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혁명 - 인류의 미래, 식물이 답이다! 혁명 시리즈
스테파노 만쿠소 지음, 김현주 옮김 / 동아엠앤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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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뇌가 없다.

 

그렇지만 기억한다. ‘미모사는 무려 40일 이상 기억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해가 되는 자극을 구분할 수 있다. 식물이 동물과 같은 기관을 갖지 않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다(p143). 식물로 존재하기 위한 최적화된 생존본능이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온대 활엽수립에서 자라는 칡의 일종인 보퀼라는 식물계의 젤리그(zelig: 어떤 상황에서든 자유자재로 변신 가능한 자-역주)로 불리는 모방의 대가이다(p61). 보퀼라는 어떤 종류의 식물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지에 따라 수차례잎의 형태와 크기, 색상을 바꿀 수 있다(p64). 이렇게 주변의 식물을 모방하여 보퀼라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일까? 해충으로 부터 보호를 받으며, 다른 식물들의 잎과 뒤섞이면서 초식곤충의 공격을 받을 확률이 감소한다(p65).

 

식물이 주변의 다른 식물을 모방 한다는 것은 잘 상상이 되지는 않는다. 식물은 사물을 볼 수 있는 도 없고 무엇이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지 사고할 수 있는 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퀼라는 무엇을 모방해야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알고 있는지는 식물학자들의 숙제로 남아있다.

 

식물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눈은 없지만 1905년 하버란트 교수는 식물은 표피세포로 이미지를 인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프랜시스 다윈은 식물은 기억을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으며(p67) 이를 종합하여 2016, 프란티섹 발루스카 교수는 보퀼라가 관찰능력이 있다고 새로운 답을 제시했다.

 

식물에게 시각이 있으며, 기억 능력이 있고, 한 발 더 나아가 관찰능력까지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식물의 시각 능력이라는 문제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소소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할 만한 가치가 없기에(p68) 후속 연구가 구체적으로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자만하는 인류에게 아직 풀지 못한 미제가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는 건 자연 앞에서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하지만 책 말미에도 언급되었듯 우리가 사는 환경, 그러니까 이 지구 전체를 어떤 의미에서 보면 무료로 이용하면서(p255), 환경과 소비 자원에 대한 비용은 생각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고갈된다면, 인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류의 미래

 

이 책의 저자 스테파노 만쿠소 박사는 다가올 식량난에 대비하여 젤리피시 바지선을 개발했다. 그 어떤 자원도 소비하지 않고 야채를 재배하는 공상적인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킨 것이다(p251). 그는 비옥한 토양을 필요로 하지 않고 담수도 필요로 하지 않고, 태양에너지 외에 다른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식량을 생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느냐(p251) 우리에게 묻는다. 당연히 무료로 사용되어 온 자원을 보존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선뜻 나서는 투자자가 없다는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삶이 식물을 통해 얼마나 많은 영감을 받는지를 알게 되었다. 우주를 부유하는 비행사들에게 폐쇄된 공간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도 식물이며, 1851년 제1회 만국박람회 개최를 위해 하이드파크 내에 제작된 크리스털 팰리스도 빅토리아 연꽃에서 영감을 얻었다. 우리가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식물에게 실상 우리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페페로치노의 영리함은 감탄스러웠다.

 

식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영원한 동반자이다. 그동안 식물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을 반성하며 식물의 위대함과 더불어 인류에게 다가 올 난제를 풀 수 있는 조력자로 그들을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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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 아트북 : 로맨스 영화 장소 - 손끝으로 완성하는 안티 스트레스 북 스티커 아트북 (싸이프레스) 7
싸이프레스 콘텐츠기획팀 지음 / 싸이프레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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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와 심은하의 리즈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초원사진관.

누구나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있는 첫사랑이 떠오르는 국민첫사랑 수지의 건축학개론’.

기이한 현상 속에서도 음악으로 통하는 두 남녀의 애틋한 말할 수 없는 비밀등등

 

이 책은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영화 10선을 꼽아 로맨스의 상징적인 장소들을 스티커로 작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

 

책은 총 2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본책에는 실제 스티커를 붙일 수 있는 바탕지 10개와 바탕지를 채울 수 있는 스티커로 구성 된 부록이 있다.

 

 

이터널 선샤인

건축학개론

8월의 크리스마스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라라랜드

로마의 휴일

비포 선라이즈

만추

냉정과 열정사이

 

 

우선, 이 중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나 고른다. 각 작품마다 난이도가 상이하기 때문에 초보자라면 앞쪽에 배치된 걸 고르면 좋다. 나는 하룻강아지 스티커 아트북 무서운 줄 모르고 가장 최강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냉정과 열정사이의 두오모 성당을 픽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붙이다가 뭉툭한 손이 거슬려 도구를 찾아 헤맸다. 핀셋을 가지고 붙이면 좀 더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다.

 

 

냉정과 열정사이는 총 417개의 스티커 이루어져 있고, 스티커만 4페이지다. 한 페이지 당 대략 20~30분 정도 소요되며 뒤로 갈수록 점점 손이 빨라지기 때문에 시간이 줄어든다.

 

 

스티커는 한 페이지씩 뜯어서 붙였는데, 가령 001-106번까지 있는 스티커를 작업할 때 바탕지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훑으면서 106번 아래에 있는 번호들을 찾아 붙였다. 001, 002번 이렇게 스티커 순서대로 붙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한다면 말 그대로 숨은 그림 찾기가 될 것이다.

스티커 아트북을 왜 할까? 싶었는데 시간이 말 그대로 순삭이다. 무언가 집중하고 싶을 때, 정신을 맑게 해주고 또 로맨틱한 장소를 꾸민다는 생각에 기분도 좋아진다.

또한 하나하나 완성되어가는 성취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동안 꾸미기 책은 아이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해왔다. 스티커 아트북을 통해 어른도 꾸미기 책을 즐기며 또 이 과정 속에서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동심과 추억을 찾아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속 감동을 다시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은 완성 샷!!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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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은 올려다보는 그대에게 상냥하게 - JM북스
마쿠라기 미루타 지음, 손지상 옮김 / 제우미디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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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좋아하시는 분, 대환영

 

참 수상한 문구다. 아르바이트 정보 사이트에서 이런 수상한 조건을 건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니, 고개가 갸우뚱. 업무 내용도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일자리의 시급시간대에 혹해서 시작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일, 수상했던 모집 문구와 달리, 주인공의 일은 정말 말 그대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다.

 

시부야 대각선 횡단보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10층짜리 다용도 빌딩(p9), 그 옥상에서 완전한 구체가 밤하늘에 떠오른다.

 

밤하늘에 떠오른 빛나는 구체는 애드벌룬이다.

그냥 애드벌룬이 아니다.

무려 야광 애드벌룬!!!

(p12)

 

야광 애드벌룬은 겉면에 무수히 많은 소형 램프를 박아놓아서 램프 불빛으로 문자를 표현할 수 있다. 이 야광 애드벌룬은 밤의 천이라 쓰고 야후라 읽는다(p12). 야후는 이 밤을 보내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전구 불빛 메시지로 제대로 바꿔서, 해방한다(p15).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대에게 상냥하게.

 

제목부터 가슴이 간질간질 거리는 이 책은 애드벌룬 야후의 관리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요코모리가 야후에서 만난 소녀 사쿠라를 통해 성장하는 로맨스 소설이다. 라노벨은 처음 읽어보는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한권의 책 속에 기승전결이 뚜렷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왜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장르인지 알 수 있었다.

 

밤이 무서운 사람도 있는데요.’ (p31)

 

어느 날, 시부야구 계획정전이 발표되고 한껏 들뜬 분위기에서 맥을 끊는 문장이 SNS에 나타난다. 요코모리는 잊을 만 나타나는 이방인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밤을 두려워하는 사쿠라와 그 공포심을 깨주고 싶어 하는 요코모리. 이렇게 그들의 인연은 시작된다.

 

요코모리는 낮에는 국어 선생으로, 밤에는 애드벌룬 관리자로 일한다. 사려 깊은 성격과 문학과 아이들을 사랑해 인기가 좋지만 그의 신분은 어디까지나 교직원 채용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기간제 교사. 정직원 교사에게 기간제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질 권리가 없다며 구박당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문장이 저자가 말하고 싶은 교훈이 아닐까싶다.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일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공평한 밤하늘. 밤하늘은 모두에게 공평하며 이 따스함은 새로운 인연의 장이 될 수 있다고.

 

밤이 두려워 언제부턴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요코모리를 만난 지 하루 만에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실어증을 고친 사쿠라, 교직원 채용시험 2차 면접에서 번번이 낙방했지만 마침내 그 이유를 깨닫게 된 요코모리.

 

사람은 어딘가 조금씩 부족하지만,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가 그 부분을 채울 수 있다. 10년 전쯤이나 유행했을 법한 진부한 결말이 조금은 아쉽지만 읽는 내내 달달함과 풋풋함이 느껴졌다.

 

달이 예쁘네요.’

 

나쓰메 소세키는 ‘I Love You’를 이처럼 빙 에둘러서 전했다고 작중에서 말한다. 오늘밤, 이 책과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달의 아름다움을 속삭여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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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만 중요한 남극동물의 사생활 - 킹조지섬 편 남극생물학자의 연구노트 1
김정훈 지음 / 지오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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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극지의 땅을 밟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평범한 사람이 거주하기에 온화한 기후가 아니기 때문에 극지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은 아니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남극동물의 사생활> 은 베일의 싸여졌던 남극동물들의 일상을 한 꺼풀 벗겨낸다.

 

남극은 아직 인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직 소수의 인간만이 남극에 발을 디뎌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은 선에서 그들을 관찰하는 것이 허락된다. 이 책의 저자인 김정훈 박사님은 그 이름도 생소한 스쿠아(Skua, 도둑갈매기)를 조사하러 남극대륙과 연을 맺은 이후 무려 14년이나 그곳에 초청되어 생명과학 발전에 이바지하고 계신다.

 

책의 주요 무대인 킹조지섬의 바톤반도는 몇해 전, 남극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을 촬영한 곳이라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하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자면 새끼펭귄이 포식자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제작진의 카메라 앞으로 몸을 숨긴 것이다. 살기위한 새끼 펭귄과 먹기 위한 자이언트 패트럴.

 

 

두 동물 모두 생존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으나 많은 사람들은 은연중에 익숙하고 귀여운 새끼펭귄의 생존을 바랐다. 포식자들이 사라진다면 펭귄은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펭귄도 누군가에게는 포식자일 텐데 말이다. 저자는 생태학자로서의 책임을 가지고 일반인들에게 남극 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제목 그대로 사소할 수도 있지만 매우 중요한 남극 동물들의 생존방식(p7)을 소개한다.

 

그렇다면 킹조지섬에는 어떤 동물들이 살고 있을까? 보통 남극하면 떠올리는 펭귄, 고래와 같은 동물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서식하고 있다. 초반에 언급했듯 저자의 친한 친구 스쿠아(도둑갈매기)는 사납기로 유명하다. 알과 새끼를 지키기 위한 스쿠아와 그런 그들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둥지에 다가가야 하는 저자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일 테다.

 

처음에는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썼지만 저자를 내쫓기 위해 온몸으로 헬멧에 부딪히는 도둑갈매기의 충격을 염려하여 고민 끝에 조언을 얻어 가짜 인형머리를 쓰고 다녔다는 귀여운 에피소드 이면에는 자신들로 인하여 생태계가 교란되지 않게 하기 위한 연구원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인형머리를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는 담담한 고백은 극지에 적응한 인간이 이렇지 않을까 재미난 상상을 하게한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인형머리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머리 위에 올라타서 모자를 벗기려고 하는 녀석도 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내 일을 할 뿐이다. 하도 많이 맞다 보니 이젠 아픈지도 모르고 조사하러 다닌다(p78).

 

 

장기 생태연구를 위해서는 새의 다리에 개체인식 가락지를 부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새를 잡아야한다. 처음에는 갈고리를 고안했다는 박사님은 나중에는 그것도 귀찮아져서 날아가는 녀석들을 손으로 잡아채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p147). 기억하는가? 도둑갈매기들에게 하염없이 공격당했던 비련한 과학자를? 이젠 상황이 역전이 되어 도둑갈매기들이 저자를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한다(p147).

 

 

이처럼 남극에서 연구를 하면서 경험한 생생한 연구담과 더불어 낯선 이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남극동물들의 기상천외한 생존방식, 외형으로 남방큰재갈매기를 구분할 수 있는 팁까지. 페이지를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마치 내가 남극에 있는 듯 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쉽게 가볼 수도 만나볼 수도 없는 남극의 원주민들의 일상생활이 궁금하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책 겉면에 남극생물학자의 연구노트 01이라 쓰여 있어 시리즈물인가 찾아봤더니 2019년부터 5년 동안 극지연구소의 도움으로 전 9권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유익한 책들이 많이 출간된다는 소식은 정말 반갑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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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2019-02-1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곽미경 지음 / 자연경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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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한중일 3국 실학자 99인 중 유일한 여성 실학자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빙허각 이씨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 규합총서, 청규박물지와 같은 저서활동과 더불어 자동약탕기 발명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음에도 그녀의 이름은 왜 역사 속에서 잊힌 것일까, 안타까움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이제껏 조명 받지 못했던 한 여인의 일생을 책을 통해 만나보게 되어 반가웠다.

 

명망가의 막내딸로 귀염 받으면서 자란 빙허각 이씨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함이 남달랐고 소설 속 배경이지만 청나라 연행길에 합류해 건륭제를 만나 자신의 당당한 포부를 밝힌다.

 

기댈 빙, 빌허, 집각 빙허각이온데 허공에 기대어 선다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담은 이름입니다.(p107)”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살겠다는 것, 지금에야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의 이름 그 자체보다는 누군가의 아내 혹은 어머니로 살았던 그 시대 여성들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당돌한 언사다. 빙허각이 연경에 가는데 힘쓴 세손과 풋정에 빠지지만 마치 태양을 하루 종일 바라보며 움직이는 해바라기들 같은(p148) 세손의 여인들을 보며 목각인형 같은 삶을 거부한다.

 

빙허각 이씨의 언니는 시댁에서의 모진 고초를 견디지 못하고 자진을 하였는데 이는 빙허각의 친정 집안에 큰 상처로 남는다. 혼기가 찬 빙허각에게 아버지 이창수는 말한다.

 

넌 벼슬아치에게 시집가지 말고, 책 읽기를 술 먹기보다는 좋아하고, 평생 우리 딸의 예쁜 모습만 눈과 가슴에 담고,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만큼의 차밭을 가진 눈빛 선한 선비에게 시집을 갔으면 좋겠다.(p55)”

 

아비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진 것일까. 빙허각 선정은 연행 길의 부사 서호수의 큰아들 서유본을 만나 짝을 이뤄 평생을 해로하길 약속한다. 남편 유본과 시동생 유구와 함께 수학을 깨우치며 공부를 지도하지만 유서 깊은 달성서씨 가문의 맏며느리의 업무는 과중하기만 하다. 총명한 내자를 도와 내자가 가고자 하는 길을 함께 가고 싶다는(p187) 유본의 발언은 시어머니 한산 이씨의 미움을 사 빙허각의 삶을 고단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종부로서 해야 할 의무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자동약탕기의 발명이란 과업을 이룬다. 금술 좋은 부부는 자손을 번창하고, 함께 수학한 시동생 유수의 과거급제와 왕위에 올라 마땅한 세손의 즉위는 달성서씨 집안의 영광을 불러온다.

 

탄탄대로를 달리는 인생에는 흥망성쇠가 있는 법. 찬란함에 반짝이던 시절은 과거의 영광일 뿐, 정조 사후 달성서씨 가문은 낭떠러지로 내몰린다. 집안 어른들의 잇따른 죽음은 그간 빙허각이 말처럼 홀로 살아온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시아버지 서호수를 보내며, 얼마나 많은 분들이 그녀의 기둥을 자처했는지를 알게 된다.

 

빙허각이라며 허공에 기대어 산다 오만하였지만 사실은 당신이라는 큰 기둥에 기대어 살았던 것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p310).

 

집안이 곤궁해지고, 여염집 아낙네였던 빙허각은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이때 대규모 차밭을 경영해 다시 한 번 그녀의 능력을 발휘한다. 아슬아슬하게 지탱하던 그녀의 일상은 큰 아들 민보의 죽음을 기점으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자식이 태어날 때마다 그 아이를 위해 나무를 심었지만 열한그루나 되는 나무의 주인은 이승에 몇 남지 않게 되고 이 아픔은 그녀의 영혼을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산산조각 내버린다(p388).

 

그녀에게 그 어떤 인생의 낙을 찾을 수 있으리. 참척의 고통을 딛고 일어나 소녀 시절 갈망했던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한 여정은 다시금 그녀의 심장을 떨리게 한다. 빙허각은 남편과 시동생의 든든한 지지로 규합총서 5편을 완성한다.

 

첫째는 <주사의>니 무릇 장 담그며 술 빚는 법과 밥, , 과일, 온갖 반찬이 갖추어 지지 않은 것이 없다.

둘째는 <봉임칙>이니 심의, 조복을 손으로 마르고 짓는 치수 및 물들이기, 길쌈하기, 수놓기, 누에치기 등과 그릇 때우고 등잔불 켜는 모든 방법을 덧붙였다.

셋째는 <산가락>이니 무릇 밭일을 다스리고 꽃과 대나무 심는 일로부터 그 밖의 말이나 소를 치며 닭 기르는 데 이르기까지 시골 살림살이의 대강을 갖추었다.

넷째는 <청낭결>이니 태교, 아기 기르는 요령과 삼 가르기와 구급하는 방문이며, 아울러 태살이 있는 곳과 약물 금기를 덧붙였다.

다섯째는 <술수략>이니 집의 터전을 정하는 법과 음양의 꺼리는 법을 알아 부적과 귀신을 쫓는 일제의 방법에 미쳤으니, 이로써 뜻밖의 환란을 막고 무당이나 박수 따위에게 빠짐을 멀리할 것이다. (p399)

 

세월은 야속하게 흘러 그녀에게 더 이상 빼앗을 것이 남은건지 한날한시에 죽고 싶어 했던 그녀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부인인 빙허각을 그 누구보다 신뢰한 남편 유본, 좌소산인의 죽음은 그녀의 삶의 의지를 앗아버린다.

 

이 책을 읽은 시간이 야심한 새벽이라 그러한가. 먼 길을 떠나는 좌소산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하염없는 눈물을 자아냈다. 나도 그와 그녀처럼, 변함없이 한결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수님은 남편과 태어난 지 열다섯 해 만에 반쪽씩 합해 부부가 되었고

부부가 된 지 마흔아홉 해 만에 미망인이라 칭하였다.

그로부터 또 세 해만에 합장하여 다시 합했으니

그 헤어짐과 만남을 헤아려보면

어느 것이 짧고 어느 것이 길까?

그 말씀을 실천하고 뜻을 이룬 것을 슬퍼하여

명을 써서 드러내노라.”

 

시동생 서유구가 바친 빙허각의 묘지명처럼, 그와 그녀의 신뢰 가득한 사랑은 이승을 떠나 저승에서도 혼과 백이 만나리라 믿는다.

 

빙허각 이씨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담은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사실이고 허구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그녀의 삶에 몰입했다.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삶이 아니라, 나다움을 꿈꾼 소녀는 그녀의 신념에 맞는 길을 꺾이지 않고 묵묵히 걸었으며 그 저서를 후대에 남김으로서 약속을 지켰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전, 실학자라고 하여 정약용의 거중기처럼 거대한 물건을 발명한 건가 싶어 호기심가득하게 읽었지만 그러한 부분은 찾을 수 없었다. 눈에 보이기에 거대하고 생각하기에 위대한 것만을 실학이라 여긴 나의 아둔함에서 비롯된 사고였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편견을 한 꺼풀 벗겨내고 영정조 시대의 아낙네가 되어 실용적인 게 무엇일까 고민해보았다. 지금에야 당연한 것들이, 그때는 당연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실학,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더 실용적인 걸 연구하는 것이다. 지금까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책을 계기로 이타적인 삶을 지향한 빙허각이 좀 더 조명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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