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스완
우치다 에이지 지음, 현승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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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좀 더 아무 생각 없이 나기사의 손을 잡았으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한 적이 있다. 그때는 뭔가 하려고 나서면 그 행동으로 인해 나기사가 상처를 받을 것만 같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나기사가 상처 받았다는 사실을. p.282-283


중학생 소녀 이치카는 아빠의 얼굴도 모른 채 엄마의 방치와 학대 속에서 자랐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지만 녹록지 않은 삶이 엄마와 이치카를 더욱 힘들게 했다. 주변에서 학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할머니는 도쿄에 있는 삼촌 나기사에게 한동안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한다. 도쿄에 도착한 이치카 앞에 자신을 데리러 온 삼촌은 어째선지 여자였고 서로가 불편하고 낯선 상황에서 이들의 동거는 시작된다. 사실 나기사는 아무도 모르게 트랜스 젠더가 되었고 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업소에서 쇼걸로 일하면서 수술비를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이치카는 친구도 없고 웃을 줄도 모르는 아이지만 딱 하나, 좋아하는 것이 있다. 바로 공원의 한 할머니에게서 배운 발레. 집 근처 발레 스튜디오의 레슨 소리에 이끌려 몰래 수업하는 걸 지켜보던 이치카. 미카 선생님은 이치카의 타고난 재능을 알아봐 주었다. 이 발레 스튜디오에서 만난 부잣집 소녀 린, 친구가 되고 이치카가 계속 레슨을 받을 수 있도록 아르바이트를 시키는 등 가깝게 지내지만 결국 이 아르바이트 때문에 발레를 하고 있다는 걸 나기사에게 들킨다. 나기사는 가뜩이나 귀찮을 일은 떠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까지 만드니 더 마뜩잖다. 하지만 이걸 계기로 나기사는 누구라도 알 수밖에 없는 이치카의 빛나는 재능을 알게 되었고 또 조금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구멍을 이해하게 되었다. 평생을 자신은 여성이라고, 남은 생이 얼마든 여성으로 살고 싶은 나기사. 수술을 한다고 해도 엄마가 될 수는 없다. 이치카의 아픔을 이해하고 이치카가 훨훨 날 수 있도록 그 재능을 꽃피우게 해주고 또 꿈을 지켜주고 싶다고 마음먹자 나기사의 삶의 의지도 확고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치카의 엄마가 이치카를 데리러 오는데...


나기사가 밤무대에서 추던 백조의 춤을 이치카가 추는 장면이나 나기사가 밤무대에서 사용하던 머리 날개 장식을 이치카의 머리에 씌워주던 장면, 공원에서 이치카가 연습하는 모습을 나기사가 지켜보던 장면이 좋았다. 이치카의 재능을 알아보고 끝까지 도움을 주었던 미카 선생님도 아름다웠다. 이치카의 친구 린의 결말은 너무 충격적이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마음 아픈 건 나기사였다. 그냥.. 다 읽고 나서는 눈이 시큰했다. 슬펐다. 나기사가 뭐 대단한 걸 바랬던 건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만 들어서 슬펐다. 이치카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그의 삶이 그랬고 너무도 가혹한 마지막도 그랬다. 아무래도 음성적일 수밖에 없는 트랜스 젠더의 직업적인 한계나 어려운 경제적 상황으로 인한 악순환으로 더 쉽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환경이 그랬다. 나기사가 이치카를 위해 짧은 머리를 선택하고 작업복을 입은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또 그랬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영화화된 작품이란 걸 알고 영화부터 봤다. 영화에서는 쿠사나기 츠요시가 나기사로 열연했는데 영화도 괜찮았지만 책에서 아무래도 인물들의 생각들이 좀 더 많이 표현되어서 감정이 잘 쌓였던 것 같다. 이치카를 연기한 배우에 대해서는 정보가 많이 없는데 정말 팔다리가 길쭉길쭉하니 발레를 하던 사람일까 생각되기도 했다. 영화가 끝났을 때보다 책을 덮었을 때 여운이 더 진했다. 먹먹하다.



* 도서지원
* 아침서가 - @morning.bookstore

왜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 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평생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기사가 어른들의 세계에서 소외된 사람이라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 P102

너무 가까운 거리는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비슷하기에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지만, 비슷한데 왜 몰라주나 싶어 괴로울 때 또한 많았다. - P110

이게 남들이 말하는 행복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이치카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싫은지, 싫지 않은지는 알아도 행복한지 아닌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이게 그런 감정일지도 모른다. 가슴 언저리가 서서히 따스해지고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그런 순간. - P147

맞아. <백조의 호수>는 비극이야. 나기사의 귀에 노인의 말이 암시처럼 울려 퍼졌다. 당장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백조로 돌아가야만 하는 때가 분명히 온다. - P182

그때 사오리는 각오했다. 아무리 높은 벽을 쳐봐야 날개를 가진 자에게는 의미가 없다고. - P271

나기사 씨를 위해서, 나기사 씨를 잊어줘.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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