 교수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진화생물학자이고, “진화의 몰몬교도”이기도 하다. 그의 저서 <다윈 지능>은 교양서를 가장한 진화생물학의 전도 팜플렛이다. 이 책은 진화생물학의 중요한 이론들을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감싸고 있다. 그덕분에 이 책의 독자는 가벼운 내용의 당의정으로 쓰디쓴 진화생물학을 섭취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4장 <변이, 변화의 원동력>에 있는 유전자 편집과 관련한 내용이다. 우리는 유전공학의 발전을 떠올리면서 미래의 유토피아를 떠올린다. 불치병이 모두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건강한 신체를 갖고 살 수 있는 사회. 그러나 유전학적 측면에서 이러한 “이상적 상태”가 반드시 좋다고 만은 할 수 없다.
“문제의 소지를 갖고 있는 유전자를 기능적으로 훨씬 우수한 맞춤 유전자로 갈아 끼운 개인은 개선된 것이 분명한데, 이렇게 개선된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 즉 개체군의 상황은 어떤가? 참으로 기막힌 모순이다. 유전자 치환은 개체는 보다 탁월하게 만들어줄지 모르지만 개체군은 더없이 취약한 상황으로 내몰 수 있다. ”
유전자 다양성은 종의 안위를 지키는 장치이다. 만약 어떤 종의 개체들이 모두 비슷한 유전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 종은 외부의 공격에 취약해 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인간에 의해 재배되는 종자들에서 볼 수 있다. 만약 미래에 인간도 작물이나 가축처럼 유리한 유전자만으로 표준적인 인간형을 만들어 낸다면, 인류 역시 그로 미셸 바나나가 겪었던 치명적인 궤멸을 겪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유전자는 한 국가나 사회집단을 넘어서 인류 전체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는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유전자는 커녕 진화에 관한 이야기조차 외면하고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왜 어떤 이들은 백신이 면역력을 없애는 독극물이고, 현대의학은 사기이며, 진화생물학은 반인륜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을 아직도 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다윈 시대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 아닐까? 다윈이 사망한지도 10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다윈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진화생물학의 싸움은 다윈의 후예들이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당신도 다윈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윈의 진화 이론은 이제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교양 지식을 뿐 아니라 첨단 학문 분야의 학자라면 누구나 갖춰야 할 전문 지식이다. 당신의 미래에 다윈이 함께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