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이르는 붓다의 수행법 2 - 위빠싸나.환.정
무산본각 지음 / 유토피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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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점점 많은 것의 윤곽이 분명해진다. 왜 북방불교가 그랬는가 하는 점 말이다. '혜능'의 불교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았는가. 무산본각님은 진정한 6조가 '신수대사'였다고까지 말한다. 그리고 '보조국사 지눌'을 위빠사나 관점에서 새롭게 인용한다. "깨달았다고 손쉽게 여기는 바로 그 순간이 위험하다"고 말이다. 이 점을 지눌 국사도 지적하셨다. '돈점논쟁'은 그러니까 논점에서 벗어난 일종의 '언론 플레이' 비슷한 것 아니었겠는가.

 
중국 '선'의 신화형성과  근본불교의 왜곡 

무산본각님도 그의 이 책에서 '돈점논쟁'의 허구성을 밝혀낸다. 신회의 '작업'에 의해 6조 혜능이 '높여졌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창작된 얘기들이 염화미소의 '전설'이라 했다. 무산본각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회를 높이 평가하니 좀 이해가지 않는다. 신회는 7조가 되려고 그렇게 애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스승 혜능을 6조로 올려 놓으려 '필사적으로' 애썼다. 이런 '목적'이 작용하여 '염화미소'의 신화 같은 '담론'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애초 '법의 계승'이라는 것 자체가 불교의 기본 정신에 비추어 말이 안되었다. 내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은 왜 6조 혜능이 40세 이상이 되도록 '사냥꾼들과 숨어' 지내야만 했을까라는 것이다. 부처님시대 석가족을 '멸족' 시키러 간 바두바두 당시 코살라 왕도 '출가'한 부처님 포함 석가족은 전혀 손대지 않았다. '수행자'를 해친다는 것은 있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법난'의 시점에는 문제가 발생하나 대개 '법난'이 속세적 소유의 문제나 재산문제가 겹쳐져 벌어지니 청정수행자와는 무관한 사태이다. 가령 일타스님의 외삼촌이었던 '법진스님'은 평생을 걸어 다녔는데 이런 분들이 '법난'에 관련이나 될까? 일타스님의 말씀이 없었고 이것을 기록으로 남긴 김현준 이분의 노력이 없었으면 나는 그런 스님의 존재를 알 리 없다. 그 만큼 이런 스님은, 가령 시내버스고 시외버스고 기차고 아무것도 타지 않고 걸어 다녔으며 절과 절 사이를 오갈때 오직 구걸로 연명했다는 이런 '수행자'가 무슨 원한을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그러하다. 

아무튼 6조 혜능은 사실 신수의 시를 '뒤집어' 엎으면서 단 한구절의 천명으로 '6조'가 되었는데 바로 "본래무일물"이었다. 이후 문학적 직관을 가진 수행자들에 의해 이 구절은 오랫동안 즐겨 인용되고 암송되던 명구였다. 하지만 사실 그 '내용'이란 신수의 것을 '뒤집은' 것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최신의 위빠사나 관점에서 해석하면 신수의 시 자체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만일 '신수대사'가 9차제정을 성취하고 입정과 출정을 자유롭게하면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 있었다면 그의 시 말이 된다. 그래서 문제는 '본래무일물'이 되는데 물론 여기도 폭발적 쟁점이 함의되어 있다. 각묵스님이 '금강경 결제'를 할때 여러 '논자'들이 기존의 '믿음'이 부서지는 것에 공포심을 느끼면서 논박하려 했던 것 처럼 말이다. 당시에는 '성품'이나 '마음'이나 '여래장' 이런 것들에 '불성'까지 무너져 내린다 싶어서 그러했다. 지금부터 6년전의 일이었지만. 

그리하여 무산본각님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여리작의'로서 '알아차림'을 개입시켜서 개념화 작용을 진정시킨다는 것이다. 허나 여기서의 '여리작의'는 사미디에 들어가는 과정이 아니다. 연방죽 선원에서 말하듯, '사마타'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 '집중'이라는 의미로 뭔가 강력하게 '억누른다'는 이런 것이라면 위빠사나 수행속에서는 이런 '집중'이 있어서는 안된다. 순일하고 평화로운 마음상태에서 진행된다는 것인데 부처님의 전기에서는 사선정에서 나와 지극히 순수한 마음상태를 상정하고 여기서 '사띠'를 챙기는 것으로 나온다. 이는 분명 부처님께서 두 스승에게서 얻었던 사마타 선장과 전혀 다른 '새로운' 발견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매우 단순한 얘기다. 두 스승에게서 얻은 '선정'이 모두 '사마타'에 한정되었고 보리수나무 밑에서 '어린시절' 농경제때 나무그늘에서의 '초선' 체험을 반추하시면서 제 사선까지 이룩하신후 '출정'하셨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여기서 사띠를 강화하고 알아차림을 강화하여 하룻밤동안 깨달음으로 나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정체험과 반야를 적절히 조합하여 '공'사상 위에 세워진 '선'만으로 절대 미흡하며 지관쌍운중에서 특히 '관'법 수행을 통해 통찰지를 얻어야 한다는 것. 이 뿐 아니라 '닙빠나'까지 논의하며 성숙명지와 도 과의 지혜까지 강설한다.

'빠빤챠'의 완화  개념화 작용의 진정과정으로서 위빠사나 수행  

나는 이런 과정을 '자극'과 '반응'으로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은 누구도 스스로 '생각한다'고 여기지 '생각된다'고 여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자신의 '의지'로 행위한다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다. 아침에 동쪽을 향했다가 저녁에 서쪽을 향하는 해바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허나 중요한 지점!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 결여되면 사실 무슨 '의지'를 가지건 상관없이 결국은 '반응'의 영역에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의지' 자체도 '반응'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위빠사나의 놀라운(!) 결론이다. 그래서 사람이 무엇을 하건 다 '업'이 된다. 단지 마음챙겨 알아차림이 성성하면 '업'이 안될 수 있다. 허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불락인과'는 아니고 '불매인과'이다. 

말하자면 반응과정은 무엇이건 다 생물학적 적응과정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디엔에이와 더불어 '최초의 정보'에서 비롯된다. 그, 사몰심과 이것의 연결로서 재생연결식 이 두가지이다. 몸과 마음이 디엔에이 정보와 재생연결식 두가지의 결합으로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다름아닌 '우치' 즉 삼독 중에 '어리석음'아니겠는가. 이것으로부터 '탐'과 '진'이 파생되고 그리고 각묵스님 말씀하시듯 끊임없는 생멸의 흐름속에서 삶이 지속된다.

이러한 생명체의 끊임없는 번성 과정을 무산본각님은 하늘목장의 젖소들이라고 비유했다. 아주 적절하다. 거듭 태어나면서 우유생산과 공급을 지속하도록 '칩'이 내장되었다고 한다. 누가 어떤 의지로 무엇을 행하건 모두 이 '침'의 프로그램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지,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것을 개입시켜서 매 순간 깨어 있을 때만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부처님은 이런 것을 발견하신 분이다. 정말 '속지 않기'가 어렵다. 자극이 있을때 반응이란 이렇듯 '자동화' 과정이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간격을 넓히는 사람이 집중력이 높은 사람에 해당된다. 그 최후의 구경이 사마타 선정일 것이다. 허나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되며 매 순간의 '깨어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마음챙겨 알아차림이다. 이것을 '사띠'에 의해 실현할 수 있으니 수행의 첫걸음과 맺음걸음 모두 사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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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들의 대한민국 -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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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감수성'은 '생태적 감수성'과 약간 다르게 사용되는 단어다. 하여튼 둘 다 환경과 생태에 대하여 '민감한 정도'를 말한다. 감정이입을 통해 '공감'하는 정도를 말한다고나 할까. 헝거포드 그룹의 '환경소양'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어린 시절의 '야외활동'이 환경감수성 함양에 결정적이라는 것이 이들의 결론이다. 확실히 '낭만적' 전통의 영미적 '중산층' 지식인의 '소양'중 하나인 것으로 여겨진다. 야외활동속에는 한국인에게 이제 낯설게 여겨지는 '사냥취미'도 들어 있으니 말이다. 신통한 사실은 '사냥취미'가 '사냥꾼의 합창곡 그대로 '마초주의'까지 함축한 활동임에도 '환경 감수성'에 관련되는 것으로 여겼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잊혀진 환경학적 사유의 뿌리 - 경제에 대한 반성

우석훈의 책 "직선들의 대한민국"은 어떤 측면에서 '환경감수성'이 한국에서 '조경감수성'으로 변질되었다는데 대한 보고서 비슷하다. '조경'은 글자 그대로 자연과 비슷하게 건축물 주변을 꾸미는 일을 말한다. 이 '조경'을 고려하여 '미리' 건축물의 실제 모습을 그려낸 그림이 '조감도'이다. 우석훈은 왜 1%의 이익을 위해 나머지 99%가 들러리 되는가 분석하다가 바로 이 '조감도'에 빨려들어가는 '미적 감수성'을 찾아냈다. 다른 것이 없다. '조감도' 하나면 한국 국민들은 껌뻑 죽는다는 것인데 바로 이 '조감도' 덕분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대대손손' 의원을 해 올 수 있었던것 아니겠는가. 그동안은 주로 행정기관이나 00회관 등의 조감도가 주로 설득력을 발휘해 왔지만 청계천 이후 그것은 아주 왜곡된 '생태적 감수성'과 결합하여 이제 '자연형 하천'과 나아가 '대운하'와 결하해 있다. 지난 대선에서 '대운하' 조감도는 정말 엄청난 위력을 떨쳤다. 
 
환경학은 사실 '경제'에 대한 반성적 사유에서 성립한 학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환경학은 기이하게도 '조경'과 결합하면서 이상하게 뒤틀려버렸다. 말하자면 '경제학'을 제쳐 둔채 하나의 '공학'처럼 정착했다는 점이다. 공학중에서 '조경'과 밀접히 연관되는 '공학'이라면 '건축공학'인데 사실 '조경학과'는 농과대학에 있었고 건축학과나 건축공학과는 드문 경우 미술대 일반적인 경우는 공과대에 있었던 별개의 학과였다. 이 두개가 '조감도'의 구도가 변해가면서 '결합'한 셈인데 여기에 '환경대학원'의 역할이 꽤 컸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환경대학원은 굉장히 빠르게 설립됐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이 그 효시인데 유엔환경계획이 창립된 1973년에 설립되었으니 정말 빨랐다. 말하자면 변변한 환경문제가 본격적으로 나타나지도 않았음에도 '대학원'이 먼저 설립된 것이다. 한국인이 가진 '트랜드'에 대한 선견 같은 것일까. 1977년의 트빌리시 선언에도 한국은 대표단을 파견했다고 한다. 바로 다음헤에 자연보호헌장이 나오는데 이것은 사실 1960년대 보존운동의 유산과 같은 흐름에 있었으니 좀 늦은 셈일까. 허나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설립은 독일이나 미국과 견주어 결코 늦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유엔인간환경회의가 1972년에 열렸고 다음에 유엔환경계획이 창설되었는데 바로 그해에 서울대는 환경대학원을 설립한 것이다. 

 이 환경대학원은 이후 우리나라 환경학이나 환경공학의 '원류'가 되었다. 각 대학의 환경학과나 환경관련 학과에 거의 '주류'를 이룬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문제는 앞에서 언급했듯, 이 환경학이 미국식의 경제에 대한 통렬한 반성적 사유에서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에 대한 관심이나 사유를 삭제해 버린것처럼 보인다는데 있다. 오히려 '약한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인공재'와 '환경재'가 서로 '보완적 전환'이 가능하다면서 모든 환경파괴 행위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가버렸다. 대운하에 관여하는 환경학자나 환경공학자들이 그런 경우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초기 출신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 물론 김정욱 교수 같은 경우는 전혀 아니다. '아닌' 경우도 있긴 하나 대운하에 '청사진' 그리는 사람들중 많은 듯 보인다.


'속류화'된 환경학적 사유와 '조경적 감수성'의 탄생 

문제는 바로 이런 이유로 환경적 사유가 점점 '속류화' 되어 버린다는 데 있다. 벨라미 포스터의 언급이 더 심하게 뒤틀리는 경우이다. 종말론을 설교하는 목사님처럼 엄청 대단한 '담론'으로 시작해서 뒤에 가서는 '쥐꼬리'처럼 사그라들어 버린다는 것인데 더 심하게는 '앞의 종말론'과 '뒤의 장미빛'이 어긋난다는데 있다. 대운하를 찬성하는 '환경학자'의 관점에서 그것은 장미빛이다. 간단히 경제도 살리고 환경도 문제없다는 이런 발상이다. 우석훈은 이것을 조감도의 '미학'이라고 불렀다. 탁월한 통찰인데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시절 인터넷을 떠돌던 대운하 '프리젠테이션'이 바로 '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였다. 물론 서울시장 시절에는 청계천 조감도가 엄청 위력을 떨쳤고 당연히 청계천 주변의 부동산은 폭등했다. 생태적 감수성을 '부동산 폭등'에 결합시킨 이런 '조감도' 또는 '조경'의 미학적 감수성이란 정말 대단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바로 이런 '감수성'의 한복판에 있다. 따라서 이 진영에 참여한 '환경학자'란 바로 그와 동일한 감수성을 갖춘 사람들이 된다. 이 사람들에게 환경학이란 그저 '트렌드' 중의 하나에 불과했던 셈이다. 

 사실 서양의 생태주의자들에게 '환경학' 또는 '환경론' 나아가 '생태주의' 담론이란 그들 사상의 '원류' 비슷했다. 이런 흐름속에는 가령 '사냥꾼의 합창'에 나오는 '남자의 즐거움 장부의 즐거움' '팔과 다리는 튼튼하게 되어' 등등의 '야생 취미'도 들어 있다. 이른 바 '환경소양' 연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중에 '시에라 클럽'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냥꾼 협회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연구 대상의 '기이한 선정'은 바로 이 사람들의 환경소양이 '높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이루어진 일인데 그 정도로, 야생에서의 사냥, 캠핑, 등산, 암벽타기, 보트타기 이런 것도 '환경감수성'의 영역에 포함시켜 사고했던 셈이다. 이것은 정확히 미국의 '중산층' 중 '일각'의 '정서'라고 볼 수 있다. 요컨대 환경감수성 연구란 미국에서 특히 '일부' '컨트리'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나 환경관련 단체 구성원이나 그와 유사한 단체 구성원을 이루는 '중산층 일각'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셈이며 따라서 그 '한계'란 매우 분명하다. 

그리하여 이제 환경대학원 나온 사람들의 환경감수성이 무엇인지 살펴볼 차례인데 나는 그것을 간단히 '조감도 감수성'이나 '조경적 감수성'이라고 정리해볼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야 조령에 '스카이 라인' 그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환경학자' 딱지를 달고 있을리 없다. '건축'도 아닌데 불구하고 그러하다. 한국에서도 매우 유사하게 '시골' 출신의 '전원'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환경학이나 환경관련 전공을 하는 것 처럼 여겨지는데 특이한 사실은 '조경적 감수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언제든' 대운하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사실 1990년대 초반 출범한 환경운동은 2000년 경에 이르러 '점차' 한계를 노정하게 된다. 그 까닭은 환경운동이 본질적으로 중산층 시민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하여 새만금과 같은 사업에 대하여 '생태주의'적 관점에서는 매우 '근본적'이지만 파병문제 같은데서는 또 매우 '유연한' 중간층 시민운동 관점의 환경운동이 성립했다. 가치지향의 근본주의와 정치적 포지션의 현실주의 사이에 내재된 긴장과 '모순'적 균열탓에 지금은 명백히 쇠퇴중이다. 게다가 요즘 와서는 점점 더 '변질'이 나타나는데 특히 기업과 정부 양쪽에서 '펀딩'을 받게 되면서 그러하다. 요컨대 풀뿌리 운동이 아닌 일종의 제도화 방향으로 변질되고 있는데 이는 미국도 그랬다. 대신 '환경정의'를 근본으로 하는 지역중심 풀뿌리 환경운동이 태동했듯 한국도 '지율스님' 단식을 계기로 그렇게 조금씩 바뀌고 있다. 환경교육도 이런 흐름속으로 점점 진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미국환경운동이나 환경교육과 매우 유사한 방향으로 움직여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경제'에 대한 맹점은 점점 심각한 수준이다. 환경교육이나 환경운동 양자 공히 마찬가지. '경제'에 대한 사유가 결여되었을때는 가령 '독일식' 지속가능발전이 영미적 석유패권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있다는 이런 것을 알아내기 어렵다. 환경학은 스스로 '간학문적'이니 '통합학문적'이니 내세우면서도 경제학이나 사회학에는 거의 '문외한' 수준으로 남아 있으니 대체 어찌된 셈일까?

경제학적 사유와 사회과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환경학 - 생태적 감수성의 온당한 복원 

환경학은 간단히, 제국주의와 식민지 개척, 과학기술, 시장원리 그리고 '자본주의'에 기반한 서구의 산업에 대한 '위기의식'과 '반성적 사유'에서 출현했다. 따라서 사회학이나 경제학과 매우 친화적일 수 밖에 없으며 역으로 경제학 또는 경제에 대한 '사유'가 결여된 환경학이란 그저 '트렌드'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 그렇게 가고 있다. 당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만도 그러하다. 여기 얽힌 문제는 요컨대 위 언급한 모든 범주가 망라되어 있다. 

미국에서의 공장식 축산이란 일종의 '플랜테이션 농장'과 유사하지 않는가. '플랜테이션'은 유럽인들이 자국의 식량 또는 기호 농산물 재배를 위해 식민지를 활용하는 방식의 '고투입 농업'의 원류였다. 미국의 농업은 '흑인노예'를 '기계화 영농'으로 바꾸었을 뿐 고투입 농업임에 틀림없다. 녹색평론 이번호에 나온 글 그대로 이제는 유엔식량농업기구도 소농에 의한 자연적 순환을 따르는 유기농업의 생산력이 더 높다고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하다면 환경학적 사유는 이런 방향으로까지 진전되어 나가야 맞다. 오직 녹색평론에서만 이런 사유를 결코 '놓지' 않는다. 그렇지 않을 경우 환경학이나 생태주의는 '전원' 생활을 동경하는 중산층 지식인들의 낭만적 급진주의로 끝나기 십상이다. 여기 약지속가능성까지 결합하게 되면 최악이 되며 '대운하'에 대해 찬성하는 태도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요컨대 경제에 대한 반성적 사유가 완전히 결여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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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와 함께하는 <적벽대전> 3인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알라딘에서 온 메일을 열고 황석영 삼국지와 오우삼 적벽대전을 '대조'하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여기 황석영 삼국지 광고를 보자마자 바로 구입 신청 했습니다. 아내가 원했었습니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계속 품절이라고 나왔습니다. 이 광고를 따라가서 10권 1세트 있어 바로 주문했습니다.

아내는 이문열 삼국지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문열 이사람의 '촛불장난'이라는 발언에 화났습니다. 그러더니 이문열 삼국지를 안보게 됐습니다. 사실 '촛불장난'이란 말이 우연이 아닙니다. 이문열 삼국지 곳곳에 서술된 이문열의 '주석'이 다 그런식 표현이죠. 이문열의 세계관은 그냥 '역사허무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의미있는' 역사적 행동을 '탈역사화'시켜 놓고 개인 개인의 '욕망'에 의한 행동으로 격하시킵니다. 물론 이 분의 '촛불장난 그만해라' 이 발언은 사실 그 자신의 '욕망'에 기인핸 '정교한 계산'이라고들 합니다. 문광부 장관 되고 싶어하지 않았겠나 하는 추측이죠. 그러건 아니건 이문열 삼국지는 사실 조선일보 현실주의와 '역사허무주의'를 잘 버무려서 모든 '의미있는 행위'에 찬물을 끼얹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장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은 분명한데, 매끄럽게 읽히니 논술에 좋은 책인것 같기는 합니다. 허나 형식상 장점보다 내용상 약점이 문제입니다.

이런 이유로 새로 저작된 책이 황석영 삼국자리 합니다. 황석영 이분은 이문열과 대척 지점에서 사신 분이죠. 환갑이 넘었지만 활발한 작품활동 여전하십니다. '바리데기' 이 작품은 대단한 상상력을 담고 있다 합니다. 그 책과 황석영 삼국지 모두 아직 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황석영 삼국지를 기대합니다. '역사허무주의'를 벗어나기를 희망하면서. 물론 과도하게 많은 것을 찾고 싶지는 않습니다. 삼국지는 사실 존속기간이 50년밖에 안된 '일시적 왕조'를 다루고 있을 뿐입니다. 좀더 오래가고 '지속가능한' 국가를 어떻게 건국했는가 배우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삼국지에서 배우는 것은 권모술수외 뭐가 있냐고 반론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사실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런 측면을 주의깊게 알아차리며 읽는다면 그만큼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습니다. '동양적 지혜'가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동양적 지헤'의 핵심은 '사람'을 다루는데 있다고 합니다. 이 점에서 삼국지 만큼 '사람을 다루는' 방법에 대하여 많은 얘기를 담은 소설이 없습니다. 게다가 출연하는 인물 하나하나의 개성도 강하게 나타나고 각각 다 다르게 역할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미있습니다. 특히 이런 삼국지의 장점은 '적벽대전'에서 남김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온갖 계책이 나오는 것은 물론 당대 중국의 지식인들이 '정세'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이런 것도 나옵니다. 사실 적벽대전은 당대 중국의 '지혜로운' 책사들이 '힘을 합쳐서' 조조의 '단독 제패'를 막은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을 나열하면 알 수 있습니다. 제갈량, 주유, 방통 그리고 '조연'이지만 서서도 있습니다. 여기에 골육지책의 황개라는 사람도 나옵니다. '연환계'는 골육지책과 뗄래야 뗄 수 없습니다. 이때 '책사'중의 책사인 '방통'의 활약도 대단합니다. 조조를 속여 넘겼으니 말입니다. 제갈량이 주유와 대결하는 이런 구도 또한 흥미롭습니다. 사실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남진'이 달성됐다면 삼국지는 나올 수 없었습니다. 아마 당대의 책사들은 후세에 '삼국지' 소설에 나올 것을 염두에 두고 활약한 모양이죠?

게다가 이 적벽대전을 영화로 만든 감독이 오우삼이라니 흥미롭습니다. 그 '미션 임파서블3'을 감독하면서 홍콩식 '마주보고 권총겨누기' 장면을 넣더니 이것을 그의 전쟁영화 윈드토커에 넣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연출인데 이로서 '홍콩 느와르'의 주요 '장면'이 헐리우드로 들어갔습니다. 사실 오우삼의 전쟁영화 '윈드토커'는 동양인 감독이 만든 '서양인의 전쟁'에 대한 영화이죠.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태평양에서는 '동양인' 일본군과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령 '아버지의 깃발'과 같은 영화를 보면 '윈드토커'와 뭐가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비전문가인 제가 보건데 미국인 영화감독은 '사건의 구조'를 중심에 놓고 연출하는데 동양인 영화감독은 '등장인물의 역할'에 촛점을 맞추고 연출합니다. 이는 사실 서양과 동양의 역사서술에서 결정적 차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윈드토커'는 사실 서양적이라기 보다 동양적인 주인공이 나옵니다. 제게 그렇게 보인 것일까요? 주인공 중사는 제 보건데 심지깊은 중국인을 속에 숨긴 미국인처럼 보입니다. 오우삼 감독의 연출 스타일 때문일까요?  삼국지는 전형적으로 '인물의 역할' 중심으로 짜여진 소설이니 동양인 감독에게 알맞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삼국지의 개봉을 기대합니다.

특히 대규모 전쟁영화는 그동안 주로 미국인들이 만들어왔습니다. '전쟁영화'는 아주 단순하게 사건을 해석합니다. '정의'와 '부정의' 또는 쉽게 말해서 '우리편'과 '적' 이렇게 말입니다. 한국인은 그동안 주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전쟁영화를 눈이 튀어나오도록 보아왔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미국식의 '우리편과 적' 구도를 주입받아 왔다는 의미입니다. 가령 '독일군'은 한국인에게 '무시무시한 악마'이지만 사실, '스탈린그라드'를 보면, 이탈리아 해안으로 '휴가'도 가는, '미군'과 별 다를 바 없는 군인들로 묘사되죠. 왜냐하면 '스탈린그라드'를 독일 감독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묘한' 전쟁영화의 '시선'이 적벽대전에 어떻게 반영될까 기대됩니다.

문제는 현대 중국의 '감독들'이 중국정부의 '시선'을 영화에 반영하는 경우라 합니다. 가령 '황후화'같은 영화 말입니다. 3명의 아들이 각각 반란을 꾀했지만 그 '규모'가 아버지의 '규모'를 전혀 따르지 못해서 실패한다는 이런 구성 말입니다. '아들들아 아버지 말 잘들어' 이런 메세지를 보내면서 엄청난 '규모의 영화'를 실현하긴 했지만 재미는 '적었던' 이런 기억들 말입니다. 이는 또 미묘한 부분입니다. 사건과 '구조' 중심 서양영화가 그래도 '이야기'를 집어 넣어서 그런 '결함'을 지양하는데 어째서 인물중심 동양영화가 '이야기'의 빈약으로 가버렸는지 황후화가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적벽대전은 동양삼국에서 투자했답니다. 이 '삼국'의 전쟁을 보는 '관점'이 영화를 통해서 잘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전쟁찬양'이 아니라 '평화의 문'으로 진입이라는 메세지를 담기를 기대합니다. 무조건 '규모'만 갖고 될일은 아닙니다. 과연 오우삼 감독이 어떻게 소화를 시켰을지 궁금합니다. 공개된 장면을 보면 '300'과 비슷한 장면도 보이던데, 더 봐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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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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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름 : 촌놈들의 제국주의

지은이 : 우석훈

출판사 : 개마고원

출판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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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은 늘 가능한가 보다. 나는 우석훈 박사의 책을 읽을 때 마다 내가 해 보았던 생각을 발견한다. 어쩌면 우석훈 박사의 글을 읽고 '확장'된 생각을 해 보았거나 아니면 우석훈 박사의 생각을 '내 생각'으로 여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비슷하게 생각하는 패턴을 공유한다 싶기도 하다. 

한국 자본주의가 '위기'에 직면하고 '탈출구'가 없어서 헤매고 있다는 것을 나는 '경제학자'들의 여러 글을 읽고 알았다. 그런 통찰을 제공해 주는 사람으로 이 연구소의 김광수 소장이나 우석훈 박사만한 학자가 없다. 이 두분은 모두 대단한 '통찰'을 갖춘 경제학자이면서 한국경제의 위기에 있는 그대로 직면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 두분이 서로 만난적은 없겠지만 나는 '책'으로 만나면서 '대조'해 보는 즐거움도 누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두분이 '경제학자'로서 한국경제의 문제가 무엇인지 샅샅히 파헤치는 일에 지극히 성실하다는 점이다.


경제학자가 경제에 성실한 것이 이상한 나라 
 
경제학자가 '경제'에 성실한 것을 '중요하다'고 말하는게 이상한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경제학자가 '외도'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대표적으로 안병직 이분은 도요다 연구 펀딩을 받아서 '한국사' 연구하는 경제학자 아닌가? '경제학'과 관련된 한국사 연구이기는 하지만 '뉴라이트'의 역사관에 더 신경을 많이 쓰시니 내게 외도처럼 보인다. 박세일 이분은 '국제경제학' 전공이라지만 사실은 '시장원리 교육개혁'이 주전공처럼 바뀌어 있다. 이 분의 제자이신 현 이주호 교육사회수석 이분도 '경제학자'출신이다.

경제학자가 '교육개혁'할 수도 있고 사실 '관료주의'에 물든 교육계 또는 교육학 진영을 '혁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애초에 그래서 '신선'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약 20여년 경과하면서 모든것이 뚜렷해졌다. 특히 '민주정부'가 교육개혁할 때는 '반신반의'였는데 이명박 정부가 '같은 일'을 하니까 너무 명백해졌다. 간단히, 교육을 '돈벌이' 영역으로 설정하고 있음이 너무도 분명해졌기에 이제 '시장원리 교육개혁' 그것의 문제가 무엇인지 '저절로' 드러나는 국면이 된 것이다. 실제 사례로,  하나은행이 자립형 사립고 설립에 뛰어드는데, '서울시장'이 반대한 것을 청와대가 챙겨서 '되도록' 한다는 이것 하나 만으로 충분하다. 여기 온갖 '병폐'가 다 포함되어 버렸는데 근본 원인은 교육을 '공공영역'이 아니라 '사적' 영역으로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학원업'과 비슷하게 '학교'도 '업'으로 설정했다는점에 있다. 이미 대학은 그렇게 변질되었다. 

 우석훈 박사는 사실 이런 점도 이미 짚고 있다. 68혁명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유럽에서는 대학교육까지 무상화되었고 신자유주의 파도 속에서도 여전히 국민소득 4만달러인 나라에서 대학등록금은 1년 50만원 정도 내고 다닌다는 이런 사실 말이다. 이! 기가막힌! 지표는 한국과 중첩된다. 민간정부 20년동안, 사람들이 모두 '민간정부'를 '민주정부'로 믿어 의심치 않는 않았고 바로 그동안에, '대학교육'은 엄청나게 변질되었는데 그 핵심은 '재단'의 기업화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화'된 재단이 결국 '등록금'을 엄청나게 올렸다는 점에서 너무 명백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경제성장의 어떤 단계에서 '경제정책'이 아니라 '사회정책'이 더 '경제성장'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시점이 오게 된다고. 교육은 그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정책'에 속한다. 무상교육은 '사회정책'으로 수행된 '경제 고도 성장'의 중요한 '계기'라는 것이 내 확신이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내포적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회주의'니 뭐니 하는 이념논쟁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그냥 '경험값'만 갖고 얘기해 본다. 북구의 강소국들은 예외없이 교육이 강한나라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간단히, 외연적 '확장'의 '제국주의적 길'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당연히(!) 내포적 '고밀도 발전'을 꾀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내포적 고밀도' 발전의 핵심은 '경제성장' 보다는 '사회발전'에 있다. '경제적 효율성'이 외연적 성장의 핵심지표로 늘 내세워지는 것이라면, 사회적 효율성은 '내포적 발전'의 핵심지표이다. 여기서 '발전'이란 양과 질 양쪽의 성장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가령 외환위기 이후 10년동안 한국경제는 연평균 5-6%정도 '성장'했는데 과거에 비교하면 정말 '눈꼽'처럼 작게 느껴지는 '외연 확장'이었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교하면 이 수치조차 엄청 놀라운 확장이었다. 허나 사회적 '양극화'는 점점 심해져 갔는데 이런 경우 '경제의 외연 확장'이 '사회의 내포적 발전'과 어긋난 경우다. 바로 이런 '경우'가 있기 때문에 나는 '내포적 성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이것은 반드시 '사회의 내포적 발전'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역사상 이것은 숱하게 발견된다. 사실 독일식 '국민경제모델이야 말로 '앵글로 색슨'의 외연적 성장 '방해'를 딛고 내포적으로 성장하는 방식 아니었겠는가. 이른 바 '유럽형 녹색 사민주의 모델'이라는 것도 나는 이와같은 '내포적 발전'의 길로 보는데 여기에는 당연히 석유와 달러 패권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지향도 들어 있는 만큼, 그로부터 연유하는 '외연적 확장'에 대한 '방해'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무상교육, 무상의료에 신재생에너지 전환 등등 모두가 다 '내포적 성장'에 속하며 바로 그 결과 미국을 넘어서는 4만달러 소득이 가능했다. 무조건 '외연적 확장'의 길로 간다고 전혀(!)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포적 성장의 길을 놓쳐서 '외연적 확장'으로 엇나가려는 한국경제

헌데 우리나라는 이와같은 경제의 총체적 '내포적 성장'으로 나아가는 '사회의 내포적 발전'의 계기롤 놓쳤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한 '내포적 발전'을 좀더 다듬어 본다. 내게 그  '내포적 발전'의 계기란, 애초 대운하와 같은 '거대토목건설계획'이 '출현' 불가능한 사회정책의 '조건'을 형성하는 것과도 이어진다는 생각이다. 북유럽 강소국들이 그러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식민지를 개척할 수도 없고 외연적 확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군비확장 같은 것은 과도한 낭비로 부각된다. 이럴때 가장 손쉽게 가능한 '투자'가 교육이다. 따라서 무상교육이란 사회적 효율성 제고에 반드시 오는 국가의 책무적 사업이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사실 2001년 김대중 정부는 중학교까지 무상화했다. 이것이 더 '확장'되어야 했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멈췄다. 바로 그 '대체물'이 제주도 해군기지 같은 것이었다면 틀린 생각일까? 

김대중 정부에서는 군비가 크게 줄고 교육비가 크게 늘었다. 바로, 내포적 발전의 길로 한걸음 나아가긴 했다. 중학교 무상교육은 연 7500억원 정도의 교육재정 증가로 가능했다. 너무도 손쉬웠던 셈이다. 고교까지도 손쉽게 가능하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어느새(!)' 한국의 재정규모가 확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디피 6%의 공공 교육재정을 확보하면 대학까지 무상교육은 아주 쉬웠다. 당시도 지금도 지디피 6% 교육재정은 약 30조에서 40조 정도이다. 사실 현재 교육재정에다가  연 5조원 정도 늘리면 고교까지 무상화는 아주 손쉽게 가능하며, 연차적으로 좀 더 늘리면 대학까지 무상교육은 더 손쉽게 가능했다. 그런데 이것의 적절한 실행시기를 놓쳤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이른 바 '재투자' 효과를 최대한 거두는 시점을 잃고 말았다. 높은 수준의 '사회적 효율성 제고'와 낮은 수준일지라도 '경제적 투자 효과'의 제고라는 것 말이다. 이것이 '최대'의 효과로 나타날 시점은 바로 '파병논란'이 빚어지던 그 직전 그러니까 탄핵열풍이 몰아치던 그 무렵이었던 셈이다. 만일 교육에 많은 돈을 집중투자 하고 있었다면 '해외 파병'은 당연히 억제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 결과는, 내포적 성장의 길을 자꾸 '외연적 확장'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이고 이런 경향이 점점 강해진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석훈 박사는 이것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경제 성장이 '난경'에 부닥친 상황에서 '뚫어'보기 위해 이것 저것을 다 고려하는 가운데 가장 손쉬운 '건설토목계획'이 남발된다.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 그러했고 여기에 사실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해외파병과 더불어 세계 여기저기서 이루어지는 '석유 탐사' 사업도 포함된다. 요컨대 '외연적 확장'의 싹이 너무도 커져 있는 것이다.  

이른 바 한국판 '뉴딜'이라고 하여 지방개발과 각종 항만, 도로 등의 사회적 인프라에 참여정부는 엄청난 돈을 투입했거나 할 계획을 세워서 현 정부에 넘겼다. 토지보상금은 연평균 10조씩 사용했다. 이렇게 쓸 돈은 엄청나게 많았다. 심지어 이번에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석유값 인상 대책에 사용하는 돈은 10조원이다. 나는 바로 이런 것이! '내포적 성장'의 기회를 놓친 때문에 빚어지는 사태라고 본다. 왜냐하면 연 10조원이면 대학까지 무상교육이 가능한 돈이다. 해마다 이만한 돈을 무상교육에 사용한다면, 당연히 20조규모의 대운하 계획 같은 것을 내놓기 어렵다. 그만한 재정을 꺼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석유값 폭등한다고 함부로 재정에서 10조라는 돈을 꺼내서 소모해버리거나 또는 함부로 군비를 늘리거나 하는 방향으로 가지도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는 그렇게 보았다.

하지만 한국은 교육과 의료에 '공공투자 증대' 방식으로 사회적 효율성을 높여서 국민소득의 '증가'를 향해 나아가는 '내포적 성장'의 길을 놓쳐 버렸다. 나는 지금도 귓전에 생생한 소리가 있다. 다름 아니라, 열린우리당이나 통합민주당 지지하는 지식인들 대부분이 한국은 너무 재정이 빈약해서 '무상교육' 쓸 돈이 없고 그것은 19세기 발상이라는 투의 담론들 말이다. 이들은 예외없이 '신자유주의' 찬가속에 살아가는 사람들로 보였다. 단지 참여정부가 이런 사람들의 담론을 '민주정부'라는 허울 속에서 가려놓고 있었을 뿐이다. 우석훈 박사는 일찌기 1년에 10조원 정도의 '돈'이 도로건설과 유지 보수에 사용된다고 밝힌 바 있지만 이런 얘기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1년 10조면 대학까지 무상교육 가능한 돈인데, '아무도' 우리나라가 대학까지 무상교육하는 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생태주의 영화 찍는 '황윤' 감독의 '어느날 그 길에서'에서 우석훈 박사의 얘기가 변주되었는데, 우리나라의 도로밀도가 단위 제곱킬로미터당 1킬로미터의 길이라는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한국 전체가 한변의 길이가 1킬로미터인 '포장도로'의 정사각형 격자의 '바둑판'으로 되어 있다는 의미. 이러니 동물들이 1킬로미터 못가서 '도로'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는 얘기였다. 이 동물들이 도로위에서 속절없이 죽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건설토목과 '전쟁의 신'을 제어할 것인가

우석훈 박사의 이 책은 바로 이와같은 '건설의 신'이 한국에서 얼마나 위력적인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위력'은 김성동의 소설에서 잘 묘사되었다. 화두잡고 수행하는 은거 수행자의 동굴 근처까지 '도로공사'하는 장비들의 건설소음으로 시끄러워진다는 얘기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제곱킬로미터당 1킬로미터의 도로밀도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밀도 높은' 도로망을 만들어 놓고서도 여전히 1년 10조원의 '도로공사' 예산은 책정되고 집행된다. 사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예산항목을 많이 바꿨는데 대부분 도로와 '회관' 건설로 돌렸다고 한다. 요컨대 이명박 정부는 '건설토목'을 중심산업으로 경제를 이끌어 나가려는 의도를 가진 정부다. 문제는 단위제곱킬로미터당 1킬로미터의 '도로포화' 상태이니 어쩌겠느냐이다. 아주 간단한 방책이 나오는데, 고 정주영 이분처럼 2층 고속도로 건설안을 내거나 서울시장 오세훈처럼 '지하 격자도로 계획'을 내거나 아니면 이명박 대통령처럼 '대운하' 계획을 내는 것이다! 

바로 이순간, 이와 같은 경제가 정말 가능한가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그와같은 '건설의 신'이 어디를 향할까이다. 가장 '만만한' 장소가 북한이다. 이 지역은 지난 60여년간, 사회간접시설의 '피폐화'를 겪고 있다.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적어도 1990년 소련이 무너진 이후, 석유가 끊겨서 더 이상 손써볼 도리 없이 경제 전체가 '낙후'되어 버렸다. 요컨대 '석유'경제 시대에 '석유'가 없으니 당연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리 만무하다. 가령 쿠바처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의 방향으로, 도시영농 같은 것을 활성화하면서 살 길을 찾는 방식도 있었다. 허나 북한은 '생태주의'적 지향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가령 다락논 노선은 생태주의를 니카라구아의 산디니스타에게서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것을 쿠바에서 배웠기에 지금 정도라도 탈석유 경제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다락논 때문에 이후 산사태와 홍수 그리고 농업생산력의 급속한 저하와 함께 바로, 오늘의 기아사태 원인이 생성됐다. 그리고 이를테면 지금은 멈춰버린 '케도'처럼 이른 바 한국형 경수로 원전을 지어주는 계획이 있었다. 사실 그만큼 '급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바로 북한이 이렇게 '사회간접자본'의 낙후속에 있기에 한국의 '도로건설자본'이 볼때 얼마나 훌륭한 '낙후' 지역으로 보이겠는가! 

이런것들이 겹쳐져 햇볕정책이 담보하고 있었던 '인도주의적 통일' 이런 지향이 '자본의 제국주의적 진출'로 변질되는 단계에 지금 한국이 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 점은 사실 미국에서도 감지되지 않는가. 지난 봄인가 미국에서 열린 대북정책 공청회에서는 '너도 나도' 북한에 '획기적인 제안'을 해야 한다면서 가령 '철도'를 러시아 중국으로 이어주겠다는 이런 제안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다. 다름 아니라 클린턴  전 정부의 전 고위 외교 관계자가 말이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통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급하다'는 것이기도 하고 그만큼 '위험'을 감수하는 상황으로 간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급한' 나라가 하나 더 있으니 '대한민국'이라고들 한다. 그 '대한민국'의 가장 급한 '자본'중 하나가 '건설토목자본'이다. 미분양이 20만채라는데, 이것 보다는 도로 항만 회관 아파트 등등 하도 많이 지어대고 있어 이미 '공급과잉'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래서 어디 '깨끗한' 들판이라도 있기를 바란다. 우석훈 박사는 그것을 '평양역'에 거대한 주상복합을 짓고 싶어하는 '욕망'으로 표현했다. 

사실 남한 자본인들 조건이 좋은 것은 아니다. 다름아닌 석유 때문이다. 에스케이는 '지구'를 거꾸로 엎는 '광고'를 통해서 이곳 저곳에서 석유를 찾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카스피해까지 진출해 있다. 물론 영미 석유자본의 '눈치'를 보면서 말이다. 우석훈 박사는 아프리카에도 나가 있다고 한다. 아주 중요한 지점중 하나는, 가령 동남아시아에서 산유국인 인도네시아와 베트남도 '석유'를 수입한다는 이런 실이다. '석유'가 나는데 '석유'를 수입한다? 정확히, 원유가 나지만 정유시설이 없어 '정제석유'는 수입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거꾸로다. 정유시설은 엄청난데 원유가 없다. 그래서 원유가 있는 곳이라면 달려가서 이미 무엇이건 하려 들 태세에 와 있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파병'은 아마도 군에서조차 꽤 '체험'하고 싶은 일이었을 것이다. '체험 전쟁현장' 이것이야 말로 군사적 본능 아니었을까. 그래서 우박사는 참여정부하에서 단행된 파병속에 이미 '아류 제국주의'적 지향이 담겨 있었다고 분석한다. 정확하다. 시민운동이 아무리 '평화'를 겉으로 부르짖었지만 속으로는 '이제는 이정도' 할 만하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길 바라지만 정말 어렵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한국적 '방어형 민족주의'가 '공격형'으로 전환되어 갔다고 하는데 그 '계기'가 되는 사건들이 황우석 사태와 디워 사태 등이었다.

 

촛불에 내재된 위험 잘 들여다 보기

그래서 나는 지금의 '촛불'에 약간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모든 '권위'를 해체하는 듯 하면서도 뭔가 어긋난 지점이 있는데 뭘까? 우석훈 박사의 책을 읽고 알아차렸다. 바로, 일본 우익이 그렇듯,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 말이다. 사실 진보진영의 '주체'적 '민족주의'는 부작용을 낸다. 북한이 무슨 '주체'라기 보다 '경제원조'가 필요한 나라 아니면 그저 한국자본이 진출할 미답지 정도로 국민들이 인식한다면 당연 어떤 생각을 갖겠는가? 주체의 민족주의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의미의 민족주의 작동이 가능하지 않은가? 바로 미국에 대하여 할말 하는 '정상국가' 이런 생각을 가질 법하지 않겠는가? '촛불'에 이런 지향이 더 강하게 담겨 있다면 바로, 우석훈 박사의 '걱정'이 싹을 틔운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주 틀리지 않는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선교단의 부모들은 모두 '자식'을 자랑스러워했다. '위험하게 왜 그런델 가니'하면서 '만류'한 부모 내 보건데 한명도 없었다. 지금 한국 부모가 이렇게 변해 있다. '앞장서라'. 그리고 '앞장서라' 이것은 바로 '제국주의'의 명령어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초기 동남아시아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일본군이 그렇게 전투했다. 이등병이 달려가 기관총안구에 몸을 눕혀 '총알'을 몸으로 막는동안 다른 병사들이 '벙커'를 점령하는! 이런 전투였다. 물론 일본군 병사들의 '앞'에는 당대의 '제국' 영국군이 있었다. '제국의 징후'는 바로 이렇다. 부모들이 더 이상 '맨 앞에도 맨 뒤에도 서지 말고 중간쯤 있어라'가 아니라 '무조건 맨 앞장서라'가 되었을 바로 그때! 우석훈 박사는 파병에 이어서 황우석 사태와 디워사태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선교단 사태에서 그런 '징후'를 발견한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할 시점이다. 우석훈 박사는 경제학자이나 생태학을 공부했다. 한국에서 '생태경제학'은 매우 생소한 분야이다. 하지만 경제의 생태적 전환은 사실상 눈앞에 화급한 문제이다. 한국사람들이 '급한' 만큼 너무도 '무딘' 측면도 있는데 생태학과 같은 분야다. 물론 인류학도 마찬가지다. 이제 뭔가 '외연적 확장'의 길로 나가려니 너무도 미흡한 것이 여실히 드러 난다는 것인데 이럴때 핵심이 되는 학문이 인류학과 생태학이다. 요컨대 전혀 준비도 없으니 '촌놈들의 제국주의'인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촌놈이라도 '외연적 확장'의 본능은 제국주의와 정확히 합동이 될 수 밖에 없다. 한국은 곡물과 석유를 모두'해상'을 통해 들여 온다. 해상 수송로는 군사전략적 단어로서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외부' 의존 경제를 만들어낸 한국인의 운명과 같은 삶의 경로이다. 그래서 정말 어렵다. 석유 수송로에 이제 한국해군이 초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제주도 해군기지는 이런 이유로 만들려는 것 아니겠는가. 당연히 한중일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지금부터 평화의 싹을 만들어 나가는가 이런 화두를 잡고 있다.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내 생각에 어떻게 한국의 경제와 산업을 '생태적으로 전환'하는가의 문제가 핵심이라고 여긴다. 물론 앞에서 말한 '사회적 효율성을 높이는 내포적 발전'으로의 전환도 여전히 남아있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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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관 강설 - 붓다의 정통 수행법에서 본 선의 실체
무산본각 지음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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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거리에서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 마치 프랑스의 1968년 같다. 물론 다른 점이 많다. 한국의 촛불은 프랑스보다 훨씬 온건하다. 오히려 '정부와 국가'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빨리 '폭력화'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그럼 '진압'하면 될까? 틀렸다. 한국의 촛불은 이미 '진압'같은 개념을 넘어섰다. '개념'을 넘어섰다는 바로 이 지점! 프랑스의 68혁명이 그러했다. 프랑스인들 '아버지'같은 드골의 통치에 순응하면서 반대했다. 이제 '자식들'이 다 자라서 '아버지'에게 독립하고 싶다! 그래서 드골은 의회해산 총선실시 그리고 '복귀'했지만 그 다음에 권좌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드골체제'는 해소되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로'의 유산은 지금까지 세계가 평화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오랜 세월 '영미'를 추수하며 자국을 '전쟁터'로 내주는 것 그만두고 독일하고 '평화공생'으로 나가면서부터. 드골과 아데나워가 한 일이었다. 그 드골도 세월은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

68정신의 기본은 모든 권위와 권력의 해체다. 여기에 좌우가 없다. 그래서 지금 촛불은 안꺼질 것이다. '권위와 권력'이 해체되길 지향하므로. 이 놀라운 변화는 사실, '대박'의 꿈을 안겨줄 것이라는 헛된 망상속에 등장한 이명박 정부가 오히려 '과거'로 퇴행하면서 '낡은' 권위는 물론 '백골단'과 같은 권력까지 살리려드는 방향으로 기울면서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이 '포스트모던' 혁명! 엉뚱하지만 한국불교에도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각묵스님이 이 '작업'의 맨 앞에 있다. 남방에서 공부하고 온 스님들이 다 그렇다. 허나, '오직' 남방만 기울어 있는 경우는 그 지역의 '문화적 한계'에서 빚어진 폐단까지 다 가지고 오니 또 문제이다. 그래서 남북방 모두 아우르는 수행자가 필요하다. 각묵스님과 대림스님이 그러했다. 각묵스님은 이미 '한소식'을 한 분이라 했다. 허나 그 '한소식'을 통렬히 반성하면서 글자 그대로 '해체'한 이후 '재구성'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남방 아비담마의 장점을 '북방'의 관점에서 적절히 소화하는 중이다.

이런 분이 또 하나 있으니 그분을 '무산본각'이라고 한다. 테헤란에서 일하다가 '이란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존재에 의문'을 품고 귀국하셔서 '출가'하신 다음 '한소식'까지 나가 가셨다 한다. '야반 삼경에 문고리 잡아보라' 뭐 이 화두를 타파하셨다고 한다. 허나 진정한 깨달음의 경계가 아님을 아시고 다시금 발심 하셔서 '위빠사나'를 수행하셨다고. 그리하여 이분이 깨달음에 관한 종합적 정리를 한 두 책을 출간하셨다. 이 '무문관 강설'은 그 두 책보다 먼저 나왔다.

'무문관 강설'은 그러니까 '북방불교'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그 정수를 잘 짚어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북방불교의 '문제'란 무엇인가? 사실 이것은 '인간'에게 내재된 '개념화'의 문제라고 하는게 맞다. 꼭 북방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념화'가 체계를 갖추면 '이념'이 된다. 이념이 사람들이 무리속에서 '제도'가 되고 '작동'하게 되면 이른 바 '거대담론'이 된다. '거대담론'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북방불교는 거대담론에 가깝다. 왜냐하면 사실, 초기경전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던 '운율에 맞춘 시가'형식으로 불교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짧은 식견으로 이는 '직관'과 '신앙'에 기초한 일종의 '믿음불교' 즉 '신앙불교'라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초기불교는 거의 '과학자' 또는 '자연사학자' 자질 을 갖춘 사람들이 수행하고 정리했다면, 당시에도 이미 부처님이 '우다나'로 노래하신 것에서 알 수 있듯, '문학적' 자질 갖춘 사람들은 그 표현법을 달리했고 또 그러고 싶어했다. 그 결과 대승이 탄생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학적 상상력'이 구축한 불교. 틀렸다 맞다의 문제는 아니다. 시기와 조건의 문제일 뿐. 하지만 그래도 핵심은 있다. 불교는 러셀과 아인슈타인도 찬탄했는데, 간단히, '신앙'과 '믿음'에 한정된 가르침이 아니라서 그렇다. 내게는 이 두 사람의 유럽 학자들의 얘기가 '핵심'이라고 보인다. 그렇다고 '과학적 분석적 불교'가 마냥 정당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과학적 분석적 불교'와 '문학적 직관적 불교'는 부처님 가르침속에 모두 있었고 가령 사리불 존자는 '과학적 분석적 불교'에 가까운 '법의 대장군'이었으니 초기불교가 그러했던 것은 '사리불'이라는 탁월한 아비담마 분석의 대가 덕분이라 할 수도 있다. 허나 앞에서 말했듯, 모든 '담론'은 또 '이념'이 되고, 이념은 더깨가 되어 사람을 또 구속해버린다. 불교는 해탈에 있건만. 그래서 다음의 문제가 나온다. 신앙불교 말이다.

어째서 '신앙불교'가 되었을까? 간단히, 이념화라는 것 때문이다. 초기 부처님의 가르침이 '교단'을 얻고 체계화 되고 제도화 되면서 당연히 '문제'가 벌어질 밖에. 왜냐하면 부처님 스스로도 그러하셨지만 핵심은 '출가'이다. 그런데 제도화가 과도해지면 '출가'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된다. 사리불 존자의 아비담마가 '수행'을 위한 자양이 아니라 '학문'의 대상이 될때 문제가 된 것이다. 물론 꼭 아비담마만은 아니다. 잘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중국에 들어온 대승경전은 그 '문학적 성격'때문에 중국인에게 잘 맞았던 것이지만 그런 이유로 '논의'가 무성해지면서 폐단이 생겼다. 이것을 '지양'하는 운동이 선불교라면 틀린 것일까? 하여튼 무엇이든 제도화 이념화 되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여기 '지원'이 들어오고 더군다나 속세 권력층에서 많은 것을 내줄때 문제가 되었다. 가령 양무제때는 '황제'가 불교를 장려하였기에 사원으로 엄청난 '경제적 잉여'가 투입되었고 '승려'가 된다는 것은 요컨대 아주 '잘먹고 잘사는' 방편에 속했다. 물론 결혼을 못하는 폐단은 있었지만. 그래서 그 양무제가 '달마' 스님에게 한방 야단 맞은 것이다. "아무런 공덕이 없소" 실제로 양무제가 세상을 떠난 이후 '불교탄압'이 진행되었는데 '출가'한 승려를 다시 '입가'시키는 것이었다. 경제가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나.

그래서 참으로 어렵다. 무산본각 이분은 이 지점에서 북방의 '성'에 통렬한 일침을 가한다. 성철스님도 예외가 아니다. '성품'을 본다는 것은 이미 '무엇인가' 있다를 상정하는 것이다. 이는 각묵스님도 마찬가지로 지적하는 대목이다. 뭘 그렇게 또 '개념'을 만드십니까? 그냥 '무아'를 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렇게 말한다. 무산본각 이분은 북방의 체계가 글자 그대로 '선' 즉 '선정'에 터해 있다고 해석하여 한걸음 더 나아갔다. '깨들음'을 얻었다는 이것은 알고 봤더니 '선정에 들어갔다'를 뜻하는 것 아니었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철스님이 말씀하신 '무념'의 종지를 부정한다. 그게 아니다! 위빠사나는 그것을 넘어선다.

그래서 저자는 중국선에 부정적이다. 스스로 화두를 타파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여겼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위빠사나로 전환한 것처럼 '선정'에 기초하여 세워진 중국선은 한계가 많다는 것. 가령 여래선은 일종의 '요행'에 기댄 체계에 불과하다. 특히 '선'의 문제는 '공안집'이 저작되면서 더 문제가 되었다는 것. 이 공안집이 '문학적 상상력'을 배양하는 일종의 '문제집'처럼 여겨져서, 이것으 통과하는 것이 글자 그대로 새로운 종류의 과거처럼 된 폐단 말이다. '폐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중국의 단하천연 선사는 '과거'보러 가는 길에 길거리 누군가 '심공급제'라는 시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마조도일 스님을 찾아왔다지 않는가? '이미' 마조앞에서 문수보살상을 타고 노는 '선'을 행하여 '천연스럽구나'하는 '법명'까지 얻은 사례였다고 한다. 아무튼 단하천연선사는 한번 선정에 들면 일주일간을 앉아 있었다고 하는데 '북방선'은 이렇듯 '과도한 사마타' 중심이라고 여러 분들이 비판하는데 그 중 한분이 무산본각 이분이고, 이 책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묵스님은 일찌기 금강경의 '상'에 주목하여 이 경의 기본정신이 '해체'에 있음을 밝혔다. 이는 무산본각 이분에게서도 비슷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중국선이 부정적인 것 만은 아니다. 무념에 멈춘다면 위빠사나가 아니기에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철스님도 '사중득활'을 말씀 하셨으니 요컨대 '사마타 선정'에 빠져 있지 말고 화두를 챙겨서 '사중'에서 '득활'하라는 말씀인데 이는 '사선'에서 출정하셔서 '순일하게 마음챙김'을 하신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부처님 말씀과 일치하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사마차 선정'이 그냥 '선정'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면 위빠사나는 선정에서 나와 '사띠'를 증강하고 챙겨야 한다. 그렇게 하여 무명을 '보고' 또 '깨뜨리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초기경전에 설명되어 있다. '화두'를 드는 것은 '선정'에 들어가는 일종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될 수 있지만, '사중득활' 즉 '선정'에서 나와서 사띠를 증강해야 깨달음으로 갈 수 있다. 이 분의 일관된 이야기는 여기에 터해 있다. 그래서 무문관 강설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특히 '피안'으로 가고자 한다면 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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