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볼트 - 지구의 재앙을 대비하는 공간과 사람들
시드볼트운영센터.산림생물자원보전실 생물자원조사팀.야생식물종자연구실 지음 / 시월 / 202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구의 재앙을 대비하는 공간과 사람들

지금 시드볼트에 저장되는 종자는 어쩌면 우리 세대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100년간 우리는 다 함께 '힘을 합쳐' 이 지구를 아프고 병들게 만들었습니다. 시드볼트는 이런 현실을 만들어 낸 우리 세대의 책임인 동시에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유산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시드볼트에 있는 사람들은 이 자원을 다음 세대가 될지, 그다음 세대가 될지 모르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넘겨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안하고, 미안하지만 그 이후는 그들의 몫으로 남겨 둘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보존뿐입니다. 적어도 사라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p.151-152

처음 우리나라의 시드볼트를 알게 된 건 '유퀴즈' 방송에서였다. 그런 시설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너무 흥미로웠고 시드볼트의 존재 이유까지도 너무나 흥미로워서 이 책을 권해주셨을 때 당장 읽어보기로 결정했다. 나에게는 현실 속 SF 물처럼 느껴졌다.

먼저 종자를 저장하는 '시드볼트'라는 시설은 전 세계에 딱 두 곳 있다. 노르웨이 스발바르에 하나, 그리고 우리나라 백두대간수목원에 하나 있다. 그러나 스발바르 시드볼트는 주로 작물 종자를 저장하고 우리나라 시드볼트는 야생식물 종자를 보관하므로 야생식물 종자 보관소는 결국 우리나라가 유일한 셈이다다. 종자를 저장한다는 기능을 생각하면 '시드뱅크'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텐데 시드뱅크는 수시로 저장하고 꺼내서 활용되지만 시드볼트에 보관하는 종자는 그 종자가 멸종 위기에 처했거나 지구가 멸망에 가까운 위기를 겪을 때만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따라서 시드볼트는 당장의 이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니다. 이번 세대에서 쓰일지, 다음 세대에 쓰일지 또는 안 쓰일지 모르지만 그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왔을 때를 대비해 운영되고 있다. 국가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다 보니 신뢰성을 확보하고 홍보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나라의 많은 종자들이 보관되어야 그 존재 의의를 다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딱 한 번, 스발바르 시드볼트에서 종자가 반출된 적이 있다고 한다. 시리아 내전 때 시드뱅크들이 다 파괴되었지만 다행히도 스발바르 시드볼트에 종자들을 중복 보관하였기 때문에 시리아의 요청에 따라 종자를 반출하였다고 한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기후 위기도 그렇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시드볼트의 존재가 왜 필요한지 우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종자를 직접 수집, 또는 각국의 기관에서 기탁하여 시드볼트에 보관되기까지 종자를 다루는 세밀한 과정과 데이터를 수집하고 저장하는 과정까지 사진자료와 함께 설명이 되어있다. 이 책이 이해하기 쉽게 쓰인 것은 전문가에 의해 쓰인 것이 아니라 시드볼트에 관심을 가지고 알리고자 했던 출판사 사장님께서 직접 1년간 취재하고 쓴 내용이어서다.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면에서 무척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추천하기도 좋다.

공룡이 살던 시대보다도 전부터 있었던 은행나무에 대한 이야기와 파나마 병에 걸린 바나나 나무의 위기와 관련한 것도 너무 흥미로웠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남자친구가 예전에 이야기해 준 적이 있어서 조금 알고는 있었는데 파나마 병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야생 바나나 나무는 이제 다섯 그루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니 내가 좋아하는 바나나에게 이런 위기가 있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마침 먹고 있던 바나나를 아껴 먹었....) 또 해인사의 전나무가 태풍 링링으로 부러졌을 때에도 시드볼트 팀에서 출동해 전나무의 씨앗을 가져와 시드볼트에 저장했다고 한다. '타미플루'가 중국에서 자생하는 팔각이라는 식물로 만들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이렇게 야생 종자들이 왜 중요한지, 어째서 보관해야 하는지 중요성을 함께 얘기해 주어 이해가 무척 쉬웠다. 거기다 미국인과 일본인이 우리나라에서 채집해간 야생식물들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의 야생식물인데 우리는 되려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일본인이 채취한 우리 야생식물 학명에 다케시마를 붙인 것과 관련한 일화는 어느 정도 유명한 이야기지만 또다시 불끈 불끈.

마지막에 두 페이지를 가득 차지하고 있는 고사한 구상나무 사진들을 볼 때는 마음이 먹먹했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었다. 아직 사람들은 이런 시설이 우리나라에 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고 또 당장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운영하는지 의문을 가지거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일도 허다하다고 한다. 아직 할 일도, 갈 길도 멀지만 당장의 이익을 바라지 않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지구 재앙에 대비할 수 있게 후세를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는 시드 볼트를 생각하니 지금도 너무 가슴이 먹먹하고 벅차고 자부심도 느껴진다. 그 어떤 환경문제를 다룬 책들보다 격렬히 와닿았고 가슴이 저릿했던 책이다. 올해 내 독서 리스트의 베스트에 꼭 넣을 책.


* 도서지원


아침서가 - @morning.book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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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볼트는 물질적인 이득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나 기관을 통해 기탁 받은 종자의 소유권이나 이용할 권리 등은 온전히 종자를 기탁한 나라나 기관에 있습니다. 시드볼트는 그 종자를 열어 볼 수조차 없습니다. 시드볼트가 하는 일이라곤 그저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뿐입니다. 언제까지?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몇십 년, 혹은 몇백 년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이 보관이 영원히 끝나지 않아 씨앗이 다시 세상에 나올 일이 없을 수도 있겠죠.

시드볼트에 저장된 종자가 밖으로 나오는 것은 ‘그 식물을 더 이상 지구에서 볼 수 없을 때‘ 단 한 가지 경우뿐입니다. 그래서 특정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떤 식물의 종자가 시드뱅크나 혹은 다른 곳에 있다면 최대한 그곳에 있는 종자를 쓰도록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시드볼트는 그 이후입니다. 정말 지구상에서 더 이상 그 종자를 볼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그때 관계자가 모여 반출 심의를 진행합니다.
- P154

야생식물이 중요한 첫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야생식물은 재배식물의 시작점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배식물은 결국 야생식물이 있어야만 파생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식물에는 그 식물에 기생하는 수많은 곤충이나 동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식물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그 서식지가 파괴된다는 것이고, 이는 다시 말하면 그 식물을 둘러싼 생태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 P184

여전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최악의 사태‘를 대비합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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