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왜란과 호란 사이 - 한국사에서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
정명섭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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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매몰되어 역사에서 잊힌 사람들, 무수한 김영철과 안단과 홍한수들의 이름을 새삼 불러본다(p11).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마주하기에는 너무도 아픈 역사다. 왕족들의 생애조차 기구하게 만든 이 전란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일반인들의 생애는 어떠했을까. 정명섭 작가의 왜란과 호란사이 38힘이 없기 때문에 기록을 남기지 못했고,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잊힌(p5)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이지만 이 어찌 소설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보통 사람인 나는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눈물을 글썽일 수밖에 없었다. 사고 친 놈은 따로 있는데 이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발자취는 사관이 기록하지 않았지만

 

전란으로 인해 부모와 헤어지고 먹고 살기 위해 군대에 입대한 홍한수와 전영갑, 무능한 지도부의 실책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소총을 들기 보단 부모의 응석받이로 컸어야했다. 홍한수전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설명하는 저자는 임진왜란은 천재지변과 같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무리 대비를 했다할지라도 조선의 힘만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왜와의 싸움도 힘겨운 와중에 북방의 여진족의 기세도 심상치 않아 조선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38, 어렸을 때 임진왜란을 겪은 어린 소년들은 나이가 들어서 까지 전란의 한 복판에 선다. 왜 우리는 38년 동안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 했던 걸까. 길고도 긴 전쟁의 무서움을 알면서도 왜 이리 안일했던 걸까. 저자는 광해군의 이미지가 일제강점기에 와서 새로이 만들어졌다 말한다. 도덕적 실책으로 인해 조선시대 만해도 폭군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신하들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던 그의 정책을 은근히 비판한다. 솔직히 광해군보다 더 나쁜 놈은 선조 같은데 임진왜란을 단지 피할 수 없는 재난으로 치부한 것에 비해 실리를 취한 광해군에게 그리 후한 평가를 내리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전쟁은 대를 이어 겪었다. 아버지는 임진왜란에, 아들은 병자호란에. 아니 아버지는 두 전쟁을 모두 누비며 살기위해 처절하게 몸부림 처야 했다. 38, 그 사이에 청춘을 보냈던 사내는 전쟁으로 인해 친우를 잃고 아들을 잃었다. 남한산성의 따스한 성벽 안에서 쓸데없는 논의나 하면서 조선 군인들의 피로 온 영토를 물들였다. 굴욕적인 화친으로 전쟁은 끝났지만 한반도에 울부짖는 백성들의 아우성을 듣는 사람은 없었다. 서로가 책임을 미루며,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다. 가장 존귀한 자리에 있는 임금부터 나라의 녹을 먹는 신하들까지. 막을 수 있음에도 막지 못한 그들의 실책. 38년의 세월을 허황되게 보낸 이들의 오판은 보통 사람들을 지키지 못했다.

 

임금은 무얼 했으며 조정 대신들은 무얼 했는지, 하나하나 연대기 순으로, 그 시대를 살았던 홍한수의 일대기로 살펴볼수록 너무 원통했다. 조선의 임금이여, 그대는 어찌 감히 종묘 정전에서 두 눈을 편히 감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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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인생소설 - 나는 왜 작가가 되었나
다니엘 이치비아 지음, 이주영 옮김 / 예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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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의 작품을 읽어보진 않았더라도 그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소설 개미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그 이후에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대중들에게 다가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생소설은 소설가 베르나르의 일대기를 다룬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가장 최근작 죽음까지. 베르나르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그가 살아온 인생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솔직히 아직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워낙 유명해서 언젠가는 꼭 읽어야지 항상 마음먹고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그의 대표작이라 꼽는 개미가 어렸을 때부터 구상해 무수히 많은 수정을 통해 탄생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개미의 원고가 출간되기까지 그렇게 많은 거절을 당했다니! 우리는 작가가 성공한 이 이후의 모습만 보기 때문에 베르나르가 겪어온 역경은 알지 못했었다. 개미가 출간되기까지 두 출판사에서 경쟁이 붙은 에피소드는 너무 재밌었다. 과연 그 작품의 진가를 알아본 곳은 누구였을까! 결국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알아봐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쏠리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그래도 자신을 수차례 거절한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베르나르의 독특함도 기억에 남는다.

 

그의 소설에 영감을 주었던 작가는 참 많다. 에드거 앨런 포의모르그가의 살인사건, 쥘 베른의 신비의 섬,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프랭크 허버트의 , 필립K, 스티븐 호킹 등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던 소년에게 신비스러운 느낌의 작품은 언제나 즐거움을 주었다.

 

개미는 성공했고 전 세계적으로 판권이 팔렸지만 작품의 성공이 꼭 인생의 행복과 비례하진 않는 것 같다.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번역가들은 의역으로 베르나르가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하지 못했고 심지어 그의 작품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표절한 창작물들이 나왔다. 사랑하는 아내는 이혼을 바랐고 그는 우울증에 빠졌다. 역경이 있을 때마다 그를 구원해 준 건 언제나 집필활동이다. 그 옛날 프레데릭 다르가 매일 아침 8시에서 점심 12시 반까지 글을 씁니다는 메시지가 어린 베르베르에게 크게 와 닿았듯 그는 끝없이 작품을 썼고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다. 책 말미에 한국 독자들을 베르나르의 심정이 살짝 언급되어 있는데 뭔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물론 그는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왜 우리나라는 베르나르의 작품에 열광하는 걸까? 한국인이 사랑하는 외국 소설가를 꼽을 때 언제나 순위권에 위치하다보니 무엇이 우리의 가슴을 끌리게 하는 건지 급 궁금해졌다.

 

베르나르의 개미만 알았지 이 책을 읽기 전까진 그가 법학도였다는 것도, 과학 잡지 기자로 일했다는 것도, 그가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써왔는지 전혀 알지 못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생소설을 읽고 나니 당장 그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뿐만 아니라 인간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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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 1
황운하.조성식 지음 / 해요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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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갇 소문만 무성한 울산 고래고기 사건, 그 진실의 실체를 파헤쳐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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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아이네이스 - 로마 건국의 신화
베르길리우스 지음, 강경수 엮음 / 미래타임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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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의 원인은 어이없게도 신들의 이기심에 의해 벌어졌다(p15).

 

극의 진행을 위해 멍청한 악인 한 둘이 필요한 건 알지만 수많은 영웅들을 죽음으로 내몬 파리스와 헬레네를 보자니 일리아스를 읽으며 느꼈던 분노가 다시 치올랐다. 이미 아내가 있음에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을 얻겠다며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황금사과의 주인으로 낙점한 파리스의 아둔함은 가슴을 치게 만든다.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도 더 애틋한 그들의 불륜은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고 인간의 전쟁에 신들이 편을 나눠 싸워 그리스와 트로이는 걸출한 영웅들을 잃었다. 오디세우스의 계략으로 지지부진했던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의 승리로 끝을 맺는다. 로마 제국의 건국신화를 논하려면 트로이 전쟁부터 거슬러 올라가야하니, 전쟁에서 패한 트로이의 유민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이었던 로마의 선조였다.

 

그대에 의해 천년 왕국이 세워질 것이니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이겨나가길 바라네(p124).

 

아프로디테 여신과 다르다니다듸 왕자 안키세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네이아스는 로마의 시조로 트로이의 장수였으나 패전 후 유민들을 이끌고 신천지 라티움을 세우기 위해 향해한다. 아프로디테에게 앙심을 품은 헤라 여신의 방해로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디도 여왕과 사랑에 빠져 잠시 꿈을 잃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은 결코 잊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버지 안키세스를 만나기 위해 저승에 간 아이네이아스의 모험담은 마치 단테의 신곡과 유사하다. 단테가 지옥과 연옥의 안내자로 베르길리우스를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구나 깨달았다. 우여곡절 끝에 라티움의 테베레 강에 도착한 아이네이아스는 그곳 라티누스 왕의 딸 라비니아와 결혼을 하려 하지만 시빌레의 예언처럼 강력한 반대자 투르누스와 또 다시 지독한 전쟁을 한다. 마침내 승리한 그는 트로이 유민과 라틴족을 결합시켜 새로운 나라 라비니움을 건설한다. 로마제국이 건설되기까지 그 이후로도 수백 년의 세월이 필요했지만 라비니움의 마지막 왕녀 레아의 아들 로물루스가 로마인과 사비니인을 결합해 로마를 세우고 퀴리누스 신이 되어 승천한다.

 

전체적으로 아이네이아스의 서사에 비해 로마제국이 건국되는 장은 휙휙 지나가서 좀 당황했지만 트로이 전쟁 이후, 그 유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어 재밌었다. 21세기의 나도 이렇게 재밌는 때 그땐 오죽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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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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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하늘에 있는 것과 땅 아래 있는 것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여, 궤변을 정설로 만들어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불법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p14)”

 

지금에 와서는 세계 4대성인으로 칭송받는 현자 소크라테스가 생전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법정에 섰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자신의 무고함을 변론한다. 동정심을 사서 감형을 꾀는 것이 아니라 죄가 없음을 정정당당하게 정면 돌파한다. 그는 1차 변론에서 델포이 신전의 신탁으로 인해 자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받게 된 것이라 말한다. 신께서는 내가 가장 지혜로운 자라고 단언하셨지만, 당신이 나보다 더 지혜로운 것이 분명하지 않느냐(p19)’ 라고 말하며 소위 지혜로운 자라 명성 높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서 시비(?)를 털고 다녔으니 미움 받은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러고는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적어도 이 작은 것 한 가지에서는 내가 그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것 같아 보인다(p20)는 귀중한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을 가장 지혜로운 자로 지목한 신탁의 의문을 풀기위해 보인 행보는 그를 사람들로 하여금 미움을 사게 하고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고발당한다. 하지만 이 고발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오직 한 사람만이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있고, 나머지 모든 사람은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청년들에게는 얼마나 큰 행운이겠냐며(p27) 고발의 부당함을 항변한다. 그를 무신론자라 고발한 건에 대해서는 진리를 탐구하려는 자신의 행위야말로 신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며 반박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유죄를 선고 받을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한 것 같다. 그렇기에 그는 평결을 내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다면 그건 스스로에게 해악을 입히는 것이라 협박하는 대담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아테네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시간에 쫓겨서 서둘러 판결하는 바람에, 이 나라를 욕하고자 하는 사람들로부터 현자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오명과 비난을 듣게 생겼습니다(p53).

 

사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들어보면 좀 (많이) 재수 없는 것을 빼고는 구구절절 다 옳은 말이다. 소크라테스의 처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듣지 않으려는 자들의 마음을 설득하는 건 수포로 돌아갔다. 아마 아테네 시민들도 소크라테스의 무죄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의 처형에는 상당히 정치적인 이유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역사에 큰 오명으로 남았다. 역사는 이때 소크라테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을 결코 지혜롭다 평하지 않을 것이니. 죽고 나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끝까지 당당한 아테네 시민으로 남기를 바란 소크라테스의 고리타분한 성품을 떠올린다면 그의 영혼은 흡족해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해본다.

 

사형을 앞두고 소크라테스를 구하기 위해 그를 찾아간 절친한 친우 크리톤과의 대화는 고구마를 100개먹은 것 같은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세계 4대 성인의 고귀한 긍지를 어찌 나 같은 일반인이 감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살 수 있음에도 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올바른 처신이 아니라며 탈옥하여 테살리아로 가라고 그를 설득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살기위해서 탈옥은 올바른 행위가 아니라며 오히려 크리톤을 설득한다. 그를 위해 기꺼이 비용을 치를 열의가 있는 사람들의 염원, 소크라테스의 평판과 자식의 교육을 이유로 탈옥을 권하는 크라톤에게 아테네를 탈출하는 건 법과 나라를 파괴하는 불의라며 지독한 원칙주의자적 면모를 보인다. 그러니 소크라테스여, 당신을 길러준 우리가 한 말을 받아들여서, 자녀들이나 목숨이나 그 밖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정의를 더 소중히 여기십시오(p85). 크라톤편을 읽으며 불명예스러운 사형은 소크라테스 개인에게는 비극이나 어쩌면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일치시키려는 그 품행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켜 수천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은 빛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12장으로 이루어진 파이돈편은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가 친우들과 죽음 이후 육체와 영혼에 대한 토론을 나눈 것을 그의 사후 파이돈이 에케크라테스에게 들려준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 에우에노스에게 가능한 빨리 자신을 따라오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는 말을 전해 달라 부탁한다. 이때 심미아스는 그렇게 말한 저의에 의문을 가지며 영혼불멸에 관한 심도 깊은 토론을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무릇 철학자라면 지혜를 알고 싶어 하는 열망이 있는데 나약한 육체로는 지혜를 얻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즉 그는 영혼이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홀로 있게 되는 것은 살아서는 불가능하고 죽은 후에야 가능한 것이라 말한다(p108). 그렇기에 진정한 철학자라면 육체로부터 해방된 저승에 이르러 순수한 지혜를 탐구할 수 있기에 죽음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육체의 죽음 이후 영혼은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갈 것이니. 단테의 신곡 오리지날 버전은 소크라테스가 아닌가 싶을 만큼 자세히 사후세계를 묘사한다.

 

따라서 죽음이 어떤 사람에게 다가갔을 때, 아마도 그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것 중에서 죽게 되어 있는 부분은 죽을 것이지만, 죽지 않게 되어 있는 부분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 주고서 자신은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채로 떠나갈 것일세(p191).

 

파이돈 편 마지막에 이르러 소크라테스는 의연한 죽음을 맞이했다. 사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아마 플라톤의 주 생각이겠지만) 이데아나 영혼불멸에 대한 논리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거의 글자만 겨우 읽다시피 했지만, 내가 느낀 건 그도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두려웠기에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한 것이겠지.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믿고싶었을테니 말이다.

 

소크라테스의 향연은 어느 식사자리에서 뜬금 에릭시마코스가 에로스를 찬양하는 찬가를 지어 바치자고 제안한다. 함께 동석한 사람들은 각자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 에로스 신의 사랑과 용기를 찬양하고 에로스 신을 더 잘 알기 위해 그는 어떤 존재인가 그 실체에 다가가려 여러모로 정의한다. 에로스 신은 사람들 가운데는 평화를, 바다에는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함을, 바람에게는 편안한 쉼을, 시름에 겨운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분(p265)’이라는 아가톤의 훌륭한 찬가를 듣고는 제 순서에 이르러 소위 갑분싸를 연출하니. 각자가 진정으로 에로스를 예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떻게 해서든지 예찬하는 것처럼 보이기만 해도 될 것처럼 말했다며(p267) 독설을 날린다. 그는 에로스를 신이 아닌 인간과 중간 사이의 존재로 말하며 에로스의 탄생 기원부터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솔직히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이데야처럼 에로스도 어떤 의미인지 나의 빈약한 이해로 감히 정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생각한다. 다만 변명부터 크리톤, 파이돈, 향연까지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을 완독하고 든 생각은 별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아니라는 거다. 상당히 피곤하고 꼬장꼬장한 아저씨가 떠오르는 건 그저 내 느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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