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을 보다 - 100년 만에 드러난 새 얼굴 다큐북 시리즈 1
황병훈 지음 / 해피스토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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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을 보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감으로 남아 있는가??

2010년 3월 26일은 안중근 의거 100주년이다.

이날을 맞아 세종로에 걸린 안중근의 얼굴은 수만 명의 시민이 모여 만들어졌다.

아직까지도 한나라의 국민으로서 안중근 의사에 대한 제대로 된 사실을 알지 못하는 부분과 일본으로부터 왜곡된 부분들이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역사 인물인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기념하여 MBC에서 특별 방영된 2부작 다큐멘터리 [북위38도]와 [분단을 넘다]를 바탕으로 춘천MBC의 황병훈PD가 중국, 일본, 북한, 러시아 등등 안중근에 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면서 100년만에 다시 드러난 새 얼굴[안중근]을 타이틀로 우리곁에 다시 한번 그때의 상황과 남과 북이 아닌 한반도를 한나라도 인식하게 만든다.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북한/3.8선지점)에서 안태훈의 첫째로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몸에 7개의 점이 있었는데 그의 할아버지는 길조가 크게 기뻐하고는 안응칠이라는 아명을 지어주었다.

안태훈은 집안에 서재를 만들어 그의 아들과 조카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안중근은 글 공부 보다는 사냥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16세에 김아려와 결혼을 하여 2남 1녀를 낳았고 19세에 홍 신부님으로부터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받고 천주교에 입교를 합니다.



카톨릭의 신자이면서 28세에 전 재산을 바쳐 학교를 세운 교육가이며 애국(愛國), 애인(愛人), 애천(愛天)을 몸소 실천한 진정한 사상가이자 평화주의자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회를 본다.

우덕순과 처단 계획을 밀의하고 동행하여 아침 9시 30분경 국부를 사살한다.

1909년 11월 3일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사살과 연관되어 체포된 일행과 함께 뤼순 감옥에 수감되어 4차례에 걸쳐 미조부치 검찰관의 심문을 받았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안중근은 조금의 흔들림 없이 그의 죄목 15가지를 말했다.


사형이라는 재판을 받고도 그는 항소를 하지도 않았으며 일본은 애초부터 사형 결정을 내린 상태였고 안중근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외국인 변호인 불채택의 원칙을 공표해 국제변호인단 동원까지 막아버렸다.

판사도 일본인, 검사도 일본인, 변호사도 일본인, 통역관도 일본인, 방청인도 일본인으로 완전히 숨 구멍을 막아버린 셈이었다.

그는 옥중에서도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썼으며 안중근이 순국하기전 면외를 온 두 동생들에게 자신의 유언을 했고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가 안중근에게 쓴 짧은 글이 있다.

그리고 조마리아 여사가 준 새하얀 옷을 입은 안중근의 육신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현재 안중근의 유해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렇게 세심하게 기록을 잘하던 일본인들이 그 사건의 기록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어디에 있든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는 단서들이 나올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안중근의 유해발굴 작업은 계속된다.

일본이든 중국이든 북한이든 남한이든 안중근을 싫어하고 욕하는 자는 없다.

그만큼 안중근의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가슴에 살아 숨쉬는 역사이며

그 뒤에선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신부님들과 김구와 모든 사람들이 있었기에 더욱더 빛나지 않았나 싶다.



책 구성은 총 3단락으로 나누어져 있다.

여러 가지 사진들과 100년전의 사건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안중근의 가족사진들과 그에 관련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그때 상황에 관한 사진들이 너무 많다. 책을 읽으면서 이해력도 빨라지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볼수가 있다.

마지막 부록에는 안중근의 가계도와 그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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