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은 예리하고 예민하고 호기심이 강한 정신 ㅡ 명철한 정신 ㅡ 의 소유자였기에 소를 사러 온 상인이나 외판원을 당황케 했다. 그들은 필처럼 옷을 입고 필처럼 말하는 사람, 필 같은 머리와 손을 지닌 사람은 틀림없이 어리석은 까막눈일 거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필을 잘 모르던 사림들은 그의 습관과 외모 덕분에 귀족에 대한 자신들의 선입견을 고쳐 자기 멋대로 사는 귀족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 P19
있잖아요...... 필 저 자식은 좀 외로움을 타는 거 아닐까요? 아까 우리끼리 있을 때 얘기했잖아요, 저런 자식이 평생 누구한테 사랑받은 적이 있을 것 같아요? 저 자식도 누굴 사랑한 적이 있을까요? - P23
가끔 필은 모든 사연을 다 털어놓고 싶어서 안달이 나곤 했다. 그가 술을 증오하는 한 가지 이유였다. 그는 술이 두려웠다. 술에 취해 무심코 털어놓을지도 모르는 사연이. - P30
아버지라, 조니는 속으로 생각했다. 맙소사, 얼마나 무거운 말이지. 얼마나 무거운 책임인지. - P64
스스로에게 화가 났고, 어째선지 조지에게도 화가 났다. 그들은 언제나 친한 사이였고 자신의 삶으로 상대의 삶을 더없이 보완해 주었다. 한쪽은 날씬하고 한쪽은 퉁퉁했으며, 한쪽은 영리하고 한쪽은 꾸준했다. 그렇게 일란성 쌍둥이 같은 사이였기에 필은 동생에게 솔직해질 수 없을 때 짜증이 났다. 왠지 갈피를 잃어버린 느낌에 화가 났다. - P99
저기, 필 아주버님, 마침내 로즈가 말을 꺼냈다. 이렇게 있으니까 참 좋네요. (...) 웃음을 머금은 채로, 로즈를 보며 똑똑이 말했다. 누구보고 아주버님이래. - P137
필은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로즈는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다. 그저 남모르는 문제를 지닌 인간일 뿐이라고. 그러나 벼랑 끝에서 비틀거릴 때, 외줄 위를 걸을 때, 로즈는 그가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존재인 것을 깨달았다. 아니면 인간보다 아득히 미미한 존재이거나. 인간의 어떤 말로도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 P279
필도 소년의 적나라한 본모습을 지켜보았다. 영원 같은 시간 동안 야유와 조롱을 견디며 열린 천막들 앞을 당당하게, 숨김없이 걸어가던 소년을...... 세상에서 추방된 자를. 그러나 필은 알았다, 뼛속 깊이 잘 알았다. 추방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그래서 그는 세상을 혐오했다, 세상이 먼저 그를 혐오했으므로. -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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