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클라스 : 과학.문화.미래 편 - 불통不通의 시대, 교양을 넘어 생존을 위한 질문을 던져라 차이나는 클라스 3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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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그 세번째 이야기. 

막연히 우리의 현대의 우리 기술은 어디까지 왔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차이나는 클라스(이하 '차클')의 세번째 이야기는 과학, 문화, 미래편으로 심도깊지만 흥미있는 이야기 거리를 푼다.

유전자의 발전은 어디까지 일까?? 너무도 무궁무진한 영역이다. 그러다보니 보편적인 윤리의식이 강하게 필요한 분야이다. 유전자의 활용을 어디까지 제한해야 할지 과학자들의 영역이라 방관하지 말고 사회적으로 적극적인 토론과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나같은 미알못은 도대체 왜 르네상스의 미술이 높게 평가 받으며 내가 그려도 이 정도는 할 것 같은데? 싶은 현대 미술이 극찬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설명을 들어도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데 양정무 교수님의 해답은 명쾌했다. 시대에 따라 왜 그 미술을 사람들이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보통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시고 무엇보다 인상깊은건 현대 미술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전통 미술은 오래된 시간만큼 읽는 방법이 많이 나와서 더 쉽게 이해됩니다만 동시대에 펼쳐지는 요즘 미술은 좀 혼란스럽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미술도 언젠가는 더욱 쉽게 설명하는 방식이 나오겠죠(p201). 어쩌면 현대 미술은 내게 익숙하지 않은 영역일테다. 그렇기에 작가의 의도를 온전히 알 수 없는 걸 과거에 비하면 미술 같지도 않다고 폄하했던 평가가 성급했음을 깨달았다. 

미래편에서 인상 깊은 대목은 단 '로봇'일 것이다. 우리는 로봇이 인간 대신 일을 해주는 세상을 꿈꾸면서도 정작 로봇이 인간보다 똑똑해 지는 걸 경계한다. 로봇이라면 사람이 못하는 일을 해야한다는 김상배 교수님의 신념처럼 로봇 기술의 발전, 현대의 윤리 의식에서 바라볼 때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간에게 이로운 로봇이 많이 탄생했으면 좋겠다. 

저명한 명사들이 다양한 분야를 이토록 알기 쉽게, 차근차근 짚어주며 알려주니 상식이 부쩍 자란 느낌이다. 또 다른 주제로 차클의 4번째 이야기가 나오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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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동학농민혁명답사기
신정일 지음 / 푸른영토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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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안민과 척양척왜의 주장을 외치는 동학도들을 조선왕조는 회유와 군대로 막으려 한 것이다(p260).

 

내가 진정 혐오라는 표현으로도 다 표하지 못 할 만큼 증오하는 임금이 몇 있는데 그 중 한 명은 단연 고종이다. 망국을 눈앞에 두고서도 제 이권 챙기기에만 여념 없었으며 무능한 주제에 탐욕스럽기만 하고 사리분별도 못해 민중의 삶을 고달프게 만든 이, 훗날에 와서 그 원을 제 아비와 부인에게 다 떠넘기기까지 했으니, 어찌 보면 참 운 좋은 사내는 맞다. 고종을 평할 때 무능한 건 맞지만 당시의 조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그를 최악의 임금으로 꼽기보다는 시대를 잘못타고 난 불쌍한 사람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동학농민혁명에서 그와 조선 조정이 벌인 행태를 떠올린다면 선조와 인조가 양반으로 보일 지경이니. 왕조를 바꾸겠다는 것도 아니요, 무능력한 조선 왕실이 하지 못하는 척양척왜를 외치는 제 백성들에게 총, 칼을 들이민 자를 어찌 국부라 할 수 있겠는가? 동학도들의 피가 한반도를 짙게 물들였어도 건재했던 탐관오리 조병갑의 위세를 떠올리면 고종의 무능함에 치가 떨린다.

 

그는(최시형, 동학 2대 교주) 재판장 조병직과 판사 조병갑에 의해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6.2일 교수형을 받았다. 그에게 사형을 내린 사람은 동학농민혁명을 일어나게 한 장본인 전 고부군수 조병갑이었다(p265).

 

<신정일의 동학농민혁명 답사기>는 결코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어야만 저자의 발자취를 따라 흐름을 생각할 수 있었다. “사람이 바로 한울님이니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같이 하라(p7)”는 동학의 핵심사상은 당시 기득권이었던 이들에게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을테다. 자신들을 지탱해 주는 사상을 위태롭게 할 수 있으니, 수탈당하고 고통스럽게 외치는 농민들의 외침을 외면했다.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 된 고부를 시작으로 장흥까지. 만약 고부에서부터 장흥까지 살아남은 동학교도가 있다면 그 험난했던 여정이 얼마나 고됐을지 상상해보며 이 책을 읽었다. 내가 그때 그 시절을 살았더라면, 이 길을 걸으며 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그저 바라는 건 모두가 존중받는 세상일 뿐이었는데, 죽음 앞에서 의연해야 했을 그들의 울분이 내게 전해져 긴 여운이 남았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해 먹어도 정도껏 해먹어야지, 말 그대로 백성들을 수탈하다 못해 못 살게 만든 고부분수 조병갑의 횡포로부터 시작된다. 이미 제 구실을 못하는 왕실의 관직은 더 이상 명예가 아니었으니. 매관매직이 성행했던 그 시대, 당하기만 하던 농민들이 살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실상 이걸 무기라 말하기도... 농민들이 무슨 무기가 있겠는가?) 사건의 진장을 조사하기 위해 내려 온 관리도 탐관오리. 임금도 멍청. 생각만 해도 답이 없는 대환장파티니, 살기 위해 울부짖던 농민들의 기세는 황토현, 황토령 전투에서의 승리를 부르고 전주에 입성하는 쾌거를 올린다. 당시의 일을 교과서 속 몇 줄로만 배웠던지라 잘 알지 못했는데 전주화약이 체결되기까지 급박했던 혁명군의 상황도 알게 되어 나를 더 분노에 차오르게 한다.

 

전라도와 충청도를 오가며 말 그대로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했던 동학교도들의 발자취를 따라 각 지역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해준 답사기를 읽으며, 외세를 끌어들인 조선 정부로 인해 왜군과 싸워야 했던 우금치에서의 패전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1차 동학농민혁명과 달리 2차 동학농민혁명은 그 자취조차 희미하다는 저자의 증언을 곱씹어보니 실상 가봤던 지역임에도 동학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나오는 몇 줄로만 그들을 기억하기에는, 처참하게 쓰러졌던 그들의 생을 미처 헤아릴 수 없을 것 같다. 나름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답사를 실제로 다녀왔던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내용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역사 초심자가 읽기에는 조금 난이도가 있고 정읍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에서 진행하는 답사에 한번 참여해보고 이 책을 읽는 다면 그들의 바람이, 최신 무기 앞에서 쓰러졌을 그들의 마지막 열망을 더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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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강승현 옮김 / 모모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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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의 고전이 그렇듯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역시 대략적인 내용은 알지 몰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본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발췌된 부분만 봤던 것 같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명성은 잘 알고 있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알진 못했다. 모모북스에서 출간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톨스토이의 대표 단편 7편을 엮어 톨스토이가 지향했던 바를 한 권의 책으로 명확히 알 수 있게 해준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키워드가 있는데 그건 바로 사랑이다. 톨스토이의 글이 이렇게 종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는 것조차 이번에 처음 알았으니, 나의 무식함을 탓하면서도 생각만큼 큰 감명을 받진 않았다.

 

일단 인간에게 온갖 고통을 주면서 이 조차도 신의 뜻이라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느님의 입장에서 바라 본 최선은 어디까지나 그의 관점일 뿐, 인간은 신의 장난감이 아니다. 그렇기에 어떤 고통 앞에서도 선하고, 깨달음을 얻었던 앞의 이야기들과 달리 내 심금을 울린 건 마지막에 수록 된 <무엇 때문에>였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신은 인간에게 이리 큰 고통을 주는가? 신의 뜻이 아닌 인간들의 탐욕에 의한 것이라 항변하는가? 이런 무책임한. 톨스토이가 러시아의 작가였단 걸 감안하면 식민지 폴란드인의 감정과 울분을 세밀하게 묘사한 것 자체가 신기하다. 무엇보다 이런 글을 쓰고도 러시아인들에게 변함없는 찬사와 사랑을 받다니.

 

오직 사랑만을 갈구하며 남편을 존경한 여인 알비나의 용기에 감탄하면서도 전작들과 달리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것에 더 큰 여운이 남는다. 무엇 때문에 그녀와 그의 남편 미구르스키는 고통 받아야 하는가? 알비나가 존경하는 남편은 무엇 때문에 러시아인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야 하는가? 왜 신은 그들에게 보통 사람들이 겪는 고통보다 더 지독한 슬픔을 겪에 하는가? 무엇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사랑을 가득 품은 선한고 순수한 이의 말로가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더 현실적인 작품으로 느껴진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해답은 이 소설에서 찾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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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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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 소설의 끝판왕! 걸리버 여행기!

 

대게의 고전이 그렇듯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사람이 없다는 걸리버 여행기, 어렸을 때 아동용 버전으로 주인공이 소인국과 거인국이라는 기이한 세상을 탐험하면서 겪는 이야기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걸리버 여행기를 펼치면서 걸리버가 여행한 곳이 소인국과 거인국 두 곳이 전부가 아님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니! 이전에는 단순히 아동용으로 각색하면서 중요한 부분만 남긴 건가 싶었는데 한때는 금서로 지정될 만큼 사회비판적인 책이었던지라 강제로 각색되었던 아픔이 있는 책이다. 현대지성에서 완역본으로 선보인 <걸리버 여행기>는 단순히 걸리버의 모험담뿐만 아니라 아래에 해석을 달아 무엇을 상징하는지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걸리버의 여행담을 통해 세상은 상대적이라는 걸 느꼈다. 소인국에서 걸리버와 거인국에서 걸리버는 같은 사람이지만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 존재의 정의가 달라진다. 어느 형상을 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상황은 자리의 위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등등 내가 느낀 것이 조너선 스위프트가 의도한 내용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어렴풋이 읽었던 책이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비유의 의미를 지녔다니. 그의 필력에 감탄하게 된다.

 

새로움을 탐구하고자 하는 걸리버의 열정이 (나 같으면 소인국 이후로 절대 항해를 떠나지 않을 것 같은데) 존경스러웠다. 금서로 지정될 만큼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그럼에도 제 의지를 꺾지 않았던 조너선의 영혼이 걸리버에게 그대로 옮겨간 것일까. 내가 상상해보지 못한 세상에 고립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며, 이러한 기이한 세상이 정말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인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떤 모순점이 있는지 다방면으로 따져보게 된다.

 

왜 모든 이들에게 극찬을 받으며 현존하는 최고의 풍자소설로 널리 알려졌는지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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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의 역사 - 평평한 세계의 모든 것
B. W. 힉맨 지음, 박우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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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에 대한 고찰

 

이 책을 읽으며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가 생각을 가지고 바라볼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우리는 평평한 세상에 살면서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 큰 의미 없이 쓰는 평면성이란 단어도 긍정적, 부정적 의미가 모두 내포되어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쓰인다. 힉맨 교수의 <평면의 역사>는 평평함이 지닌 양면성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며 설명한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수포자다 보니 사실 수학에서의 평면이 얼마나 위대한지 감이 오지 않는다. 평면의 역사를 살펴보며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유클리드 기하학과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고 우주론까지, 정말 광범위한 내용에서 기하학적으로 탐구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했다.

 

뒤이어 우리 실생활에서 평평함 덕분에 얻는 이득, 평지의 쓰임을 보며 시공간의 사용이 인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지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지금보다 과학적 발견이 덜했던 고대에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평평함의 쓰임을 이해해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권위를 높이는 데 사용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남아있는 세계의 문화유산들이 그 증거다.

 

평평한 땅이 우리의 삶에 다방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인식을 하며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쉽게 추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인류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만들어내며 창조하는 것을 천명으로 삼았다. 과거에는 2차원의 영역에 머물렀던 예술의 발전은 그 이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책을 다 이해하면서 봤다고 말할 수는 없다. 평면의 장점을 말하다가 갑자기 곡선의 장점을 말하고, 너무 광범위한 분야에서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에 대한 지식이 쏟아져 나오니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우리의 사고와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서술할 때 평면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평평함의 개념은 그때그때 달랐다는 거, 자칫 단조롭고 정체된 이미지처럼 느낄 수 있지만 이 세상에 평면이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지를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며 설명한 책이라 이해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평평함은 단순히 좋고 나쁘고의 가치판단으로 평가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건 확실히 배웠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싶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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