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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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하늘에 있는 것과 땅 아래 있는 것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여, 궤변을 정설로 만들어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불법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p14)”

 

지금에 와서는 세계 4대성인으로 칭송받는 현자 소크라테스가 생전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법정에 섰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자신의 무고함을 변론한다. 동정심을 사서 감형을 꾀는 것이 아니라 죄가 없음을 정정당당하게 정면 돌파한다. 그는 1차 변론에서 델포이 신전의 신탁으로 인해 자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받게 된 것이라 말한다. 신께서는 내가 가장 지혜로운 자라고 단언하셨지만, 당신이 나보다 더 지혜로운 것이 분명하지 않느냐(p19)’ 라고 말하며 소위 지혜로운 자라 명성 높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서 시비(?)를 털고 다녔으니 미움 받은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러고는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적어도 이 작은 것 한 가지에서는 내가 그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것 같아 보인다(p20)는 귀중한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을 가장 지혜로운 자로 지목한 신탁의 의문을 풀기위해 보인 행보는 그를 사람들로 하여금 미움을 사게 하고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고발당한다. 하지만 이 고발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오직 한 사람만이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있고, 나머지 모든 사람은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청년들에게는 얼마나 큰 행운이겠냐며(p27) 고발의 부당함을 항변한다. 그를 무신론자라 고발한 건에 대해서는 진리를 탐구하려는 자신의 행위야말로 신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며 반박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유죄를 선고 받을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한 것 같다. 그렇기에 그는 평결을 내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다면 그건 스스로에게 해악을 입히는 것이라 협박하는 대담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아테네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시간에 쫓겨서 서둘러 판결하는 바람에, 이 나라를 욕하고자 하는 사람들로부터 현자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오명과 비난을 듣게 생겼습니다(p53).

 

사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들어보면 좀 (많이) 재수 없는 것을 빼고는 구구절절 다 옳은 말이다. 소크라테스의 처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듣지 않으려는 자들의 마음을 설득하는 건 수포로 돌아갔다. 아마 아테네 시민들도 소크라테스의 무죄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의 처형에는 상당히 정치적인 이유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역사에 큰 오명으로 남았다. 역사는 이때 소크라테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을 결코 지혜롭다 평하지 않을 것이니. 죽고 나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끝까지 당당한 아테네 시민으로 남기를 바란 소크라테스의 고리타분한 성품을 떠올린다면 그의 영혼은 흡족해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해본다.

 

사형을 앞두고 소크라테스를 구하기 위해 그를 찾아간 절친한 친우 크리톤과의 대화는 고구마를 100개먹은 것 같은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세계 4대 성인의 고귀한 긍지를 어찌 나 같은 일반인이 감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살 수 있음에도 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올바른 처신이 아니라며 탈옥하여 테살리아로 가라고 그를 설득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살기위해서 탈옥은 올바른 행위가 아니라며 오히려 크리톤을 설득한다. 그를 위해 기꺼이 비용을 치를 열의가 있는 사람들의 염원, 소크라테스의 평판과 자식의 교육을 이유로 탈옥을 권하는 크라톤에게 아테네를 탈출하는 건 법과 나라를 파괴하는 불의라며 지독한 원칙주의자적 면모를 보인다. 그러니 소크라테스여, 당신을 길러준 우리가 한 말을 받아들여서, 자녀들이나 목숨이나 그 밖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정의를 더 소중히 여기십시오(p85). 크라톤편을 읽으며 불명예스러운 사형은 소크라테스 개인에게는 비극이나 어쩌면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일치시키려는 그 품행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켜 수천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은 빛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12장으로 이루어진 파이돈편은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가 친우들과 죽음 이후 육체와 영혼에 대한 토론을 나눈 것을 그의 사후 파이돈이 에케크라테스에게 들려준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 에우에노스에게 가능한 빨리 자신을 따라오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는 말을 전해 달라 부탁한다. 이때 심미아스는 그렇게 말한 저의에 의문을 가지며 영혼불멸에 관한 심도 깊은 토론을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무릇 철학자라면 지혜를 알고 싶어 하는 열망이 있는데 나약한 육체로는 지혜를 얻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즉 그는 영혼이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홀로 있게 되는 것은 살아서는 불가능하고 죽은 후에야 가능한 것이라 말한다(p108). 그렇기에 진정한 철학자라면 육체로부터 해방된 저승에 이르러 순수한 지혜를 탐구할 수 있기에 죽음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육체의 죽음 이후 영혼은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갈 것이니. 단테의 신곡 오리지날 버전은 소크라테스가 아닌가 싶을 만큼 자세히 사후세계를 묘사한다.

 

따라서 죽음이 어떤 사람에게 다가갔을 때, 아마도 그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것 중에서 죽게 되어 있는 부분은 죽을 것이지만, 죽지 않게 되어 있는 부분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 주고서 자신은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채로 떠나갈 것일세(p191).

 

파이돈 편 마지막에 이르러 소크라테스는 의연한 죽음을 맞이했다. 사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아마 플라톤의 주 생각이겠지만) 이데아나 영혼불멸에 대한 논리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거의 글자만 겨우 읽다시피 했지만, 내가 느낀 건 그도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두려웠기에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한 것이겠지.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믿고싶었을테니 말이다.

 

소크라테스의 향연은 어느 식사자리에서 뜬금 에릭시마코스가 에로스를 찬양하는 찬가를 지어 바치자고 제안한다. 함께 동석한 사람들은 각자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 에로스 신의 사랑과 용기를 찬양하고 에로스 신을 더 잘 알기 위해 그는 어떤 존재인가 그 실체에 다가가려 여러모로 정의한다. 에로스 신은 사람들 가운데는 평화를, 바다에는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함을, 바람에게는 편안한 쉼을, 시름에 겨운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분(p265)’이라는 아가톤의 훌륭한 찬가를 듣고는 제 순서에 이르러 소위 갑분싸를 연출하니. 각자가 진정으로 에로스를 예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떻게 해서든지 예찬하는 것처럼 보이기만 해도 될 것처럼 말했다며(p267) 독설을 날린다. 그는 에로스를 신이 아닌 인간과 중간 사이의 존재로 말하며 에로스의 탄생 기원부터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솔직히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이데야처럼 에로스도 어떤 의미인지 나의 빈약한 이해로 감히 정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생각한다. 다만 변명부터 크리톤, 파이돈, 향연까지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을 완독하고 든 생각은 별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아니라는 거다. 상당히 피곤하고 꼬장꼬장한 아저씨가 떠오르는 건 그저 내 느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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