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속의 나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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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최근에 읽은 추미스 장르 소설 중에 가장 재밌었다. 역시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 도나토 카리시.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고 추미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섬세한 문장들 때문에 인물들한테 과몰입해버렸다. 심연 속에서 온 '청소하는 남자'는 특히 너무 안타까워서 추미스 읽으면서 이렇게 마음 아파보기는 또 처음인 것 같다.


책은 '청소하는 남자'의 어린 시절 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엄마와 소풍을 가는 어린아이는 설레기만 하면 될 텐데 어째선지 많이 불안한 느낌이다. 너무 궁금해서 벌써 몰입된다. 수영을 가르쳐 준다던 엄마는 아이를 어느 폐수영장에 밀어 넣는다. 살려고 허우적대는 아이를 두고 허리를 흔들며 유유히 엄마는 사라진다.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완벽히 단절된 채 청소부 일을 하며 살아가는, 폐수영장에서 살아남은 아이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책에는 다양한 학대를 보여준다. 엄마와 미키의 관계, 또 엄마가 '청소하는 남자'에게 하는 아동학대, 연인 관계에서의 폭력과 성착취. 엄마의 학대로 자라난 '청소하는 남자'가 학대의 표면이자 상징이었던 '미키'를 또 하나의 인격으로 만들어 이중생활을 하는 것이나 (이 부분은 나중에 반전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의외로 초반부터 밝혀지는 부분이라 좀 놀랐다) 같은 학교 남자아이에게 성을 착취당한 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소녀의 이야기, 그리고 어두운 과거를 안고 연인에게 폭력을 당하는 여자들을 구해주며 살아가는 '사냥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짜임새 있게 얽혀 결말을 향해간다. 각자의 이야기와 사연이 인간관계 속 착취의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으며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 끌고 가는 힘 또한 좋았다. '사냥하는 여자'가 '청소하는 남자'의 사건에 촉만으로 너무 빨리 연결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은 조금 있었지만 인물의 감정들이 충분히 전해지는 설득력 있는 문장들 때문에 흠뻑 빠져 읽었다.



그는 어쩌다 실수로 태어나 쓰레기처럼 버려진 신세였다. p.308


책을 읽다 보면 '청소하는 남자'는 '프랑켄슈타인'에서 창조된 괴물을 연상하게 하는데 그 책을 읽었을 때처럼 너무 마음이 아팠다. '청소하는 남자'의 이중인격이 너무 초반에 밝혀지길래 나중엔 어떤 충격을 안겨줄까 궁금했다. 이야기는 '청소하는 남자'를 학대하던 엄마와 미키의 관계, 그리고 '사냥하는 여자'가 누구였는지 밝혀지면서 끝난다. 그래도 뒤통수 한대 안 치면 아쉽지, 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자극만으로 재밌는 추미스는 많지만 도토 카리시는... 그냥 정말 재밌다!



* 도서지원

* 아침서가 - @morning.book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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