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세계대전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6
마이클 하워드 지음, 최파일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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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1차대전을 무시하지 마라

 우리는 대부분 제 2차세계대전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다. MBC 서프라이즈와 같은 각종 TV프로그램, 영화를 통해서 자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1차대전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아마 2차대전에 비해 1차대전이 극적인 요소(나치, 홀로코스트, 전차전 같은)가 적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심의 크기차이와는 별개로, 1차대전이 가지는 의미는 2차대전에 비해 절대 작지 않다. 1차대전은 2차대전의 가능성을 잉태한 사건이었고, 동시에 2차대전의 모습을 보여준 예고편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1차대전과 2차대전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만 사실은 하나의 방향성을 갖는 시리즈물이었다. 그러나 본편에 비해 속편이 너무나도 강렬했던 탓에 본편에 대한 기억은 뇌리에서 잊혀지고, 지금은 속편 만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자 한다. 그렇게 하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1차 세계대전은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가? 전쟁의 역사가 인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가르침은 "어떻게 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는가?”이다. 이 책에서는 전쟁의 원인으로 한 가지 사실을 강조한다. 바로 국민들의 적극적인 전쟁 참여이다. 그리고 이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말 이해하기가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전쟁터에서 가장 많이 죽는 것은 평범한 시민들이고, 전시체제에서 극심한 고난을 요구받는 것 역시 일반인들이다. 그런데 전쟁을 통해 얻을 것은 적고, 잃을 것은 많은 그들이 왜 그렇게 전쟁을 열광적으로 수행했을까? 

50쪽
 -서유럽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부의 선전으로 강화된 대중의 여론은 전쟁에 덜 열성적인 소수의 목소리를 휩쓸어버렸다. 더 후진적이고 교육을 덜 받은 동유럽 사회들에서는 전통적인 봉건적 충성심이 종교 집단의 승인에 더욱 힘을 얻어대중 동원에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98쪽
 -대체 무엇때문에 전쟁이 그토록 장기간 지속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간단한 대답이 하나 있다. 바로 모든 교전국 국민들의 지속적인 지원이다. 그들은 막대한 군사적 손실을 감내했을 뿐 아니라 전쟁 수행에 따른 곤경과 통제를 불평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51쪽
 -그러나 굳이 정부가 나서서 선전으로 국민들을 채찍질할 필요가 없었다. 국민들은 단순한 애국적 의무감에 취해 군에 입대하고 전쟁에 나갔다.

 위에 있는 단 몇 문장 만으로 모든 설명이 끝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민족주의가 한창이던 당시 인민들의 정신은 바짝 마른 짚단과 같았다. 거기에 애국심이라는 불씨가 떨어지자, 그들의 열정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각종 선전물은 상대방을 악의 화신으로, 자신을 정의의 “십자군”으로 묘사했다. 결국 민족주의적 애국심과 종교적 경건함이 합쳐지면서, 국민들 스스로가 지배층들의 전쟁놀음에 희생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자존심을 걸고 한 판 승부를 벌이는 중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1차대전을 단순히 위정자들에 의해 벌어진 비극이라고만 여길 수 없는 이유이다. 결국 전쟁의 책임은 그들 모두에게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박스를 주워서 하루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국가의 GDP나 각종 지표, 정치인들의 이념논쟁에 흥분하고, 계급배반 투표를 행하는 현실. 이것이 21세기 한국도 민족주의와 집단주의가 활개를 치고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도 민족주의가 어떤 파국을 불러왔는지를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닐까? 자신들의 권리보다 민족적 자존심을 더욱 앞세웠던 20세기 초 유럽의 시민들. 노동자들의 삶은 경시하면서 국가지표와 한류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는 21세기 한국. 과연 무엇이 나아진 것일까.
 
 흔히 "두유 노?"라고 일컬어지는 국x, 한류와 K-팝으로 문화영토를 넓히겠다는 모 기업의 광고, 어린이들이 각종 민족주의적 행사와 군사캠프에 노출되는 현실. 개인주의를 혐오하는 한국사회의 지배층은 민족주의를 매개로 대다수의 시민을 통제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민들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것을 자신의 의지라고 믿고 앞장서서 지배층의 의지를 대변할 것이다. 설령 그들이 자신을 기관총 진지 앞으로 밀어 넣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가벼우면서도 깊은 1차세계대전 입문서

 한국에서 1차대전이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원인 중에는 관련 서적들의 불친절함이 가장 클 것이다. 1차세계대전에 관련된 개설서는 우리나라에도 몇 권이 나와있지만, 대체로 분량이 많은 탓에 한 번 읽어보기에는 부담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유서가의 첫단추 시리즈 6번째 <제1차 세계대전>은 의미있는 책이다. 옥스퍼드대 출판부라는 명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책 자체의 내용만 봐도 굉장히 알차다는 것을 느낄수 있다. 게다가 분량도 적고 책의 크기 자체도 작아서, 해당 이슈에 관심은 있으나 책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반가울 것이다. 



**같이 읽으면 좋을 책

 <참호에 갇힌 제1차 세계대전>- 존 엘리스 : 마이클 하워드의 <1차 세계대전>이 거시적인 시각에서 전쟁을 다루었다면, 이 책은 참호 속의 병사 개개인의 시각으로 전쟁을 서술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참호전과 총검돌격에 대한 낭만을 가지게 되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환상을 남김없이 깨뜨리기를 권한다. 개인에게 전쟁은 RTS가 아니라 FPS이고, 우리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라 총 맞고 죽는 엑스트라 2임을 기억하라. (요즘 드라마를 보고 군대에 대한 환상을 갖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 같은데,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살인의 심리학> - 데이브 그로스먼: 전쟁의 사례들을 통해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나약한 지를 보여주는 책. 1차세계대전 파트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위의 책과 마찬가지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뚝딱뚝딱 방아쇠를 당기고, 칼을 휘두르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 묘사인지를 잘 설명해준다.


 <EUROPE> - 브랜든 심스: 위의 두 책과는 반대로 마이클 하워드의 <1차 세계대전>보다 더 거시적인 시각으로 서술되어있는 유럽의 역사. 정치와 외교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1차세계대전 이전부터 형성된 유럽 국가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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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4-06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의식 부재의 바짝 마른 짚단....불씨를 땡기면 타버리고 마는.....은유가 참 재대로네요....하루 점심값도 없는 사람이 상속세를 걱정하는 웃지 못할 비극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