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선샤인 어웨이
M. O. 월시 지음, 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이 선샤인 어웨이 - M.O.월시(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이 책은 시작부터 '강간'이라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을 명백히 말하고 있다. 에두를 생각도 없는 듯해서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야기 속으로 금방 들어갈 수 있게 한다. 화자는 누군지 모를 상대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회고이자 고백이다.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 화자는 과연 범인인지, 아니면 누가 범인인지, 듣는 이는 누구인지 궁금해하면서 금방 읽게 된다. 배경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 초반 배턴루지라는 지역이며 어린 시절부터 한동네에서 자란 아이들 사이에서 어느 날, 린디라는 여학생이 강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 자체도 그렇지만, 이것이 더 끔찍하게 느껴진 이유는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일이 적은 지역 특성상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친밀하게 지냈던 누군가가 범일일지도 모른다는 것과 또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그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당시 주요 용의자로 거론된 네 명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는데 흥미로운 점은 화자도 그중 한 명이라는 점이다. 읽다 보면 화자가 범인은 아니겠구나 하는 감이 오지만 화자는 화자대로 린디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 사건에 집착하고, 죄책감을 가진다.

/ 내가 지금까지 내 삶에서 일어난 그 어떤 끔찍한 사건 앞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나는 누나의 죽음 앞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을 위로해 주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떠날 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린디를 위로해 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애한테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에 나는 내가 그 애의 슬픔에 일조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해결한 적이 없었다. 그 순간까지 내가 그리 고결한 인간으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달라지고 싶었다. (p.356)

린디를 사랑하는 소년은 무지해서 되려 상처까지 주었다. 소년은 자신이 준 상처와, 자신의 무지와, 떳떳하지 못했던 집착, 그리고 정작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자란다. 생각해 보면 용의자가 된 일과 부모의 헤어짐, 가족의 죽음과 같은 큰 사건들이 함께 일어나 이 소년에게도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마지막에 가서야 이 고백을 듣는 상대가 누군인지, 어째서 이런 과거 이야기를 회고하게 되었는지, 범인은 누구인지도 알게 되지만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속 시원하게 끝날 일도 아니고 말이다. 끝내 그 일이 한 사람의 일상을 어떻게 뒤흔들어 놓았는지에 대해 아는 것, 이해하는 것일 거다. 화자의 고백이야 어찌 됐건 린디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더 위안을 받았던 것 같다. 화자 역시도 고백이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리라고 본다.

/ 나는 우리의 시작이 순조로웠으면 해. 나는 우리 둘이 이 세상 속에서 좋은 남성으로 살아갔으면 해.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말할 때, 그게 어떤 의미인지 네가 이해하길 간절히 바라. (p.423)

이 책을 읽을 때 다소 불편할 수 있음을 이야기해야겠다. 화자는 사건이 있었던 당시를 회고하고 있으므로, 한창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남학생의 관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너무 좋아해서 집착적이기까지 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고 성적 욕망은 들끓기 시작하는데 그에 상응하는 지식은 없이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춘기 소년의 관점임을 수시로 다시 상기시키면서 읽어야 했다. 오히려 이 부분은 뒤에 수록된 작가와의 인터뷰를 읽고 더 공감이 갔다. 위험과 관련해서는 남녀가 경험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점에서 그랬고, 남부라는 지역색과 전반적인 작품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저자의 생각을 잘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어째서인지 인터뷰가 더 마음에 들고 와닿았다. 작가님, 참 말을 잘 하시네.(끄덕끄덕)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라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이 점점 더 많은 손님들로 부산해지는 우리 집에서 내가 배운 단 한 가지 교훈이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겪고 있는 비극은 내가 아무리 옆에 있다 해도 다가갈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손님들이 내게 확실히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 P211

삼촌이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단다. 그 애랑 이야기할 일이 생기거든 가서 그 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렴. 사람들이 하는 ‘터프하게 굴어야 해‘, ‘세심하게 굴어야 해‘ 따위 헛소리는 믿으면 안 돼. 그냥 그 애가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두려무나. 그러면 좋은 사람은 너한테서 좋은 면을 보고, 나쁜 사람은 나쁜 면을 볼 테니까. 무슨 뜻인지 알겠니? 넌 빈 캔버스란다. 그림을 그리는 건 상대의 몪이야.
- P224

어머니는 내게 친절하게 구는 것이었지만 나는 곧장 짜증이 났다. 부모들은 아무리 좋은 의도건 간에 진실을 창피한 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그렇다.
- P243

나는 아주 구체적인 방식으로 죄가 있다. 내겐 누군가를 도울 기회가 있었음에도 나는 돕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그때의 결심이 나라는 사람 그 자체라고 느끼며 내 죄를 목걸이처럼 걸고 살았다.
- P4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