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노크
케이시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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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의 노크 - 케이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재밌었다. 처음부터 몰입이 확 될 수밖에 없었던 게 내가 겪은 상황이랑 비슷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낙후된 지역의 다세대 건물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여성들만 여섯 가구 살고 있는 3층(301호~306호)이 배경이다. 어느 날 303호 여성이 만나는 남자가 계단에서 죽은 채로 발견이 되고 죽기 6개월 전에 보험에 들었다는 이유로 경찰 수사에 들어간다. 첫 파트에서는 각 세대별 여성들의 참고인 조사가 이루어지고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각 여성들이 하는 일, 성향, 관계나 소문 같은 것들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세대별 여성들이 각자 자기 얘기를 하고 마지막엔 에필로그로 끝나는 구조다.


모두 사회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인데다 뭔지 모를 비밀스러운 느낌, 또는 불쾌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이 건물에 사는 여성들 중 302호에게 가장 이입하며 읽었는데 302호는 옆집 303호에서 들려오는 생활 소음을 넘어선 사적인 소음까지 들으며 예민한 하루하루를 지낸다. 실제로 나도 옆집의 다채로운? 소음 때문에 고생을 했기 때문에 너무 이입하며 읽게 되는 거다. 이런저런 소리를 듣다 보면 아무리 상상력이 눈곱만치도 없는 사람도 다양한 상상을 펼치게 된다. 마치 그게 눈으로 본 사실인 것처럼 명확하게 말이다. 실제로 그녀가 진술하는 내용에서 예전에 내가 블로그에 옆집 소음에 대해 쓴 글이 있는데 거기 내용과 아주 흡사한 내용이 나와서 내가 쓴 줄 알았다. (알고 보면 케이시가 나의 또 다른 자아..? 소오름)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밤에 돌아다니는 밤일을 한다고 소문이 난 301호, 3층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이고 때로는 너무 외로움을 타는 프리랜서 디자이너 302호,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듯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303호, 집안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서 두문불출하며 보내는 지적장애 3급의 304호, 엄청난 문신으로 보는 사람들마다 놀래는 305호, 건물 관리를 하며 아무 월세로 사는 건물주의 친척이자 세입자들 호박씨 까는 게 취미인 306호까지, 아무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한 느낌. 후반에 가면 오? 엥? 으잉?!!!! 하면서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게 휘몰아친다. 진짜 재밌었다.

처음에 펍 스테이션으로부터 리뷰 제안이 왔을 때 나는 외국 작가의 추미스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 작가였고 작가가 직접 전자책을 제작해 서점에 등록했고, 영화 판권 계약까지 이뤄냈다고 한다. 작가 소개 글에 작가는 가벼운 난독증이 있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이름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소설을 읽는 데 힘이 들었던 작가가 원룸촌에서 살았던 경험을 등장인물에게 이름 대신 숫자를 붙여 이야기로 완성했다고 한다. 씁쓸하다. 같은 경험을 한 누군가는 장편소설을 완성해내고, 나는 그냥 추억으로? 간직하고.... ㅋ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다음 책이 나오면 그때도 읽어보고 싶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꿈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죠. 상상으로 시간을 메워가는 방법이 현재를 견디기엔 가장 좋은 처방이었어요. 과거는 혐오스럽고, 현재는 답답하고 지루해서 오직 미래만 붙잡고 살았어요. - P45

한마디로 끈적이는 동네예요. 장사 안 되는 식당 주방처럼 찌든 때가 여기저기 붙은 곳이죠. 바퀴벌레나 쥐도 많아요. 사람들이 뿜어내는 우울한 기운이 끈적이는 형태로 변한 것처럼 우울, 슬픔, 비루함, 분노, 모든 것이 뒤섞여 끈적거려요. - P51

삶은 삶 자체로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삶에는 언제나 죽음이 내포돼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계속 연결되는 흐름입니다. 시작과 끝은 언제나 이어져 있습니다. 아침과 저녁이 있는 하루도, 시작과 끝이 있는 삶과 사랑도, 끝없이 시작과 끝이 연결됩니다. 그렇지만 이곳은 시작보다 끝의 에너지가 큰 동네입니다. 겁에 질려 머뭇거리며 시작했다가 공포가 집어삼켜버리면서 막을 내리는 것이지요. 시작과 끝, 그리고 다시 시작이 이어져야 하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계속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 곳에 덩그러니 남은 것은 공포와 자괴감, 모멸감뿐입니다. 결국에는 자기혐오로 이어져 삶이 나아가지 않고 정체돼버립니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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